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만에 ㅣ 임신은 힘들거예요.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던 제약회사.
6년 동안 한 회사에 다니면서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다. 원료사업 팀 여직원의 자리는 많은 직원들이 거쳐갔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 모든 직원들이 '제는 언제까지 버틸까?'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었다.
그만큼 그 자리는 쉬운 자리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내가 신입인지라, 배우려는 의지가 강해서, 책임감이 강해서, 인내심이 좋아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FM 팀장의 직원에 대한 이해와 파악이 빠르셨을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것들이 맞아서 혹독한 3개월을 눈물로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고 행복한 회사 생활을 했었다.
일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일 못하는 놈들이나 자리 지키고 있는 거야! 일 끝냈으면 칼퇴근해!"라며 나의 능력치를 더 올려주신 팀장님. 난 남들 담배 피우고 차 마시고 쇼핑몰 구경하는 시간에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퇴근을 했다. 그 누구도 뭐라 하지 못했다. 3개월 후에는 실수 없이 일을 처리했으니 말이다.
어느 부서와도 문제없이 일을 해냈고, 내가 가면 바로바로 일을 처리해 주셨다.
"경순 씨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아요"
실수 없이 똑 부러지게 일 처리하고 자기관리까지도 열심히 하는 모습에 같이 일하던 직원이 이야기 나에게 이야기했던 말이다.
입사 후 3년 차에 부서에 큰 사건이 터지고, 팀장님은 그 책임을 지고 퇴사하시는 일이 생겼다.
그 일로 인해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정에 약해 입사 3년 차에 퇴사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지켜낸 대가들이 너무나 벅차게 다가왔다. 어느새 내 자리는 다른 층에 각각 하나씩 생겼고, 내가 일을 처리하는 부서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여유시간도 없이 일을 처리해야지만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부서 이동까지 해서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퇴근을 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가 점점 쌓이긴 했지만, 퇴근 후 항상 다니는 운동들이 나를 지켜내주었다.
그즈음 친언니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전날 취미로 다니는 발레를 하다 발목을 심하게 삐었다.
그 상태로 친언니의 결혼식에서 구두를 신고 뛰어다녔다. 나를 챙기지 못한 결과로 나는 몇 개월을 목발을 짚은 채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왕복 3시간 거리를 출퇴근했다. 1년 넘게 운동을 하지 못하고 회사에서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나의 정신과 몸은 지쳐가고 있었다.
"엄마, 회사 너무 힘들어.."
"안돼! 결혼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텨!"
"..."
나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는다.
내가 견디어낼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야지만, 쓰러지기 직전에서야 이야기를 한다.
엄마의 말을 잘 들었던 나인지라 좀 더 버텨보기로 했다. 자주 감기에 걸리고, 회복이 안되고 병원을 가는 날들이 많아졌다.
몸에 힘이 빠지고 식은땀이 나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빠..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너무 힘들어요.."
"당장 관둬!!"
'너무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
아빠는 나의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셨다.
결혼 전 저녁시간 아빠와 마주 보고 앉아서 1시간가량을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시고 공감해 주셨다. 나는 더 신이 나서 쫑알거리며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막내딸인 나를 정말 사랑해 주시고 아껴주셨다.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던 힘든 회사 생활을 끝내고, 쉬었다 재취업을 할 생각이었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쉬는 동안 결혼 준비를 하고 결혼을 하였으니 말이다.
몸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한의원도 다니며 치료를 해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니던 한의원에서 맥을 짚으며 이야기를 했다.
"기가 너무 약해서 아마 임신은 힘들 거예요"
어차피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신랑이랑 재미있게 둘이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