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어머니 면회를 갔다. 병실에 다다르니 간병사님이 손에 일회용 장갑을 끼고 있었다. 간병사님은 우리를 보더니 커튼을 더 단단히 치고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천천히 하시라 내가 먼저 말을 건네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끝나요’를 반복하고. 남편과 나는 간병사님의 조급함을 덜어주기 위해 병실 밖으로 나갔다. 언제나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가 뭐 대순가 아픈 어머님이 우선이지. 우리는 얼마든지 기다리고 기다릴 수 있었다.
병실 밖 복도에는 간병사들이 하나둘 걸어 둔 빨랫감이 있었다. 급한 대로 한두 개 빨아 말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복도를 서성이다가 병실 문에 달린 이름표를 봤다.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 보다 어린 사람이 있으면 어머니는 살만큼 잘 사시고 이제 아픈 거라 안심하려는. 시아버지 납골당에 가서도 비슷했다. 떠난 이들의 나이를 살피며 시아버지가 그리 빨리, 서운하게 살다 떠난 게 아니라는 안심을 했다. 난 나의 마음을 위해 여러 가지를 살피고 이용했다.
어머니 이름 옆에는 82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4인실에 두 명이 비어서 이름표는 둘 뿐이었다. 아무개 82, 아무개 87. 어머니 나이가 같은 병실 사람보다 적은 것이 서운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82밖에 안 됐나 잠깐 의아해하는데 간병사가 들어오라고 불렀다.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애써 밝은 척을 한다. 하지만 해가 지고 혼자 있으면 감정이 그대로 내려앉는다. 난 슬펐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감정에 허우적대는데 다시 82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왜 82지?
어머니를 모시고 자주 병원에 다니다 보니 나는 어머니의 주민번호를 외우게 되었다. 누가 물으면 내 번호처럼 어머니의 주민번호를 읊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주인번호는 41****인데. 82란 숫자는 이상했다. 만 나이로 따져도 너무 적었다.
지금이 몇 년이더라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 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머니가 처음 병원에 입원한 것이 82세였던 거다. 어머니의 병원 생활은 2년 반이 넘었다. 그새 우리 어머니는 두 살을 더 먹었고 곧 한 살을 더 먹을 것이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