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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의 사투

by 스토


누군가 축구에서 골을 못 넣어 시합에 지고, 악몽을 꿀 정도로 괴로워했다는 말을 들었다. 초등학교 아이의 강한 승부욕처럼 표현했던 거 같은데. 나는 그것이 ‘미안’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늘 ‘미안함’과 사투를 벌이며 살았던 거 같다. 나의 첫 직업은 동료와 팀을 이뤄 무언가를 완성해 내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그 일이 적성이 맞지 않다 여겨 망설였지만, 결국 가장 하기 싫은 이유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내가 서툴러 한 과정이 잘못되면 뒤이어 일을 받아서 해야 하는 선배가 곤욕스러울 거라는 생각. 나는 그게 직업을 잃는 일보다 끔찍했던 거 같다. 결국 몇 개월 하지 않고 내 발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찾은 직업은 당연히 나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일. 책임감이 더 커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만 열심히 하면 그럭저럭 잘 해낼 수 있었다.

나의 하루는 미안으로 시작한다. 혼자 돈 벌러 나서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에 나는 출근하는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에 도움이 될만한 것을 한다. 아침에 먹을 약과 물을 챙기고, 두유나 삶은 달걀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마련하고, 욕실에 물소리가 들리면 방에 들어가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창문을 연다. 비가 오는 날도, 더운 날도, 추운 날고, 어두운 날도 혼자서 집을 나서는 사람이 외롭지 않게 하려는 마음. 그건 나의 미안함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집안일을 할 때도 자주 ‘미안’이란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청소기를 돌리다가 가구 모서리에 좀 세게 부딪힐 때면 나는 가구와 청소기 모두에게 ‘미안’을 외친다. 설거지를 하다가 실수로 접시를 떨어뜨려 큰소리가 나도 그 큰소리와 거의 동시에 ‘미안’을 말한다. 늦게 사과하면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는 듯이.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아이쿠’라는 말도 있지만 ‘미안’이라는 말을 할 때가 많다.


생활이 이럴지니 내 삶은 어떨까? 나는 미안한 것을 가장 견디기 힘든 일로 여기곤 했다. 어릴 때는 미안해서 어쩌지를 못하겠을 때,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숨어버렸던 거 같다. 지금도 가끔 어린 날 나의 잘못으로 이어진 미안함에 이불킥을 한다. 미안함은 내가 가장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이렇게 미안한 것이 싫으니 나름 미안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말이 자신이 알고 하는 잘못보다 모르고 하는 잘못이 훨씬, 훠~얼씬 많다는 것! 나의 삶에는 내가 아는 미안함보다 모르는 미안함이 셀 수 없이 많을 터였다.


‘미안’과 사투를 벌이는 나는 상대의 ‘미안’도 좀 민감하게 느꼈던 거 같다. 아니, 당연히 민감했을 거다. ‘왜 사과하지 않지?’ ‘어떻게 그렇게 미안한 맘 없이 나에게 그럴까?’ 같은 맘에 힘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미안해하고, 미안함을 받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였다. 그 관계를 잘 풀기 위해 상대가 미안해할 것이 뻔한 일에는 먼저 나서 괜찮은 티를 냈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리했다. 일을 망쳐서 미안해지면 위축되어 더 어려워하기 때문에 상대의 실수를 되도록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나부터도 너무 미안한 맘이 드는 사람에게는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젊은 날에는 세상에도 미안한 것이 많았다. 민주화와 경제 성장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졌으니 그런 세상에서 사는 것은 고맙고, 미안한 일이었다. 그리고 망가진 환경도 미안한 일이었다. 나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야 할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미안했다.


그런데 이제 좀 그만 미안하고 싶다. 날마다 미안하니 힘이 든다. 미안과의 사투에 이제 내 에너지는 바닥이 난 느낌이랄까. 내가 느끼든 못 느끼든 저지른 미안한 일과 더불어 나도 세상과 누군가에게 미안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복잡하게 여기지 말고, 그저 그런 거려니 하고 살고 싶다. ‘미안’도 ‘사투’도 이젠 좀 멀리하고 싶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더 유해지고 싶다. 유하면 걸리는 것이 적을 거였다.

유하게 살겠다는 다짐과 나날이 줄어드는 몸의 에너지가 나를 미안으로 부터 좀 멀어지게 해주지 않을까. 나이 들어 나를 변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결국 생각도, 행동도, 마음도 따라가기 힘든 내 몸의 에너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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