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철학자의 법정
죄명: 사랑을 욕망과 타락으로 변질시킨 죄
[악마 소개]
제파르.
옛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붉은 옷을 입은 전사로 나타나며,
남녀의 마음을 흔들어 사랑을 뒤틀고 타락시킨다고 한다.
그의 능력은 ‘사랑의 왜곡’이다. 그는 순수한 애정을 욕망으로 바꾸고,
헌신을 소유욕으로 바꾸며, 연인을 서로의 올가미로 만든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불타는 질투와 집착,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순간이다.
그가 싫어하는 것은 타락의 독배다. 그 독배는 그가 일으킨 욕망을
다시 입안으로 되돌려 삼키게 한다.
오늘 그는 피고석에 앉았다.
[법정 심문]
철학자(아르칸테): 피고, 네 이름과 죄를 말하라.
제파르: 나는 제파르.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불타오르고,
서로를 갈망했다.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지 않았는가. 나는 단지
그들의 심장을 뜨겁게 했을 뿐이다.
철학자: 네 죄명은 사랑을 타락시킨 것이다. 네가 만든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이었고,
헌신이 아니라 집착이었다.
제파르: (웃으며) 욕망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집착 없는 애정이 어디 있는가.
나는 진짜 사랑을 일깨웠다.
철학자: 아니다. 욕망은 사랑의 일부일 수 있으나, 전부가 될 수 없다.
너는 사랑을 불타는 집착으로 바꾸어, 서로를 구원하지 않고 서로를 파멸시켰다.
제파르: 그러나 사람들은 기꺼이 내 불길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원했다.
철학자: 원했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다. 너는 그들의 불안을 이용했고,
그들의 고통을 사랑이라 포장했다. 그것이 네가 지은 죄다.
제파르:
“불안을 이용했다고?
아니, 나는 인간이 원래 품고 있던 불안을 ‘진짜 얼굴’로 꺼냈을 뿐이다.
사랑은 원래 두렵고, 불안하고, 붙잡고 싶고, 잃기 싫은 것이다.
나는 그 진실을 조금 더… 불타오르게 했을 뿐.”
그는 허리를 곧추세우며, 마치 자신이 ‘사랑의 본질’을 통달한 현자라는 듯 말했다.
제파르:
“오히려 네가 사랑을 모르는 자다, 철학자.
사랑이 그렇게 고요하고, 점잖고, 책임만으로 되는 줄 아느냐?
사랑은 소유하고 싶은 욕망,
남이 보면 미친 짓이라 부를 만큼의 질투,
도망가면 미칠 듯이 쫓고 싶은 집착이 있어야 깊어지는 법이다.”
철학자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파멸이다.”
제파르:
“파멸이어도 좋다!
그들은 원했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갈망하는 감정,
그 뜨거운 절벽 위에 서 있는 듯한 짜릿함을!”
그의 목소리는 법정의 돌벽을 울렸다.
질투의 연기가 그의 어깨에서 피어올랐고, 눈동자는 붉은 금속처럼 빛났다.
제파르:
“너는 사랑을 책임으로 묶으려 한다.
하지만 책임만 남은 사랑은 무덤이다.
내가 준 사랑은 살아 있었다.
숨을 쉬고, 울부짖고, 서로를 갈가리 찢고라도 붙어 있으려 했다.
그게 더 인간적이지 않은가?”
철학자:
“아니다.
너의 사랑은 서로를 구원하지 못하고 서로를 소유물로 만들 뿐이었다.
너는 사랑을 욕망으로 축소해 타락시켰다.”
제파르는 피식, 비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파르:
“타락?
아니, 철학자.
내가 건드린 건 사랑의 ‘본래 색’이다.
질투는 사랑의 그림자,
집착은 사랑의 뿌리,
욕망은 사랑의 첫 불꽃이다.
나는 그것을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네가 무서워 가리고 싶은 진실을
나는 세상에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철학자를 꿰뚫어보듯 응시했다.
제파르: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사랑의 가장 진실한 형태를 보여준 질투의 화신이다.
너는 그 뜨거움을 견딜 용기가 없을 뿐이다.”
침묵.
그러나 그 침묵은 굴복이 아니었다.
철학자의 눈빛은 더욱 맑고 단단해졌다.
그리고 이제, 심판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판]
철학자는 타락의 독배를 제파르 앞에 내밀었다.
검은 액체가 담긴 잔에서 쓰디쓴 연기가 피어올랐다.
철학자: 제파르, 이 독배는 네가 일으킨 사랑의 타락이다. 네가 준 욕망과 집착을
네 입으로 다시 삼키라.
제파르가 비웃으며 독배를 들이켰다. 그러나 곧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랑이라 부르던 순간들이 독처럼 그 입안에서 터져 나왔다.
질투, 소유욕, 집착, 파괴된 연인들의 울음소리가 그의 목을 조였다.
그의 붉은 옷은 검게 변하며 갈라졌다.
제파르:
“힉…! 이게… 사랑이… 아니다…!
내가 만든 건… 아름다웠어!
그들이 나를… 원했다고…!”
그러나 그의 목을 조르는 것은
그가 평생 사랑이라 부르며 팔아온 집착의 울음이었다.
연인을 감시하던 눈,
답장을 기다리며 밤을 울던 마음,
서로를 붙잡으며 스스로를 잃어가던 그 어둠들이
독처럼 그의 인후를 파고들었다.
제파르:
“놔…! 내 것이야…!
사랑은
사랑은… 원래… 이렇게…!”
그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마치 뺏긴 연인을 되찾으려는 듯
미친 듯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철학자:
“아직도 붙잡으려 하는가.
네가 만든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였음을
이제야 깨닫는가?”
제파르는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다.
그는 무릎을 짚고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독배가 그의 몸속에서 끓어오르며
그의 다리를 무너뜨렸다.
제파르:
“아니야…!
나는 그들을 잡아준 거야…
놓치지 않도록…
버려지지 않도록…
사랑은 사랑은 붙잡는 거야!”
그는 독성과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철학자의 말에 굴복하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고, 눈을 부릅뜨고,
마치 한 사람이라도 다시 붙잡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내줄 듯한 광기 어린 집착이 그의 얼굴을 지배했다.
하지만.
그의 손끝은 더이상 아무것도 붙잡지 못했다.
독배는 그의 입안에서 마지막으로 터져
수많은 울부짖음이 그의 귀를 찢어버렸다.
철학자: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제파르.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서는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제파르의 붉은 옷은 완전히 검게 타올라
지독한 재로 허공에 흩어졌다.
제파르는 몸을 움켜쥐며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분노도, 질투도, 사랑도 아닌
집착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귀환]
잔이 산산조각 나고, 남은 것은 고개를 떨군 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사랑을 욕망으로 타락시킨 죄인이다. 이제는 집착이 아닌 책임으로 사랑하겠다."
[교훈]
욕망은 사랑을 불태우지만, 끝내 재로 만든다.
진짜 사랑은 집착이 아니라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