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올려두어야 할 책이 한 가득이다. 주룩주룩 읽어대고 있는데 어떻게 기록해 두어야 할까 생각하다가 또 다른 책을 맞이하고 또 맞이한다. ( 집안 곳곳에 책 트랩을 설치해뒀다. 거실 한 복판, 내 책상, 작은방 협탁 등등. 그렇게 하면 일주일에 최소 3권은 독파 가능하다.)
02. 일부러 나는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가량 일찍 집을 나선다. 일찍 나서서 책 한권을 다른 장소에서 다른 느낌으로 맞이해보고 싶기 때문인데, 가끔 상대로부터 늦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기쁜 마음으로 '늦게 와. 천천히 조심해서 와.' 답장을 한다.
03. J와의 약속 시간을 앞두고 늘 그렇게 일찍 길을 나섰다. 오전 내도록 비가 오다가 날이 개었는데, 버스정류장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너무 예뻐서 괜스럽게 가방속의 책을 꺼내 들었다. <당신이라는 보통 명사> 라는 책을 내 방의 작은 도서관에서 소중하게 뽑아 들고 나온 참이었다. 읽기 가벼운 에세이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대충 작가가 나와 같은 나이 시절을 걷고 계신분이라는걸 짐작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솔직해도 제법 아주 많이 솔직한 문장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니까, 이걸 공공장소에서 꺼내서 읽어도 되나? 할 정도로 너무나 솔직해서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혹시 내 책 내용을 옆 사람이나 뒷 사람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려나 짐짓 거려 보다가 이내 곧 무슨 상관 이람 하는 마음에 주룩주룩 읽어나갔다.
04. 까페에서 책을 읽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J가 도착했다. J는 자칭, '나는 책 별로 읽지 않아' 라고 말하지만 유명한 책이나 고전문학은 다 헤아리고 있는 편이어서 서로 문학 대사들을 주고 받는 취미가 있다. 하여간, 예쁜 주황빛의 책을 보고는 궁금해 했고, 나는 이거 아주 솔직한 책이다 하며 내가 부끄러워졌던 페이지를 골라내어 건내었다.
05. '와우. 솔직한데. 우리랑 다른 세상일세.' '그치. 이런 경험들을 할 수가 있구나 싶어. 그래서 신기하더라고. 그 나이대에 그랬구나 싶어서. 우린 진짜 샌님에 범생이었잖아.' '맞아. 아직도 그러고 있잖아. 근데 나쁘지 않은것 같아.오히려 반대로 행동하면 스스로 혐오하게 될 걸. 너나, 나는.'
06. 다분히 솔직하다 라는 단어로 이 책을 단정지을 수는 없겠다. 다만 같은 계절 속에서 제법 나와는 다른 선택지 만을 요모조모 선택한 작가의 이야기들이 제법 많이 신기 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세상이나 이야기들을 전해 들을 수 있어서, 책을 읽는 일은 언제나 득이 많은 행위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