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디서 이렇게 도도도독 하지?
만화카페에 가는 길에 둘째가 말했다. 도도도독 하다고?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표현이 참신하고 귀엽다 생각했다.
쓰리,
투,
원
후두두두둑. 비가 쏟아졌다. 아! 둘째가 말한 도도도독이 이 뜻이었구나 싶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그 거리에서 마저 웃고 있으려니 엄마 이럴 때가 아니야, 하고는 둘째는 머리를 가린 채 먼저 뛰어간다.
그 몇 초 간의 시간을 통과하며 알게 됐다. 아, 이 아이는 이렇게 몇 박자 빨리, 몇 배쯤 강하게 감각을 느끼는구나.
둘째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다. 내 직업이 교사인지라 때때로 아이 양육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때가 있는데 둘째는 그런 내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해주고 나를 겸손하게 해주는 아이였다. 지식과 사랑으로도 마음에 꼭 맞는 그림 같은 아이를 빚어낼 수 없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고, 교사에다 상담 공부까지 한 사람이라고 해도 말처럼 다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게 해주는 아이. 어느 공동체에서 나에게 고민을 토로하신 분의 아이는 잘 앉아 있는데, 이 아이는 끝내 고집을 피워서 문 밖에서 나를 동동거리게 하는 아이였다.
아이는 가끔 훈육 상황 중에 문득 엄마의 목소리에 화가 있었다고 서러워했다. 콩알 하나를 넣고 쌓아올린 침대 위에서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공주 이야기처럼 내 감정을 꽁꽁 감추며 훈육해도 스치는 표정에, 언어의 온도에 민감히 반응하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아이.
아이는 별스러울 것도 없는 밥상 앞에서도 자주 고맙다고 이야기해주곤 했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서 불쑥 사랑을 고백해주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곧이어 나를 그 작은 품에 안겨 쉬게 해주는 아이였다. 그 사실이 너무 감동스러워 넌 감동이야, 라고 말하니 자기는 감동이 아니라 OO이라며 자기 이름을 말해주던 예측불가 귀여운 아이.
그 아이는 원하는 게 좁고 분명했다. '좋다'의 범위가 면적으로 분포해있는 나와 달리 그 아이의 '좋다'는 선이나 점이었다. 딱 그것이 아니면 안 됐다. 그 예리한 선택지 안에 내가 제공해줄 수 있는 게 없으면 아이는 예민함이 폭발하곤 했다.
나는 감각이 둔한 사람이다. 웬만한 건 괜찮다. 그런 나를 보며 지인들은 남들에게 맞춰주기만 하지 말라고도 했지만, 맞춰준다기보다 대부분은 정말 그냥 다 괜찮았다. 딱히 불편한 게 없으니 주장하거나 고집 부릴 일이 별로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 내 기준에 이 정도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끝끝내 세밀히 가려내려는 아이가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
돌아보니, 둔한 내가 느끼지 못하는 걸 민감한 아이는 느끼는 거였다. 나와는 달라서 온전한 이해에 다다를 수 없었던 영역으로 나는 오늘의 경험을 감사히 들고 한 걸음 더 걸어들어간다. 그래, 그랬겠다. 힘들었겠다. 모든 것엔 다 이유가 있다. 너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