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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엄마, 엄마' 부르며 살고 싶다

by 스토

어릴 적에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것에 관심이 없었다.

보고 들어도 그저 그러려니. 나와 상관없는 일 같아서 그랬던 거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때 나는 그저 슬펐을 뿐이다. 이별이 아파서 괴로웠지 다른 건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달랐다. 50이 넘어 아빠를 떠나보내고, 아픈 시부모님을 돌보며 나는 나의 늙음과 죽음을 예상했다. 내게 가까울 일이라 차마 떨칠 수가 없었다. 잘 늙고, 잘 죽고 싶다는 생각에 늙음과 죽음이 떠나지 않고 내 곁에 맴돌았다.


매주 엄마를 만나는데, 엄마는 만날 때마다 아픈 시어머니 안부를 물었다.

결혼식 때, 아이 돌잔치 때 정도 본 게 다인 사이인데 엄마는 시어머니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자주 울었다.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인 양 당부를 했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를 위로해야 했지만, 얼마 후면 다시 아픈 시어머니나 주변 노인들 이야기를 엄마랑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내게 말했다.

“내가 아프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나를 가만히 둬.”

단 한마디였지만 그게 엄마의 진심인 걸 알 수 있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엄마의 그 맘도 나랑 비슷해서 그러려니 했다.



얼마 전에는 비워두었던 시댁에 세를 들였다. 세를 놓아서 어머니 병원비에 보태기로 했다. 병원 생활이 2년이 다 되어가니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기는 힘들다는 걸 자식 모두 받아들이게 되었다. 적지 않게 드는 병원비도 보탤 겸 아쉽지만 세를 놓기로 했다.

수십 년간 어머니가 살아온 집에는 쌓인 짐이 많았다. 아끼고 절약하며 사신 삶이 고스란히 담겨 버릴 것은 더 많았다. 짐을 치우는 데만 상상하지 못한 많은 돈이 들었다.

“시댁 짐 치우는데 얼마 들었는지 알아? 한번 맞춰봐.”

엄마랑 언니들을 만난 날 나는 신기한 일인 양 떠들었다. 비용을 듣고는 다들 그렇게나 많이 드는 거냐며 놀랐고, 달리했으면 좀 아끼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며칠 후 엄마가 장에 든 안 쓰는 이불을 버렸다는 얘기를 언니를 통해 들었다. 남동생이 결혼할 때 올케가 해온 두툼하고 폭신한 요와 이불. 귀하고 고운 것은 알겠지만 이제 침대를 쓰니 그런 이불을 쓸 일은 없었다. 엄마는 커다란 쓰레기 봉지에 힘들게 이불을 욱여넣어 버렸다고 한다. 우리 있을 때 시키지 그랬냐고, 이불을 봉지에 넣고, 들고나가 버리려면 힘들었을 거라고 언니가 잔소리를 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잔소리를 들을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늘 가능하면 자신의 일을 우리 몰래 처리하려 하셨다. 결국에는 알게 되어 잔소리를 듣곤 했지만 말이다.

‘역시 우리 엄마는 못 말려’ 생각하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내가 노인의 일을 먼일처럼 느끼지 않는 것처럼 엄마는 그 일들을 더 가까이 느꼈던 거 같다. 그래서 자식 시킬 새도 없이 서둘러 버릴 물건을 버린 거 같다. 나는 이런 엄마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 걸까? 잠시 멍해졌다. 나 잘 늙어가겠다고 하는 말들이 엄마를 조급하게 만든 건 아닌지, 잠 못 들게 하진 않았는지 싶었다.


가만히 내가 했던 말들을 되뇌어 보는데 그게 다 떠오르지 않아 미안하다. 이래서 나는 아직 자식이고, 엄마는 여전히 엄마인가 보다. 오래도록 엄마, 엄마 부르며 살고 싶다. 좀 미안한 일을 저질러도 계속 좋은 자식 되려고 노력하고 싶다. 엄마랑,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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