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선물 ㅣ 치사해서 나라돈쓴다
대학원과 부산에서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남편이 참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결혼은 너 재취업하고 난 뒤에 하는 게 어때?”
이런 치사함을 느낄까 봐 그러셨던 거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네 돈 안 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만으로 29살이었던 나는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혜택을 찾아보았다. 만 30세까지 청년으로 지원을 해주는 혜택이 있는 걸 찾아냈다.
그때부터 열심히 찾아보았다.
나랏돈으로 내가 배워서 시작할 수 있는 게 뭔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뭔지 말이다.
열심히 찾아보다 보니, 강남에서 하는 CS 강사 양성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이주 과정으로 교육을 받는 건데, 아침 일찍 가서 종일 수업을 듣는 과정이었다.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내 체력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체.. 말이다.
일산에서 강남에 가려면 시간이 좀 걸렸다.
아이도 없고 나 혼자만 챙기면 되니 쉽게 생각했다.
근데 아침을 챙겨 먹고 나가기도 벅찼고, 교육 시간이 빡빡해서 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들었다.
전엔 엄마가 정성껏 챙겨주시는 밥이 있었다.
이제는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각보다 교육이 힘에 부쳤다.
교육받으러 가던 어느 날,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들며 식은땀이 났다. 강남역에 도착하던 버스에서 난 기절했다. 잠시 기절했던 나는 다행히 버스의자에 앉아 있었고, 손잡이 부분에 머리를 대고 있었다. 너무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신랑에게 전화를 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한 번 더 기절했다 깨어났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교육을 받으면서 잘 챙겨 먹지 못해서 무리가 되었던 거다. 강남에서 받던 CS 교육은 마무리하지 못했다.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몸을 좀 추스르고 난 다시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교육을 찾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