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 건강한 사고의 핵심
스캇 벡은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책임감을 기준으로 성격장애와 신경증을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건강한 자존감, 바람직한 양육을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책임감을 갖는 것이 핵심요소이다.
현실보다 과도한 책임감을 갖는 상태를 신경증이라 할 수 있고, 이와 반대로 책임감이 부족해 현실을 회피하는 성향을 성격장애가 있다고 판단한다.(물론 정신병적인 것이 아니라 정도에 따라 단순히 성격적 특징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p51
어떤 의미에서 모든 아이는 성격 장애를 지니고 있다. 본능적으로 자기가 처한 많은 갈등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경향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아이는 신경증도 갖고 있다. 아이들은 어떤 상실을 겪고 납득이 안 되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책임지려 한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부모는 아이의 성장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자기 행동에 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때 이를 지적해줄 수도 있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줄 수도 있다.
p65~70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낡은 견해(주로 어린 시절의)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상태가 심각한 정신 질환의 원인이다. 특히 어린 시절의 환경에서는(생명을 구할 정도로) 아주 적절하지만, 어른이 된 환경에는 부적절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결국 치료에 실패한 30대 초반의 컴퓨터 기술자가 있다. 처음에 그는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나버렸기 때문에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나에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어린 시절 부모가 그를 실망시켰던 많은 일화를 자세히 이야기했다. 부모는 주말에 같이 놀아주겠다고 약속하고는 대부분 '너무 바빠서' 지키지 못했다. 청소년 시절의 어느 날 그는 더 이상 부모를 믿을 수 없음을 깨닫고 괴로웠다. 더 이상 부모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혹은 부모의 약속에 희망도 품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더 이상 부모를 믿지 않게 되자 그가 자주 겪었던 극심한 실망은 신기하게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적응은 장차 문제의 소지가 된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이 세상 전부다. 어린아이에게는 다른 부모는 다르고, 흔히 더 낫다는 것을 알아볼 안목이 없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체득한 '현실'에 대한 인식은 "나는 우리 부모를 믿을 수 없어"가 아니라 "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어"로 완성된다.
따라서 그가 성인기에 다다랐을 때 지니게 된 신념의 지도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도를 수정할 기회는 많았으나 그는 모두 지나쳐버렸다. 믿을 만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배울 유일한 기회는 그들을 믿는 모험을 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다음, 이러한 재학습을 위해서는 부모에 대한 견해를 수정해야 한다. 즉,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보통의 다른 부모와 달리 요구에 냉담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지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어린 시절에는 적절한 적응 방법이었던 것은, 그 방법이 실망감과 고통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잘 써먹고 있는 적응법을 포기하기란 지극히 힘들다.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믿지 않았고 무의식중에 그런 불신을 확인시켜주는 상황을 만들었으며 모든 사람과 자신을 격리시킴으로써 스스로 사랑, 친밀함 등을 누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는 아내와 가까워지는 것도 허용할 수 없었다. 그녀 역시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두 자녀뿐이었다. 아이들은 그가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고 그에게 대항할 아무런 힘이 없는 유일한 존재이자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심리치료는 신념의 지도를 수정하는 과정이 된다. 그러나 환자들은 지도에 집착해서 그것을 수정하는 단계마다 그 과정을 뿌리치려 얼마나 애쓰는지 모른다. 지도에 집착하고 지도를 잃지 않기 위해 싸우려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치료할 수 없어진다. 컴퓨터 기술자가 꼭 이 같은 경우였다.
내 생각에 어린 시절 부모의 잘못된 양육으로 인해 부적절한 정도의 책임감을 갖게 되면 신념의 지도가 비뚤어지고 이는 일생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지도를 수정하는 과정은 험난하기에 심리치료사와 동행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