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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달을 바라볼 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까. 순수함이 묻어난 것일까.

by 연하일휘

해가 진 직후, 차게 식어버린 바깥의 공기가 휴게실을 가득 메운다. 열린 창틈으로 하얀 냉기가 스며든다. 그 공간에 두 아이가 컵을 손에 쥔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두런거리던 대화도 멈춘 채, 어둠이 깔려 검게 물든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다.


"얘들아, 뭐 해?"


"쌤, 달 좀 봐요."


대답을 하는 아이와 달리, 한 녀석은 내 목소리에도 미동조차 없다. 그 옆에 나란히 서 허공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본다. 여느 때보다도 더 크게 보이는 달은 어여쁜 원형을 지니고 있다. 그 주변으로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는 구름의 흔적들이 군데마다 묻어난다. 옅은 구름이 달의 모습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예쁘네-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 속에서 두 아이만이 고요함 속을 머무른다. 달의 모습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속에 무엇을 그려내고 있을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가늠하기 어려워진 아이들의 속마음이 궁금하다. 작은 화면 속에만 매몰되던 모습 대신, 넓은 밤하늘에 동화된다. 요즘 아이들이라는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두 녀석에게서 그저 미묘한 웃음을 흘렸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가 떠오른다.


나무 덩굴들로 엮인 지붕 아래에는 조각난 햇빛들이 무늬를 그려냈었다. 그 아래에서 믹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담소를 나누던, 두 국어 선생님의 주변에는 아이들이 자주 몰려들었다. 시답잖은 질문들부터 진지한 진로에 대한 이야기까지, 갖은 대화들을 주고받았었다. 때론 짓궂게, 하지만 애정이 기반된 장난을 칠 때마다 너털웃음이 돌아오곤 했었다. 지긋이 나이가 드신 선생님은 당신의 눈에는 한없이 어린 여고생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건네주곤 하였다. 우리도 클 만큼 컸는데- 속으로만 입을 삐죽이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곧 성인이 될 여고생들은 다시 어린아이가 되곤 했었다.


"소리가 그림을 그리듯 다가올 때가 있지."


느긋한 목소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산을 오르며 코끝으로 와닿는 식물과 흙의 내음, 옷깃을 스치는 풀잎들의 사그락거리는 소리, 끝없이 반복되는 것만 같더라도 걸음마다 바뀌는 나무들의 자태. 가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순간마다 바뀌는 눈앞의 정경을 단어들로 그려냈다. 그리움일까, 혹은 작은 기쁨일까. 여러 감정들이 뒤섞인 선생님의 시선은 회색빛 건물 틈새로 보이는 파란 하늘로 향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휴일의 존재 없이 학교에 매어있던 시기였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야 해."


산을 오르는 그 순간마저도 얇은 검은 줄에 매여있는 요즘 아이들에 대한 작은 한탄이 이어졌다. 새어 나오려던 목소리를 지그시 누른 채, 멋쩍은 웃음만을 답례로 흘려보냈다. 아녜요, 선생님. 우리도 아름다움을 느끼는걸요- 파란 하늘을 맞이할 때면, 핸드폰을 들어 청명함을 사진 속에 담았었다. 여름에 접어들며 짙푸른 생명력을 응축한 나뭇잎을 함께 즐기던 우리였다. 바람에 굴러가는 나뭇잎의 소리를 놓칠까, 잠시 말을 멈춘 채 그 여정을 그려내곤 했었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찾은 아름다움들로 마음의 위안을 삼았었다.


이르게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은 나와 비슷한 웃음을 입가에 매어 놓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큰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하였기에, 어른이 되고 싶은 그 마음은 힘든 수험생활 속에서 작은 기쁨을 찾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며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이었을까. 혹은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아름다움을 받아들였던 것일까. 아이들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따스했던 선생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하다.


아무런 대화 없이 달을 바라보는 저 두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성큼 어른이 되어가며 달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일까, 혹은 순수함이 그 정경에 끌리게 만든 것일까. 섣부르게 재단할 수 없는 아이들의 마음에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저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본다. 작은 구체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 빛을 이어받은 옅은 구름들이 그 주위를 감싼다. 따스한 물 한 모금이 더 깊게 몸 안으로 스며든다. 밝은 빛이 전하는 냉기가 작은 입김이 되어 흩어진다.


full-moon-1555454_1280.jpg Pixabay


[메인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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