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씨앗 하나가 몸에 달라붙었다.
걱정 씨앗 하나에 검은 밤인데도 잠을 자지 못했다.
걱정 씨앗으로 생겨난 걱정스런 생각이 발밑에서부터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걱정이 차오르자 발끝이 무거워졌고,
무거운 발끝은 걱정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지는 것도 힘들게 했다.
걱정하는 마음 못지않게 걱정에서 달아나고 싶은 맘이 커졌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짜증인지 괴로움인지 구분하기 힘든 감정에 휩싸여 눈물이 났다.
눈물은 걱정 씨앗으로 흘러내렸다.
눈물이 닿자 걱정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은 내가 아니라 걱정나무가 되었다.
뿌리는 더 길고 굵어져 이제는 옴싹달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디서 날아든 걱정 씨앗이었는지 그 시작도 희미해졌는데
힘없이 날아든 걱정 씨앗은 결국 나를 괴로운 사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무너뜨렸다.
걱정 나무에서 걱정 꽃이 피기 시작했다.
꽃에서 생겨난 걱정 씨앗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그 씨앗이 누구에게도 가 닿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걱정 씨앗은 내가 볼 수 없는 먼 곳까지 흩날려 떠났다.
좌절감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 걱정이 폭풍 같은 걱정과 슬픔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끝나지 않고 퍼져나가는 걱정에 좌절을 거듭하던 어느 날.
나는 굳은 의지를 품고 톱을 꺼내 들었다.
나를 버려 걱정이 퍼져나가는 걸 걷어내리라, 끝내리라 마음먹었다.
톱으로 자른다고 해서 걱정 나무가 죽고, 걱정이 사라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나무는 일정하게 잘라주면 더 크고 건강하게 자라나기도 하고,
잘린 나뭇가지가 땅에 뿌리를 내려, 다른 나무가 되어 자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
나는 무엇이든 해보기로 했다.
이 의지가 언제 꺾일지 몰라 바로 톱질을 시작했다.
‘쓱싹쓱싹’
톱질이 거듭되자 조금씩 아픔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속 품은 걱정으로 몸부림칠 때를 생각하면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더 힘을 내서 내 몸이 되어버린 걱정 나무를 자르는 데 힘을 주었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 일을 마쳐야 했다.
땀이 흐르건 말건 멈추지 않고 톱질을 했다.
그때 땀방울이 걱정 나무껍질에 ‘토독’ 떨어졌다.
땀방울이 닿자 나무껍질은 솜사탕에 물이 닿은 듯이 풀썩 꺼져 내렸다.
나는 흠칫 놀라 톱질을 멈췄다.
톱질은 멈췄지만 흐르던 땀은 멈추지 않고
다시 ‘토독’ 떨어졌다.
이번에도 걱정 나무껍질이 풀썩 꺼져 내렸다.
그때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한껏 달아올랐던 몸의 열기를 달래주었다.
‘이제 땀이 나지 않겠구나’
왠지 아쉬운 맘이 들었지만, 그냥 바람을 맞이하기로 했다.
그러자 바람이 마음을 놓은 듯, 내 몸을 훑어 들어왔다.
톱을 쥐고 있던 손가락 사이를 지나고, 답답하던 가슴을 스치고,
땀이 흐르던 목덜미를 감싸더니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사이까지 잊지 않고 스며들었다.
나는 바람이 이끄는 대로 내 몸을 맡겼다.
바람이 내 고개를 들어 올리기라도 한 듯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눈이 부시게 해가 비치고 있었다.
그 해를 제대로 볼 수 없어 살며시 눈을 감는데
햇빛 사이로 비밀처럼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이 불었을 때처럼 그 비를 고스란히 맞았다.
‘해가 나면서 비가 오면 호랑이가 장가는 날이라고 하던데 오늘이 그날이구나. 구름 없이도 비가 내릴 수 있는 귀한 날을 잡아 호랑이는 장가를 가는구나.’
나는 호랑이의 결혼이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호랑이의 결혼식은 길지 않았다.
그 가는 빗줄기에도 나는 흠뻑 젖고 말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젖었기 때문일까 몸이 묵직했다.
하지만 어딘지 부드러운 느낌도 들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걱정 나무껍질은 땀방울에 폭싹 내려앉았던 것처럼
가는 빗줄기에 모두 내려앉아 축 처져 있었다.
톱질을 한 곳에 큰 구멍이 생긴 것 외에는 그대로 축 내려앉았다.
나는 발밑에 깔린 걱정 나무껍질에서 쏙 빠져나왔다.
‘걱정 나무가 죽기라도 한 걸까?’
나는 젖어 내려앉은 나무를 찬찬히 보았다.
걱정 나무는 죽지 않았다.
그건 나무가 아니었다.
내가 키우고 만든 허상이었다.
‘걱정은’
나를 죽이는 톱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외투를 벗듯 벗어던져야 하는 거였다.
그때 다시 바람이 불고, 바람을 타고 걱정 씨앗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후’ 입김을 품어 걱정 씨앗을 밀어냈다.
그러자 씨앗은 바람 속으로 날아 흩어지며 사라져 버렸다.
걱정에는 일가견이 있어서
어린 시절을 개구쟁이, 장난꾸러기 같은 말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식이라면 나의 어린 시절은 걱정쟁이로 설명할 수 있을 거 같다. 작은 아이가 어두운 밤 이불속에서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끙끙대는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런 기억은 내 인생의 순간순간에 남아있어, 아마도 걱정은 내 유전자에 박혀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어려서도 지금도 겁이 많은 성격이다. 겁은 보통 이렇게 생겨난다. 걱정하는 마음은 두려움을 만들고, 두려움은 자연스레 겁을 끌고 온다. 겁은 상황과 상대를 가리지 않아, 겁을 내지 않기 위해서는 가만히 혼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생활이 그럴 수 있나. 그래서 일부러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있을 때면 힘이 들어 다시 수많은 생각에 쌓였다. 간단히 말해서 걱정을 하고 있는 거다.
나의 걱정은 이렇게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걱정이 무엇인지 가만히 보게 되었다. 경험이 쌓인다는 거, 나이를 먹는다는 건 걱정이 어떤 모습으로 와서 어떤 모습으로 떠나는지 알게 되는 것이었다. 걱정이 떠나면 다른 걱정이 생기곤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전에 걱정은 떨쳤으니 결국 내가 걱정을 이긴 셈이었다. 걱정은 고약했지만 결국 지나가고, 이겨내는 건 나였다. 시간이 지나며 내가 걱정에 맞서는 힘이 세진 것일 수도 있고, 걱정이란 것이 그렇게 한껏 부풀었다가 꺼지지는 비누 거품 같은 것일 수 있었다.
걱정을 정면으로 보면서 나는 나를 걱정으로부터 보호하고 달래는 방법을 고민했다. 걱정을 떨치기 위한 다짐 같은 글을 나에게 써주고, 안심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을 되뇌고, 내 손으로 가슴을 토닥여주고, 닿으면 부드럽고 포근한 이불을 사서 힘이 들 때면 딱 엎드려 발등을 비비며 포근하게 만들어줬다.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그런 일이 효과가 있다는 걸을 깨닫고, 난 나를 더 적극적으로 돌보기 시작했다. 걱정 씨앗이 와닿지 못하게, 와닿아도 다시 다른 바람에 떨어져 날아가 버리게. 그리고 이제 그 여정을 담아 혹여 걱정에 싸인 누군가가 있다면 위로를 전한다. 부디 행복하시라. 오늘도 좀 행복해야 하지 않겠느냐 말이다. 걱정에 휩싸인 그 순간에도 당신을 위로할 달콤한 초콜릿 하나 정도는 권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