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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말의 진실을 지키는 법

말 한다고 다 말이 되는건 아니다.

by 아르칸테

진심이 말의 방향이라면, 진실은 말의 뼈대다.
진심이 일시적인 감정의 온도라면, 진실은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중심이다.
말의 진실이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감정, 생각, 행동이 서로 일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 일치가 깨질 때, 말은 신뢰를 잃고 사람은 자신을 잃는다.

사람들은 종종 “진심으로 말했다”고 하지만, 그 말이 언제나 진실인 것은 아니다.
진심은 순간의 감정에서 나올 수 있고, 감정은 언제든 변한다.
진실은 감정의 변화를 넘어,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기 기준’이다.
진실한 사람은 기분이 달라져도 말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의 말은 감정의 흐름 위가 아니라, 신념의 기반 위에서 나온다.

진실은 말의 중심을 잡는 윤리적 척추다.
진심이 지나치면 감정이 앞서고, 이성만 앞서면 인간미가 사라진다.
그 사이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진실이다.
진실은 감정을 품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진실한 말은 따뜻하지만 흐리지 않고, 단호하지만 차갑지 않다.
그 균형이 무너질 때 말은 오염되고, 대화는 권력이 된다.

진실을 지키는 말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진실은 늘 편하지 않다.
때로는 침묵보다 불편한 말이 되고,
때로는 다수를 거슬러 외로워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언어는 도덕이 된다.
진실은 타인을 상처입히기 위해 던지는 말이 아니라,
서로의 현실을 바로보게 하는 거울이다.

진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나 자신이 거짓에 물들지 않도록 지키는 최소한의 경계다.
거짓은 순간의 이익을 주지만, 결국 자신을 허무하게 만든다.
진실은 때로 손해를 주지만, 그 손해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진실한 말은 즉각적인 박수를 받지 못할 때가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말만이 남는다.
진실은 사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거짓은 언젠가 무너진다.

진실을 지킨다는 것은 말의 일관성을 지킨다는 뜻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도록, 말이 나 자신을 배반하지 않도록.
“나는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그 질문 하나를 잃지 않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다.
진실한 말은 화려하지 않다.
그 말은 조용하고 단단하다.
그는 변명하지 않고, 스스로의 언어에 책임을 진다.

진실을 말하려면 먼저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타인에게 진실할 수 없다.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지 않으면, 진실은 늘 다른 사람을 향한 공격으로 변한다.
그래서 진실한 대화는 자기 부정이 아니라 자기 인정에서 시작된다.
“그래, 나는 그때 두려웠어.”
“그 말을 한 이유는 상처받기 싫어서였어.”
이렇게 자기 진실을 마주한 사람만이, 타인에게도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다.

진실한 말은 관계를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관계를 망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이 빠진 관계야말로 이미 부패한 관계다.
겉으로는 평화로워도, 속에서는 거짓이 썩어간다.
진실이 한 번의 불편함을 가져온다면, 거짓은 평생의 왜곡을 낳는다.
진실한 대화는 순간의 충돌을 감수하고, 그 뒤의 평화를 지향한다.
그것은 용서와 신뢰의 씨앗이 된다.

진실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생존의 감각이다.
거짓은 언제나 피로를 남긴다.
거짓말을 한 사람은 말을 기억해야 하지만, 진실을 말한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다.
진실은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 단순함이 평온을 주고, 그 평온이 관계를 오래 가게 만든다.
결국 진실은 가장 경제적인 언어다.
거짓은 복잡하고, 진실은 단순하다.

말의 진실을 지키는 사람은 언어를 신중히 다룬다.
그는 ‘옳은 말’보다 ‘진실한 말’을 택하고,
‘이기는 말’보다 ‘살리는 말’을 선택한다.
그의 언어는 타인을 꺾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지 않는다.
진실은 언제나 균형 위에서 존재한다.
그 균형이 사람을 신뢰하게 만들고, 대화를 인간답게 만든다.

진실을 지킨다는 것은 완벽하게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사실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다.
그 균형을 잃지 않는 사람이 결국 관계의 중심을 지킨다.
진실한 언어는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고,
거짓된 언어는 관계를 부식시킨다.
말의 진실을 지키는 일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오늘 하루 내가 한 말을 저녁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이다.

결국 진실은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진심을 담아 말하고, 그 말에 책임을 지고,
그 책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말의 진실을 지키는 사람의 태도다.


진실을 지키는 말은

언제나 고요한 곳에서의 사유 시간을 필요로 한다.
관계 안에서는 감정이 흔들리고,
대화 중에는 판단이 흐려지기 쉽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가장 개인적이고 침묵이 허락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반드시 확보한다.

집에 돌아온 밤,
조용한 방에 앉아
오늘 내가 한 말을 하나씩 떠올리는 일.
그것은 단순한 복기가 아니라
진실이 어디에서 흐려졌는지를 살피는
윤리적 점검이다.

집은 변명할 상대도 없고,
상처 입힐 대상도 없다.
오직 나 자신만이 남는다.

그 고요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다.

“나는 왜 그 말을 했을까?”
“그 말 뒤에 숨긴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건 이해였나, 아니면 우위였나?”

이 질문들을
하루의 끝, 집에서 묵직하게 마주하는 사람만이
다음날의 대화에서 진실을 지킬 수 있다.

사유의 시간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열리는 재판이다.
거짓은 조용히 사라지고,
진실은 고요 속에서 형태를 되찾는다.

침묵이 허락된 공간에서의 사유는
말을 정화하는 정수기와 같다.
하루 종일 섞인 감정, 억울함, 자존심, 피로가
천천히 걸러지고
마지막에 남는 것이 진실이다.

이 사유의 시간을 지키는 사람은
다음날 말이 흔들리지 않는다.
말은 단단해지고,
관계는 부식되지 않는다.

결국 진실한 말은
즉흥에서 나오지 않는다.
개인의 안전한 공간에서 스스로를 다시 정돈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그 사유의 시간이 쌓일 때,
그 사람의 언어는 흔들림 없는 윤리의 방향을 갖게 된다.

고요한 사유야말로
진실을 지키는 말의 가장 깊은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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