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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들의 모임

1강 과제

by 연하일휘

어둠 위로 내려앉는 불빛이 소란스럽다. 주황빛을 내뿜는 작은 전구가 힘없이 저혼자 가늘게 떨린다. 깊숙이 소파에 등을 기대 앉아 소리를 죽인 한숨을 내뱉는다. 광량이 부족한 전구 덕에 군데마다 어둠이 드리워졌건만, 허공을 향한 흰자위 두 개만은 또렷하다. 잠들지 못하는 아버지가 몸을 일으킨다. 팔을 뻗어 가볍게 누르며, 속삭이듯 말을 건넨다. 조금이라도 자야지- 작은 움직임에도 요동치는 그림자가 눈을 어지럽힌다. 아버지의 가슴께에 올린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저 움직임을 잠시 묻어두려는 의도 하나만을 담은 채, 기원과도 같은 속삭임만을 반복한다. 새벽이 지나간다. 인지장애로 일어나는 갖은 돌발행동들에 지쳐버린, 빛이 어둡게 내려앉은 시간이다.


조금씩 단조로워지는 숨소리에 잠시 시선을 돌릴 틈이 난다. 손끝을 가져다 대자, 휴대폰 화면이 밝아지며 붉은 점 하나가 찍혀 있다. 누군가가 달아놓은 댓글 하나다. 짧은 답을 남기자, 다시 알림 하나가 뜬다. 아직 안 주무시나요- 평범한 문장에 잠시 손을 멈춘다. 혀 끝으로도, 손 끝으로도 풀어내지 못하던 일상 속에 얼굴조차 모르는 누군가가 건넨 한 문장이 위로가 된다.


우연히 접한 한 플랫폼에서 글을 썼었다. 손끝에서 풀려나가는 글자들의 모임은 글이라기엔 조악했다. 별거 아닌 일기와도 같은 게시물에도 댓글들이 달리며 하나씩 글벗들이 생겨났다. 그리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학원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지만, 홀로 새벽을 지새던 그 시간만은 글자로 새기지 못했다. 직면하고 있는 아픔 앞에서만은 글자들이 뭉쳐지지 못한 채, 금세 흩어져버린 탓이다. 그럼에도 작은 숨을 내쉴 수 있는 순간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내려갈까. 그 고민 속에서는 현실은 잠시 자취를 감추곤 했었다.


몇몇의 글들이 작은 탄성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하던 글벗들의 글이 점차 앞서나갔다. 나 혼자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글과 사랑에 빠진 이들은 글자 사이마다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잘 쓰고 싶다는 혼자만의 속삭임은 부끄러움과 열등감이라는 감정 아래에 잠겨버렸다. 손이 멈춰버렸다. 언젠가는 좋은 쓰고싶다던, 기약없는 혼자만의 소망은 글벗들을 만났던 플랫폼이 사라지며 천천히 흩어져 버렸다.


새벽을 지새던 시간이 점차 사라졌다.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동자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왔다. 인지장애로 인한 돌발행동들 대신 작은 따스함이 아버지의 품을 가득 메웠다. 조카가 태어났다. 꼬물거리던 작은 생명체가 조그마한 손으로 아버지의 옷깃을 붙잡았다. 녀석의 걸음이 하나 둘씩 늘어날 수록,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이 늘어났다. 통증으로 누워있던 아버지의 긴 시간들은 손자의 손을 붙잡은 뒤부터, 걸음으로 이어졌다.


흔들리던 삶이 천천히 안정적인 궤도로 올라선 시기다. 하지만 나만은, 간간이 찾아오는 불안에 떨리는 몸을 부여잡는 시간을 보냈다. 어쩔 수 없어요- 선생님은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 속에 쌓여 내재된 불안이 터져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 불안은 현재의 내가 서 있는 상황에서 터져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울음을 터트리는 날들이 늘어났다. 조심스레 어깨를 토닥이다, 부드럽게 등을 떠미는 손길에 머뭇거리다 나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글에 대한 소망을 다시 되새기며 이끌어주는 그 손길에 나는 새로운 글터로 향했다. 그렇게 브런치로 처음 발을 들였다.


글을 썼다. 약 200일이라는 시간동안 하루에 한 편씩 꾸준히 글을 써 내려갔다.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글이라는 행위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저 작은 사연들을 글자로 엮는 그 시간들은 어느새 다시 무기력함으로 환원되어갔다.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지만, 제자리에 머무른 채 무의미하게 손끝에서 글자들을 엮어 나갔다. 다시 한 번, 등을 떠밀렸다. 미야 작가님의 글빵에 참여하며, 공모전이라는 새로운 도전도 시도해 보았다. 그저 잘 쓰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이 변모한다. 뒤늦게서야 글에 대한 고민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퇴근 후, 자정에 가까운 시간. 피곤함에 긴 한숨을 내뱉으며 빈 노트에 글자 몇 개를 끄적인다. 일을 하며 떠올렸던 몇몇 소재들을 나열하다 다시 펜을 내려놓는다.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것인지, 그 고민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여전히 나는 나의 감정에 파묻힐 때마다, 손을 놓고만다. 하지만 더이상 스스로의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되고 싶지는 않다. 고민 속에서 다시 글자들을 엮는다. 글을 포기했던 그 시기의 막연함 대신, 작은 두근거림을 다시 가슴 속에 품어본다.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해 본다. 글을 써 본다.





[정윤 작가님 1강 과제입니다]


https://brunch.co.kr/@without258000/233




[메인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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