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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Feb 20. 2020

집, 부동산 그 이상의 의미

부알못의 추억팔이

 집값이 올랐고, 집주인은 지난주 집을 내놨다. 


 결혼하고 적당한 위치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 단열 기능이 약하다는 게 이 집의 최대 단점이긴 하지만 아파트 위치, 저층이라는 것(나는 높은 곳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나름 관리가 잘 되어 단지가 깨끗하다는 점 등 장점이 더 많은 곳이다.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이 집에 오래 살았던 집주인은 아이의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간다고 하면서 애가 졸업만 하면 다시 올 거라고 이야기했었다! 나이 들면 여기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을 것 같다며. 


 그랬던 집주인이 집을 내놨으니 집 보러 오면 부탁 좀 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문자를 받고 알겠다고 답을 보내고 집값이 궁금해져서 검색해봤더니 지난가을보다 1억 이상 올랐다. 그러니 이런 상황이면 안 내놓기도 어렵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저녁, 갑자기 남편한테 전화가 와서는 우리 보러 지금 이사를 갈 수 있냐고 물어봤다! 혹시 바로 들어와 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를 내보내고 이 집을 팔 작정이었나 보다. 좀 생각해보겠다고 전화를 끊고 모니터 한가득 동네 지도를 펴놓고 부동산을 검색해보는데 다른 집들도 전반적으로 많이 올랐기에 지금 살고 있는 정도의 평수로 옮기려면 적금 통장 몇 개는 깨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는 이사 비용을 받더라도 절대적으로 손해 보는 상황. 내년 가을, 계약 기간까지는 살아야겠다는 남편의 말에 집주인은 언짢은 기색이었다. 




 부동산 사장님의 번호가 자주 사용하는 연락처로 떠올랐다.


 벌써 세 번이나 집을 보러 왔었다. 집을 보러 온다니 신경이 쓰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 오기 전에 무선 청소기로 머리카락 덩어리들을 치우고 평소 같으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잠옷과 추리닝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겼다. 게다가 나는 학교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늘 가지고 있다. 실제로 지금 같은 동에 작년, 재작년 졸업생들도 살고 있는지라. 우리 집으로 들어온 누군가가 내 얼굴을 보고 "쌤!"이라고 외치면 정말 사라지고 싶을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주에는 일정도 취소하고 집 보러 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그랬는데 얼마 전 만난 선생님 얘기가, 자기네 집 세입자는 집 좀 보겠다고 연락을 하면 받지도 않고 보여주기 싫다고 버티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내가 너무 착한 세입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주인은 집값이 올랐을 때 어떻게든 이 집을 팔아넘기고 싶을 것이고, 한 건이라도 계약을 성사시키고 싶은 부동산 사장님도 한마음이겠지만, 나는 별생각 없는 게 사실이니까. 아니면 다른 바람을 가져야 하는 걸까. 귀찮다. 솔직히 정말 귀찮다. 솔직한 마음은 집 좀 보러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집을 살 수 있을까. 


 결혼할 때 대출받지 않고 우리 힘으로 오래된 아파트에라도 전셋집을 장만했다는 게 뿌듯했다. 우리는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나름대로 여행도 많이 다녔다.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적금도 붓고 있다. 그런데 부동산을 알아보고는 갑자기 마음이 거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 속도로 돈을 모으면 언제쯤 집을 살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그 언젠가 사주팔자에서 들었던, 나중엔 돈방석에 앉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나의 운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 생각하고 꿈꾼다. 내가 어떻게 돈방석에 앉지? 사표를 쓰고 다른 일을? 아니면, 하고 남편을 쳐다보면 남편은 언제나 "돈 많으면 뭐해요?"라고 말한다. 남편은 신기하게도 정말 욕심이 없다. 


 어린 시절 나는 이사를 정말 많이 다녔다. 많이도 반복된 이사였지만 할 때마다, 살던 집을 떠나려면 아쉬운 마음이 앞섰다. 집이 좋았건 안 좋았건 상관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새로운 집에 금방 적응해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어쩌면 삶에 대한 자그마한 깨달음을 얻었을 수도 있다. 반면 남편은 부모님 집에 살면서 이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편이 4살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은 같은 집에 살고 계신다. 집이 오래돼서 새 집으로 이사하시라는 주위의 말에 시부모님은 그래도 이 집에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애들을 다 키웠는데 어떻게 떠나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점에서도 우리 시부모님이 정말 존경스럽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사람들 말이 맞았다. 결혼할 때 대출을 받고 조금 무리해서 집을 샀으면 지금 그 집이 올라서 적금 이자보다 훨씬 더 큰 액수의 이익을 봤을 텐데.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그렇게 하라고. 그런데 어느 집으로 갈지, 돈은 얼마인지는 내게 두 번째 문제였다. 2년 넘게 산 집을 한 번 휘 둘러봤다. 텅 빈 집에 와서 새 가구와 가전제품을 하나씩 들여놓으며 우리가 처음으로 만든 보금자리였다. 떠날 생각을 하니 너무너무 아쉬웠다. 이 집을 떠남과 동시에 나의 신혼생활도 꺾일 것 같은 느낌이다. 집주인은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나는 또 이 집에 크나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부동산'으로 돈벌이의 수단으로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게는 이 집이 부동산 그 이상의 의미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 집을 사? 남편은 내게 미쳤냐고 말했다. (ㅎㅎㅎ)


거품이에요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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