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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Oct 19. 2024

단순한 일이 가져오는 행복



  어릴 적 어머니는 집에서 김을 구워주곤 했는데, 그 과정은 단순 반복 작업이다. 신문지를 펴고 김을 놓은 다음, 참기름과 맛소금을 솔솔 뿌린다. 어머니는 작업을 손과 기름 솔로 하였는데, 자취생의 집에는 기름 솔이 있을 리 없으므로 실리콘 젓개를 사용했다. 김은 재래김을 사용했는데, 가게에 갔다가 도시락김은 성에 안 차고, 대형 식료품 회사의 몇 장 들어있지 않은 약 a4 크기 사이즈의 원김 또한 비싸다고 느껴져 50장이 묶여있는 재래김을 샀다. 오천 원에 샀으니 한 장에 백원꼴이었다.


  기름을 바르고 소금통을 솔솔 뿌려 소금을 일정하게 뿌리고자 했지만 그러기엔 소금통의 구멍이 큰 듯했다. 그러면 실리콘 주걱으로 일정하게 펴 발랐다. 그 작업을 생각 없이 하고 있으니 '어머니가 김을 구우며 이런 느낌이었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건 부엌에 김과 참기름, 소금, 그리고 김을 굽고 있는 나로 이루어진 추상적인 세계처럼 느껴졌다. 시공간상에 재료들과 작업을 하고 있는 나. 사방은 잔잔한 음악 속에 고요하다. 그건 마치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내 공간이 아닌 이질적인 세계였다.


  그 작업을 한 후에는 가스불을 키고 김을 굽기 시작했다. 프라이팬에 굽기는 프라이팬이 동그란 모양이라 크기가 안 맞기도 했고, 생각보다 불 조절과 시간 측면에서 어려웠다. 가스불에 직화를 하게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불 한가운데에 김을 두어 구멍이 나며 불이 붙었다. 집에서는 횟집의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나중에는 김의 끝으로부터 끝까지 쓸어넘기는 형태로 김을 굽자 타지 않고 연한 초록색으로 변하며 잘 구워졌다.


  싱크대로 김을 옮겨 네모 반듯하게 잘라야 하는데, 일반 도시락김 크기로 자르기에는 비닐장갑이 없어 손에 최대한 기름을 덜 묻히기 위해 가로 한번 세로 한 번을 잘랐다. 그리고 방부제가 들어있는 고급 김통에 넣었다. 살짝 탄 부분을 좋아해서 먹었더니 예전 어머니가 구운 김보다 덜 기름진 반찬 김 맛이 났다. 그건 시중에서 맛볼 수 없지만 옛 추억을 일으키게 하는 맛이었다. 그 자리에서 또 원김으로 약 8장 이상을 먹은 것 같다. 이미 식사를 마친 후였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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