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고 유신헌법 반대데모·부마항쟁·광주민주화 운동 등 전국 민주화 진행
필자는 민주화 상징 '서울의 봄'이 주객이 전도된 용어로 판단된다. 이 용어는 전국 8도가 박정희•전두환의 군부독재를 종결하고자 쏟은 민주화 운동의 노력을 온전히 담지를 못 한다. 이 대신 서울이 마냥 대한민국 민주화에 절대적으로 헌신한 심상만을 야기하기 충분해 보인다. 또한 가뜩이나 한국인과 세계인이 강력하게 각인한 '서울공화국' 개념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이에 따라 필자는 ‘서울의 봄’ 용어를 ‘한국의 봄’으로 치환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은 군사독재를 2차례 경험한 흑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첫 번째는 3공화국을 총성으로 연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이다. 이승만 정권이 군인들에게 낮은 처우, 승진의 불공정을 잇따라 펼치자 박은 국가재건을 목표로 1961년 5월 16일 3500여 명 부하를 대동해 한강을 건너 정권을 움켜잡았다. 박은 이어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결성해 법제·사법, 내무, 외무·국방, 재정·경제, 교통·체신, 문교·사회, 운영·기획의 7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직속기관으로 중앙정보부·재건국민운동본부·수도방위사령부 및 감사원을 두어 군정을 펼쳤다. 이 독재정치는 박이 1972년 10월 국회 해산 및 정당·정치 활동 정지 등에 대한 특별선언을 시작으로 추진한 유신헌법 때문에 이어서 진행된 가운데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1979년 10월 26일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의 중앙정보부 안전가옥에서 연회를 즐기던 박을 암살하면서 막을 내렸다.
박 독재정치가 종결됐지만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은 전두환 신군부(하나회가 주축)가 독재를 시행하도록 허락했다. 10·26 사건이 터지자 계엄법에 따라 전두환은 국군보안사령관으로서 합동수사본부장을 역임한다. 전두환은 이에 국가를 통제할 정보력을 구비하자 하나회와 함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해 국정 실권을 결행했다. 권력 맛을 본 전두환은 1980년 8월에 단행된 12대 대통령 선거를 서울종합잠실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소위‘ 체육관 선거’를 치러 다시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수행한 뒤 1988년 대통령 자리에 퇴임했다.
상기한 2명 독재자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사이 10·26 사태로 박 독재정치가 멈췄고 전두환이 왕좌에 등극하지 전 기간에 잠시나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한반도에 정착될 것으로 예상한 시기(1979년 10월 27일~1980년 5월 17일)가 있다. 이 시기는 이른 바 ‘서울의 봄’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용어가 유신헌법을 전국 최초로 반대한 전북 전주고의 데모운동, 1979년 발생한 경남지역의 부마항쟁, 1980년 궐기한 전남 일대의 광주민주화 운동 등 전국 8도가 대한민국 민주주의 달성에 기울인 실천과 노력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이 용어 안에 전국 모든 도시 가운데 ‘서울’ 명칭만이 기입돼 서울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달성과 정착에 대한 모든 결실을 가져가는 것으로 비춰지는 문제점이 나타난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언어가 곧 우리의 세계를 형성하고 제한한다는 의미를 담은 ‘언어가 세계를 규정한다“는 발언에서 이 문제점의 문제를 재차 확인할 수가 있다.
더불어 한국인 의식 구조에 만연히 자리잡힌 ’서울공화국‘ 개념이 공고히 굳게 하는 역할도 담당하는 듯 하다. 그럴 것이 이성계가 1392년 조선을 건국한 이래 서울은 한반도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유행 등의 중심지로 강변됐다. 인지도가 전혀 없던 사람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곧장 대통령 유력 후보군으로 부상되고 여의도증권가•강남테헤란로 거리는 GS그룹 등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의 집합소이며 수능성적 상위권 수험생을은 지방대 입학 대신에 일제히 인서울을 목표로 하는 현상은 한국인 의식에서 서울이 차지하는 위상을 명확히 실증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호·영남 지역갈등, 세대 갈등, 진보·보수 갈등, 빈부갈등 등 다양한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채 설상가상으로 트랜스젠더 등 새로운 갈등마저 출연하고 있다. 이에 한국인이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하는 ’서울의 봄‘ 용어 대신 ’한국의 봄‘을 사용하면 전국 8도가 대한민국 민주주의 달성에 기울인 실천과 노력을 인정받은 동시에 통합이 되는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한다고 확신한다.
다가올 ’한국의 봄‘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