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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말이 나를 드러낸다.

말 한다고 다 말이 되는건 아니다

by 아르칸테

16장. 말이 나를 드러낸다


사람은 말로 자신을 숨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말로 자신을 드러낸다.
입에서 나오는 말의 대부분은 타인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거나 보호하기 위한 언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언어를 들여다보면,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가 보인다.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종종 괜찮지 않다.
“괜찮다”는 말은 평정을 유지하려는 의지이기도 하지만, 감정을 인정하면 무너질까 두려워 억누르는 방어이기도 하다.
“괜찮다”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그 안에는 감춰진 불안이 자라난다.
결국 그 말은 타인을 안심시키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독백에 가깝다.

“넌 항상 그래”라는 비난의 말에는 사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절망이 숨어 있다.
사람은 타인을 공격할 때조차, 결국 자기 내면의 감정을 고백한다.
화를 내는 사람은 분노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비난은 언제나 자신이 감당하지 못한 감정의 그림자를 향하고 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세상은 원래 힘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체념의 프레임 안에 있다.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현실의 불안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나는 원래 그래”라는 말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는 방패다.
이처럼 말은 언제나 내면의 무의식이 만든 문장으로, 한 개인의 심리 구조를 그대로 비춘다.

그래서 대화를 들을 때는 내용보다 반복되는 언어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특정한 단어와 표현을 반복한다.
그 반복은 무의식의 흔적이다.
늘 “괜찮아”를 달고 사는 사람은 불안을 감추고 있고,
늘 “미안해”를 먼저 말하는 사람은 버림받을까 두려워한다.
늘 “나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사라질까 불안해한다.

언어는 성격보다 더 깊은 자화상이다.
성격은 타인이 보는 나의 겉모습이지만, 언어는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말은 언제나 ‘나의 심리 보고서’다.
그 보고서를 읽을 줄 알면, 타인보다 나 자신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말버릇을 관찰하는 일은 곧 자기의식의 시작이다.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왜 그런 어투를 선택하는지를 추적하다 보면
언어의 근원이 감정임을 알게 된다.
감정이 불안하면 말은 방어적이 되고, 감정이 평온하면 말은 단단해진다.
감정이 뒤섞인 말은 방향을 잃고, 감정이 정돈된 말은 신뢰를 만든다.

결국 말은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는 거울이다.
화려한 말로 자신을 포장해도, 그 말의 온도는 숨길 수 없다.
말을 다듬기보다 마음을 다듬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어는 마음의 질서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말은 하루하루 쌓여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
내가 어떤 말로 세상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세상도 나를 그 언어의 색으로 반사한다.
냉소로 세상을 설명하는 사람은 냉소적인 세상을 경험하고,
감사로 세상을 말하는 사람은 감사할 이유를 발견한다.
결국 말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자,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언어적 틀이다.

그래서 진짜 변화는 말에서 시작된다.
말을 바꾸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감정이 바뀐다.
감정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현실이 달라진다.
한 문장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나에게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가, 나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가를 결정한다.

우리가 매일 내뱉는 수많은 말 속에는 이미 ‘나의 서사’가 숨어 있다.
그 서사를 읽을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을 정확히 다시 쓸 수 있다.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세상과 맺는 방식이며, 동시에 나 자신을 해석하는 방법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더 자주, 타인을 향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는 타인을 달래는 말이 아니라, 무너질까 두려워 자신을 다독이는 말이다.
“나는 할 수 있어”는 타인에게 보내는 다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걸어놓은 주문이다.
이렇듯 언어는 내면의 불안을 통제하고, 흔들리는 자아를 붙잡기 위한 ‘심리적 구조물’이다.

그래서 말을 보면 그 사람의 방어기제가 드러난다.
과하게 웃는 사람은 긴장을 숨기고, 과하게 친절한 사람은 거절당할까 두려워한다.
마찬가지로, 과하게 자신감 넘치는 말은 사실상 ‘불안의 방패’다.
그 말이 커질수록, 내면의 공허는 깊어진다.
결국 사람은 말로 자신을 지키려 하지만, 그 말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취약한 지점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된다.

가장 위험한 건, 자신이 어떤 언어를 쓰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말을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감정이 말을 선택한다.
감정이 불안하면 말은 흔들리고, 감정이 평온하면 말은 단단해진다.
감정이 뒤틀리면 말은 왜곡되고, 감정이 정직하면 말은 곧다.
따라서 말은 언제나 마음의 그림자이며, 그 그림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

대화 속에서 반복되는 단어를 유심히 들어보라.
그 반복은 무의식의 신호다.
“나는 원래 그래”라는 말이 습관처럼 나오는 사람은, 변화가 두려운 사람이다.
“어쩔 수 없잖아”를 자주 말하는 사람은, 책임을 지는 걸 두려워한다.
“내 탓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죄책감 속에서 사랑받기를 갈망한다.
반대로, “너 때문이야”를 자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력감을 타인에게 투사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반복하는 말은, 자기방어의 언어 패턴이자 심리적 서명이다.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어떤 말을 가장 자주 사용하는가?
그 말의 뿌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유년 시절 부모의 말투일까, 사회가 요구한 생존 언어일까,

아니면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방어 언어일까?
그 뿌리를 추적하는 순간, 언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나를 구성한 심리의 족적이 된다.

많은 사람들은 ‘말을 고쳐야 관계가 좋아진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변화는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울 때 일어난다.
감정을 정리하지 않고 말만 바꾸면, 언어는 공허해진다.
예를 들어 “괜찮아요”라는 말을 다르게 표현해보자.
“지금은 괜찮지 않아요. 하지만 괜찮아지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 문장은 단 한 줄의 차이로, 방어에서 진실로 바뀐다.
감정을 솔직히 인정하면, 언어는 더 이상 벽이 아니라 다리가 된다.

대화란 결국 감정의 교환이다.
말의 정확성보다 중요한 것은 말의 온도다.
온도가 지나치게 차가우면 상대는 닫히고, 지나치게 뜨거우면 상대는 불안해진다.
적정한 온도의 언어는 공감을 낳고, 공감은 신뢰를 만든다.
이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어휘가 아니라 감정의 정직함이다.

말은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을 더 깊이 드러낸다.
왜냐하면, 타인에게 던지는 말조차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자신이 이기심에 대한 상처를 받았거나, 그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요즘 세상은 희망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한때 품었던 희망의 불씨가 꺼졌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타인에게 말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폭로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말은 현실을 해석하는 틀이며,
그 틀이 반복되면 결국 현실을 규정하는 ‘언어적 운명’이 만들어진다.
냉소의 언어는 냉소의 현실을 불러오고,
감사의 언어는 감사할 이유를 찾아낸다.
언어는 감정을 바꾸고, 감정은 행동을 바꾸며, 행동은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결국 말은 인생의 첫 단추다.

자신의 언어를 바꾸는 일은 곧 자신을 다시 쓰는 일이다.
“나는 항상 부족해”라는 오래된 문장을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야”로 바꿔보라.
그 순간 부족함은 결핍이 아니라 성장의 증거가 된다.
“나는 외로워”를
“나는 연결을 원하는 사람이야”로 바꾸면,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로 바뀐다.
이처럼 단 한 줄의 언어가 감정의 프레임을 전환시키고,
그 프레임이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결국 말이란, 나의 세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다.
세상을 원망의 언어로 보면 세상은 원망스럽고,
세상을 이해의 언어로 보면 세상은 이해할 만한 이유로 가득하다.
언어는 현실을 바꾸는 가장 작은 철학이자, 가장 큰 힘이다.


오늘의 한 줄 연습
“내가 쓰는 말이 나를 만든다.
그러니 말하기 전에 먼저 ‘나의 마음’을 점검하라.
말의 품격은 결국 마음의 질서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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