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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는 가지 말자!

너무 힘들게 살지 않는 방법

by 스토

내가 살면서 찾은 ‘너무 힘들게 살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건 ‘끝까지는 가지 말자’는 거다.

살림을 하다 보면 유난히 힘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남은 기름을 끝까지 따라서 써야 할 때, 케첩이나 마요네즈 같은 소스를 남은 것까지 짜내려 할 때, 바닥에 누른 것을 긁어먹으려 할 때 등등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일들이다.

생활 속에 이런 일은 무수히도 많다. 치약을 잘 짜서 쓰고, 남은 화장품을 거꾸로 세워서 끝까지 쓰고, 샴푸통에 물을 약간 넣어 흔들어 한 번 더 머리를 감고, 잘 나오지 않는 볼펜을 이리저리 흔들어보고, 마지막 한 방울의 음료수를 먹기 위해 고개를 젖히고.

그뿐일까? 나는 쓰레기 봉지를 채울 때도 열심히 부피를 줄여서 채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나 아이에게 그 일을 맡길 수가 없었다. 나의 노하우로 부피를 줄이고 줄여서 알맞게 종량제 봉투를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다 채우지 않은 헐렁한 종량제 봉투를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와 저렇게도 하네,’하며 신기해했다. 그건 내 마음에 차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사는 것이 별로 잘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연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였다. 힘들게 연명하는 노인을 보며 남아 있는 음료수병을 거꾸로 하고 흔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한 방울 혹은 두 방울 떨어지기를 바라며 고개를 꺾고 뜨거운 햇빛 속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 그리 효율적이지도 않고, 그리 마셔서 시원할 리도, 갈증이 풀리 수도 없어 보였다. 한두 방울 더 마시느니 그늘로 가서 좀 쉬는 것이 나을 것만 같았다. 이런 생각을 품고, 거기에 더해 나이 들며 나날이 기운이 떨어지면서 ‘끝까지는 가지 말자’는 생각을 온 생활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먼저 음식에 그리했다. 남은 음식이 아까워 냉장고에 넣어두곤 했는데 한 사람이 혹은 한 끼에 먹기에 모자란 음식은 좀처럼 다시 꺼내 먹어지지 않았다. 조금 남아 냉장고에 넣은 음식은 자리만 차지하는 골칫거리였고, 혹여 냉장고에 잘 보관하지 못하면 나중에 상해서 못볼꼴을 보며 버려야 했다. 끝까지 가려는 마음이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이다. 어리석게도 겪고 또 겪으면서도 아까워서, 절약한다는 심정으로 같은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그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나는 충분히 맛있게 먹고 조금 남았다면 과감하게 버렸다. 음식뿐 아니라 화장품도, 치약도, 기름도, 샴푸도 스트레스가 될 정도로 끝까지 써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씩 실천하니 냉장고는 더 깨끗해져서 쓰기 편했고, 살림 스트레스도 좀 줄었다. 그런데 이건 살림살이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연명을 통해 끝까지 남은 생명을 쥐어짜지 않겠다고 여겼던 것처럼 내 마음에도, 내 사랑에도, 내 미움에도, 내 노력에도, 내 성실함에도, 내 여러 가지에 해당이 되었다.


최근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무릎을 다쳐 심한 고생을 했다. 내 나이와 상태를 아니까 절대 빠르게 달리지 않았다. 내가 달릴 수 있는 속도로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달렸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 하고 나니 무릎에 불편함이 느껴졌다. 좀 아팠다. 하지만 성실한 나는 이 통증이 나를 유혹하는구나 했다. 이 핑계로 뛰지 않으려는 거 아닌가 의심했다. 게다가 모든 걸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남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힘을 내서 달렸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무릎 통증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나의 성실함도 경계한다. 뭐 하나를 배우면 밤낮없이 연습했을 성실함도 이제는 좀 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너무 끝까지는 가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편하게 즐길 수 있고, 편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거 같다.


잠 못 자는 사람이 잠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몸에 힘을 빼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주먹을 쥐고 몸에 힘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몸에 힘을 빼야지 하고 해 보면 무의식 중에도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러니 이제 의식적으로 힘을 빼는 연습을 해야 한다. 끝까지 가려는 마음이 몸과 마음을 긴장시킨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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