옷은 그 사람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줄근한 옷을 입으면 나 자신도 어딘가 나사 빠진 거 같아 보이고, 정장을 입으면 전문성이 있어 보인다. 가끔 내가 우주의 미물같이 느껴질 때면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출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세련된 옷을 혼자 집에서 입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런 옷들은 주로 드레이핑이 많이 되어 있다. 구조적으로 일반적인 형태를 벗어나지만- 가령 카라의 크기가 표준보다 날렵하고 길다, 머플러의 형태가 상의에 이어져있는데 그 끝이 동떨어진 곳에 툭 얹혀있다- 독보적인 디자인의 경우다. 이런 경우는 신진 디자이너의 옷이거나,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브랜드가 아니어서 적어도 사내에서는 나만이 입는 옷이어야 한다. 누군가를 마주쳤을 때 같은 브랜드와 같은 색상, 디자인까지 똑같은 옷을 입는 경우만은 피하고 싶다.
아무튼 주말이 되면 좋아하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주로 글을 읽거나 쓰고 드레스룸을 둘러본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땐 다리미질을 직접 하지만 오늘은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주름진 셔츠를 모조리 빼서 세탁소에 맡겼다. 가격이 저렴해서 찾은 체인세탁소는 주인이 굉장히 친절했다.
'셔츠는 드라이해주시고, 니트 보풀제거는 안 되나요?'
'이건 보풀제거기로 제거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필립스게 좋다던데, 세탁소주인이 이런 말 하니 이상한가요?'라며 그녀는 웃었다. 오히려 솔직한 거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기분 좋게 세탁소를 나서서 이번엔 수선집에 갔다. 올해 초에 산 트위드재킷의 단추가 떨어져서 쇼핑몰에 요청했더니, 재고가 없다며 주지 않았다. 이런 것에 예민한 난 굳이 소보원에 연락해서라도 받았다. 의류업체가 여분단추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애초에 헐겁게 달아놔 다른 부분도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결국 쇼핑몰은 기존의 유광단추가 아닌 무광단추를 보내주었다. 기존의 유광단추까지 무광단추로 모두 바꿔야 해서 수선집을 찾은 것이다.
수선집 주인은 단추 하나 다는데 오백 원이라고 했다. 모두 바꿔 다니 4500원이 들었다. 물건을 맡기고 기존에 내가 직접 만든 코트도 들고 가 올이 풀린 것이 수선 가능한지 물어봤지만, 안감을 확인하더니 어렵겠다고 했다. 80시간과 20만 원을 들여 만든 코트였지만 미련 없이 버렸다. 많은 것을 할애애 만든 걸 버릴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들곤 했다. 하지만 수선집을 나오면서 이내 그런 생각은 잊어버리고 후련한 마음이 더 컸다. 대개 사람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