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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경로를 찾고 있다면

<노란 양동이>

by 스토

세 번째 그림책 독서 모임에 갔다. 다리가 아파서 눈물을 머금고 한번 빠져서 내겐 세 번째 독서 모임이 되었다. 서둘러 간다고 했지만 겨우 10분 전에 도착을 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첫날 얼굴을 익혀두었던 분이 보였다. 그 사람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로 한 번씩 빠진지라 우리는 여름에 보고 가을이 되어 본 셈이다. 옆 사람은 지난 시간에 책을 읽어오라고 했다는 내용을 전해줬다. 나는 서둘러 <노란 양동이>를 읽기 시작했다. 짧은 글이라 금방 읽을 수 있었는데 읽는 중에 여러 생각이 들락였다.


숲에서 노란 양동이를 발견한 아기 여우는 친구들에게 주인 없는 노란 양동이의 존재를 알린다. 친구들은 일주일 동안 주인이 찾아가지 않으면 네가 가지면 되겠다고 말해준다. 아기 여우는 매일 노란 양동이와 시간을 보낸다. 양동이를 깨끗하게 씻고, 물을 담아도 보고, 같이 비를 맞고, 양동이가 자기 것이 되어 함께 보내는 시간을 상상한다. 일주일의 시간은 사랑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나는 아기 여우가 그 양동이와 함께 하기를 바라며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월요일 아침, 숲에 있던 노란 양동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친구들은 아기 여우를 위로했다. 잠시 숨을 고른 아기 여우는 “괜찮아! 이제.”라고 말한다. 그동안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자기의 것이었다는 생각으로 사라진 양동이에 대한 사랑을 만족했다. 나는 괜찮다는 그 말에 울컥했다. 괜찮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그 사랑을 괜찮은 것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나는 몇 년 전 겨울 조카의 글이 떠올랐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우연히 우리는 같은 상황을 생각하며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이별의 아픔이 절절한 글을 썼는데 조카는 담담히 받아들이는 글을 썼다. 마지막 문장은 ‘지나가 볼게요.’였다. 이별이 남긴 흔적이 아프겠지만 받아들이고 다시 나아가는 거였다. 나는 그 문장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아기 여우가, 조카가 ‘이별은 그렇게 받아들이는 거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독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고정순 작가님은 이 책을 오랫동안 품으며 읽은 거 같았다. 자신의 글에도 영감을 준 책이라고 했다. 나는 이별을 떠올리며 읽었지만 책을 통해 소유의 문제도 짚을 수 있었고, 행복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었다.


사람의 소유욕은 민낯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절제하지 못하는 소유욕으로 애써 감췄던 못난 민낯이 드러나는 거다. 하지만 이런 소유욕은 결국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뭐든 움켜쥐어서 입으로 가져가는 아기의 모습은 생명을 지키는 소유욕이었던 거다. 책에서 아기 여우가 보여주었던 소유에 대한 자세는 품격 있는 모습이었다. 양동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일주일간 옆을 지키며 소유욕을 절제했다. 그리고 소유하지 못했을 때도 순간을 함께 한 것으로 만족했다. 독서 모임을 함께 하던 한 분이 말했던 ‘갖지 않은 것에 대한 선택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소유에 대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줬다.


내게 온 두 번째 화두는 ‘행복의 경로’였다. 고정순 작가는 이 책이 행복의 경로를 살피는 그림책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딱 들어맞는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여우는 결국 양동이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양동이와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낸다. 그건 양동이가 자기 것이 되는 과정을 보낸 것이고 행복은 그런 꿈을 꾸며 보내는 시간이지 결과는 아닐 것이었다. 결과만 행복인 듯 산다면 그저 도파민 중독이 될 확률이 높다.


행복의 경로를 생각하며 오래전 내가 정해둔 꿈을 생각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미래를 정해두고 현재를 살고 있다. 내가 원하는 미래를 정해두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해졌다. 쉼 쉬듯 이어지는 삶 속에 나는 남편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늙어서 남편과 함께 손주 돌보는 상상을 한다. 우리가 함께 자상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싸우고 미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될 수 있으려면 지금 건강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예전보다 남편이 덜 미웠고, 함께 운동하게 되었다. 내가 덜 미워하니 단순한 남편은 나를 더 위했다. 영원하지 않겠지만 평화롭고, 평안해졌다. 나의 행복의 경로는 이런 식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행복은 한순간을 꿈꾸는 것보다는 행복의 경로를 찾아보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 거 같다.


노란 양동이의 아기 여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줬다. 그래서 이번 독서 모임도 무척이나 행복했다. 사실 독서 모임 장소인 책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참 좋았다. 가을바람이 솔솔 들어올 수 있게 한쪽 창을 모두 열어두니 나무가 더 가까이 있는 듯 보였고, 잘 정리된 책들이 안 먹어도 배부르게 했다. 거기에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사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들을 꼭 안아주고 싶게 좋았다. 유독 사랑스럽게 말하던 사람을 화장실 앞에서 마주쳤다. ‘글 쓰시는 분이지요?’라는 내 말에 그렇다고 수줍게 말했다. 사랑스러운 글을 쓰실 거 같다는 말을 남기고 그 사람은 여자 화장실로 나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책방에는 남녀 화장실이 모두 있는데 독서 모임에 여자뿐이라 두 곳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 화장실을 나와서는 부푼 맘을 풀어낼 용기는 전혀 없어서 빠르게 책방을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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