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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흰 어떤 사랑을 한 거니?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를 읽고

by 스토



늦은 저녁,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그림책을 읽었다. 이번 독서모임에서 읽을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글은 잔잔했고, 그림은 개성 있었다. 글작가와 그림작가가 부부라고 하니, 남편은 남편대로 잔잔하지만 강렬한 사랑을 글로 쓰고,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의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글과 그림은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또렷해 책에서 힘이 느껴졌고, 배려하는 느낌이 없어서 새로운 느낌을 주는 책이 된 거 같았다.

나태주 시인의 시 중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구절이 있는데 나는 이 책을 좀 그렇게 보았던 거 같다. 그리고 이렇게 자세히 보아주는 독자가 있어서 작가는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색은 나의 힘ㅎ)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자신의 의도를 다양한 장치로 만들어 둔다. 독자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까지 신경을 쓴다는 뜻이다. 이런 마음을 독자가 알아봐 준다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사실 독서 모임을 위해서 그리한 것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았다는 나의 생각은 독서 모임에 가서 깨지고 말았다. 고정순 작가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나는 훨씬, 풍부하게 책을 볼 수 있었다. 고정순 작가는 이 책에 대해 ‘간절함이 닿아 만들어진 사랑의 별자리’라고 정의했다. 새를 사랑하는 곰은 겨울나기를 위해 떠난 새를 기다린다. 깊은 사랑은 아픈 기다림을 강요했는데 곰은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난다. 새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곰은 계속 새에게 편지를 쓴다. ‘나의 새야’라고 부르고 자신은 ‘너의 곰이’라고 말한다. 곰은 사랑의 별자리로 길을 찾듯이 세상 반대쪽으로 가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일을 겪는다. 그리고 무사히 새가 있는 독수리 바위에 도착했는데, 새가 없다!

새도 곰을 찾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것이다. 고정순 작가님은 표지 그림에 검은 그림자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곰을 만나러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라고 했다. 나는 자세히 책을 보았다고 했지만 그건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다시 보니 곰이 힐끔 그림자를 보는 눈빛으로 표현되어 있기도 했다. '이거 더 재미있는 책이었네' 했다.


다시 책 이야기를 하자면 곰이 새를 못 만나서 안타까울 텐데 실망할 필요는 없다. 새의 친구들은 곰과 새를 만나게 해 주기 위해 힘을 모은다. 나뭇가지와 줄을 이어 곰이 탈 둥지를 만들고 하나씩 줄을 입에 물고 바다와 사막, 숲을 건넌다. 그리고 새와 곰은 만나게 된다. 새와 곰의 사랑은 개인적인 것이었지만 결국 모두의 도움으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님은 이 부분에서 공동체의 사랑에 대해 언급하셨다. 나도 공감했다. 책 한 권도 혼자 읽을 때보다 여럿이 읽으니 이렇게 재미가 있다. 사랑도 혼자 떠올릴 때보다 여럿이 이야기하니 더 달달하니 말이다.


나는 책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가 그런 사랑을 받는 것처럼 기쁘고 좋았다. 햇살이 가득한 서점에서 사랑이 가득한 그림책 이야기를 듣다니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참 좋구나 했는데 어느 시점에서 놀라운 점 하나를 찾았다. 새를 찾아 길을 나선 곰, 곰을 찾아 길을 나선 새. 곰과 새가 겨울이면 떨어져 지내야 하는 건 순리였다. 하지만 곰과 새는 순리를 거슬러 서로를 찾아갔다. 곰의 편지에서 새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으로 길을 나선 것에는 한 치의 의심과 망설임이 없었다. 누구나 사랑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저렇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정말 곰과 새는 어떤 사랑을 한 것인지 나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내 역할, 내 몫을 해내려 애쓰며 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상대에게도 그것을 기대했다. 나의 사랑은 의무로 가득한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사랑이 늘 부담스러웠고, 사랑 앞에 눈치 보며 살았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간은 오늘 내게 나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라는 숙제를 내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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