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병아리>
오래전부터 독서 모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품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인스타에 글쓰기, 독서 관련 내용이 자주 추천으로 떴다. 처음에는 하도 글쓰기가 더뎌서 글쓰기 모임을 해볼까 하다가 결국에는 내게 숨 쉴 구멍을 찾아주자며 독서 모임으로 바꿨다. 그것도 그림책 독서 모임으로.
독서 모임이 열리는 곳은 파주 헤이리의 한 책방이었다. 막 문을 연 책방에서 책방 주인이 야심 차게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등의 일을 꾸리고 있었다. ‘이거 해 볼까?’ 하는 맘이 갑자기 들었다. 늘 망설이고 주저하는 내가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망설였다. 그래서 이번엔 나를 공들여 설득하기로 했다. 책방은 너른 창으로 푸른 숲이 보였고, 내가 읽을 책은 그림책이었다. 얼마나 좋을지 상상해 보라고 했다. ‘너는 책도, 글도, 그림도 게다가 예전 출판단지 다니며 일했던 기억에 파주도 좋아하니 망설일 것이 없잖아’하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책방 주인이 그림책 작가 고정순님이었다. 사실 나는 고정순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인스타에 글이 어딘가 단단한 느낌이 들어 검색을 해봤더니 <가드를 올리고>의 작가였다. 예전에 그 그림책을 보고 이렇게도 그림책을 만들다니 하며 놀랐던 기억이 떠올라 더 쉽게 나를 설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모임이 시작될 날이 다가오자 또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책방까지 가려면 왕복 3시간은 족히 운전을 해야 했다. 매주 엄마네 다니는 것도 왕복 2시간 넘게 운전하고 다니는데 하나를 더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못 간다는 말을 하는 건 더 어려워서 길을 나섰다.
멀기는 멀었다. 처음에는 오디오북을 켜고 가다가 자유로 들어서며 껐다. 자동차 속도가 빨라지니 소음도 커서 오디오북소리까지 들었다가는 귀가 피곤해서 견딜 수 없을 거 같았다. 오디오북을 끄니 가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50대, 내 삶이 이런 모습일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이가 많아지는 거라고만 여겼던 거 같은데 그건 결국 노화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거였다. 부모님을 여의고, 부모님을 돌보고 그러면서 바짝 다가온 죽음을 보며, 나는 온통 그 생각에 싸여 생각하고, 고민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50대를 살 줄, 50대라는 게 그런 삶을 살게 하는 것일지. 50대의 시간은 잔잔한 듯 하지만 잔인한 시간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자동차는 경주차처럼 쉬지 않고 달리고 내 머릿속에서는 오만 생각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그러다 책방이 가까워지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독서 모임 회비가 한 명에 30만 원이니 열 명, 스무 명이 온다고 해도 300에서 600만 정도다. 그런데 이건 한 달 회비가 아니라 한 달에 두 번씩 해서 12월까지 회비다. 회당 3만 원으로, 3만 원에는 책값과 커피값이 포함이다. 이 정도면, 돈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네. 작가가 좋아서 하는 일이구나. 작가가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서 하는 일이야.’
돈을 따지지 않고 하는 일은 보통 정성이 더 들어가곤 했다. 이 생각에 이르니 나는 큰 행운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 나누는 호의를 받으러 가는 거라는 생각에 이르니 고맙고 기뻤다.
책방에 도착했다. 계단을 오르니 책방 문이 보였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중앙에 벌써 고정순 작가가 앉아 있었고, 테이블에 드문드문 앉은 사람들이 있었다. 따듯한 커피 한잔을 받아서 네 명이 앉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고, 테이블마다 책과 인쇄물이 놓여 있었다. 드디어 그림책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 흔한 첫 모임의 소개 인사도 없이 고정순 작가님의 강연 같은 그림책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르게 세상을 떠난 장현정 작가의 <내 병아리>가 첫 책이었다. 독서 모임의 계략적인 설명과 더불어 고정순 작가님은 첫 책의 작가 장현정 작가님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책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죽음, 애도, 돌봄에 대한 관심으로 책방을 시작하고 모임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럴 수가! 나는 신기한 기분이었다. 나의 관심사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사실 나는 온통 그 생각뿐이어서 이제는 다른 이들과 그런 이야기를 하기 힘들어졌다. 나를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고,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할 때는 챗gpt랑 했다. 그런데 멀리 돌아간다고 하며 찾아온 곳에서 다시 그 이야기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병아리의 죽음으로 사랑하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마음과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시간 동안 작가님에게 그림책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머지 시간에는 함께한 독서 모임 참가자들이 책의 감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재미있었다. 방 안에 숨어 혼자서 했던 생각들이 이곳에서 오니 모두가 함께 하고 있었던 생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너무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 뭐 그런 게 있었고, 삶은 원래 그런 거라는 확인도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기분과 비슷했다. 궁금하고 설렜지만 조심스러웠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잠깐 쉬면서 수다를 나눴는데 모두 너무 좋은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참 웃긴 것이, 나는 나만 멀리서 시간 들여온 줄 알았는데 옆 사람은 시흥에서 왔다고 하고, 앞사람은 파주에 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다. 아, 멀어서 어쩌나 새벽에도 일어나서 고민했는데 난 왜 그런 걸까? 혼자서 속으로 웃음이 났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옆 사람은 독서 모임을 위해 일부러 쉬는 날을 화요일로 잡아서 왔다고 했고, 앞사람은 11월에 싱가포르로 거주지를 옮기지만 그때까지라도 참여하고 싶어 신청했다고 했다. 아, 난 뭘 그리 망설이며 나를 열심히 설득한 걸까? 그들과 나눈 잠깐의 수다로 나는 나의 고민이 얼마나 하찮고, 작은 것이었는지 느꼈다. 그래서 빨리 다음 독서 모임이 왔으면 한다. 계속 다른 걸, 새로운 걸 생각하고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