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 어린이집 상담을 갔을 때였다. 명색이 교사이니, 내 아이의 강점과 약점을 균형 있게 듣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거라고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지난 날 동안 나는 자주 불편한 상황에서 표정 관리가 어려웠던 터라, 내가 아이의 약점을 듣고 마음으로는 받아들여도 표정으로는 내적 당황함이 새어나갈 것이-그래서 나의 요청으로 어렵게 운을 뗀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상담이 끝나갈 무렵, 나는 얼굴 근육 하나하나에까지 신경을 써가며 비장하게 아이의 약점을 여쭤보았다. 선생님께서는 먼저 아이에 관한 이런저런 칭찬거리를 언급하신 후에 아이가 말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울음으로 표현한다고 하셨다. 포장된 내용을 좀 벗겨보자면 그냥 먼저 울고 본다는 것이다. 틀림 없는 사실이라 백 번을 공감하며 상담을 마무리지었다. 그렇게 상담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런 줄 알았다.
문제는 그 다음날부터였다. 아이가 우는 때마다 너무 못마땅했다. 갑자기 예민해지고 화가 치밀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이성적인 생각은 작동을 멈추고 감정만 바삐 움직였다. 그동안은 차분히 말로 가르쳐보려 애써왔었는데 상담 다음 날부터는 그게 잘 안 됐다. 왜 그럴까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아이 마음을 돌보는 일은 둘째고, 하루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서 내가 이만큼 해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은 마음이 보였다. 나는 능력없는 엄마가 아님을, 아이 뜻을 다 받아주는 엄마도 아님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보였다. 아차 싶었다. 그 시시한 마음 때문에 며칠 간 나는 아이가 눈물을 보일 때마다 눈빛과 말과 태도, 모든 것을 동원해 아이를 밀어내왔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의 약점으로 언급될 정도면 자주 나타나는 행동이라는 뜻인데, 지난 며칠 동안 나는 얼마나 자주 아이를 온 몸으로 밀어내고 부정했던 것인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이렇게 고쳐 먹기로 했다.
올 해 안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선생님께 이 아이의 변화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보인다면 더 좋겠지만 깔끔하게 포기했다.) 엄마로서 나의 목표는 내년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듣지 않거나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라는 언급을 듣는 것이다. 그 것을 목표로 나는 올 해 아이와 행동 문제를 고쳐나가보겠다.
시간의 여유를 갖고 자존심을 내려놓으니 한층 시야가 넓어졌다. 아이가 다시 사랑스럽게 보였다. 당장은 아니어도 가깝든 멀든 다가오는 미래에는 개선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나의 기대대로 아이는 그 해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핵심이다. 포기는 깔끔해야 한다. 엄마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정도-충분한 기간을 포함하는-의 적당한 수준의 목표가 필요하다.
다음 해, 전년도와 같은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셨고 이번에는 아이가 전과 달리 말로 잘 표현한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첫째는 아직도 많이 운다. 어린이집에서도 당연히 그럴 거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 작은 변화를 위해 아이도 나름 애써왔다는 것을 알기에 기특하다. 그리고 자존심 내세우지 않고 아이를 위해 꺾은 나도 기특해서 마구 칭찬해주고 싶다.
아이가 엄마의 자존심이 되지 않는 것, 아이를 지키고 엄마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2019.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