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살고 있는 나를 불행하다고 단정짓고 시작하는 이상한 책.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교사로서, 엄마로서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게 되었고, 그 갈망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감도 느꼈고, 일상의 작은 시도가 중요함을 느꼈고, 구조의 변혁이 필요함도 느꼈다.
그리고, 오래 전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고3 때였다. 독일에 사는 사촌 언니가 외숙모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우리 집에 왔다. 가족들은 이미 모여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끝내고 집에 한 10시 반쯤에나 도착했을까.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고 만족감 뿜뿜하며 집에 돌아왔는데, 사촌언니가 날 보자마자 불쌍하다고 했다. 한국 말에 서툰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말은 대한민국 고3의 어깨에 얼마나 큰 무게가 실려있는지를 알면 후회할 것이 분명한,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어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어본 적도 없는 나의 대단한 일상을 모욕하는 최악의 표현이었다. 웬만해서는 화가 나지 않는 나지만 그 말은 정말 불쾌했다. 내가 언니에게 나의 불편한 감정을 표출했는지 안 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니의 그 말과 나의 불편한 느낌이 정확히 기억나는 걸 보면 그 시점 앞뒤로 10년 이내의 사건 중에는 손에 꼽을 정도로 나는 몹시 화가 났던 것 같다.
세상 부당한 말을 들었던 에피소드로 분류된 채 거의 20년을 보냈는데, 아뿔싸 이제 알겠다. 태어나면서부터 독일에서 살아온 언니의 눈에 그 날의 내가 왜 그토록 불쌍해보였는지.
오늘도 그 날의 나처럼 살고 있을 아이들을 제발 구해주고 싶다.
2020.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