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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테라피 7 - 감정을 그리다

나와 마주 앉는 시간

by 일상의 봄


1. 눈을 감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내 주변은 어떤가?

그 바깥은?


눈을 감자 어렴풋이 떠오른 이미지


* 색깔

나는 회색,

내 주변은 갈색,

그 바깥은 고동색.


* 형태

아기 자세처럼 웅크린 바위.

연약하지만 단단하고 주변은 고요하다.


감정을 묻고 종이에 그려보니

지면 아래 어딘가,
가라앉아 있는 내가 느껴진다.


2. 감정에게 말을 걸다.


지금 너의 감정은 어떤 거니?

대답이 없다면 선택지를 준다.


* 긍정 vs 부정? -> 부정

* 분노 vs 슬픔? -> 아니, 가라앉아 있어.

* 자신 vs 타인, 누구에게? -> 나 자신


그리고 마침내 나온 말.

조심스러워.

머뭇거려.

망설여.


* 왜?-> 알 수 없어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놀랄까 봐.


* 왜 놀라지?->......


햇빛 좋은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다가 신기한 걸 봤다.

어떤 아주머니가 마당 수돗가에서 소변을 보셨다.

어? 이상하지만 어른이 하니까 그래도 되나 싶었다.

우리 집 마당 수돗가에서 나도 따라 해봤다.

집에 아무도 없을 시간이고 인기척이 없었는데

뒤에서 갑자기 아버지가 고함을 치고 화냈다.

등에 칼이 꽂히는 느낌.

그냥 하지 마라 하면 되지, 왜 저렇게 화를 낼까?

심장은 놀랐고 말문은 막혔다.


3. 지금이라도, 말해보자.


그 감정이 훅 들어와서 각인됐구나.

너무 놀라서 아무 말 못 했구나.


그때 하지 못한 말을

지금의 내가 대신해 준다.

"아이,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요~~ 놀랐잖아요."

"정말 너무 놀랐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요."


여러 번 말한다. 감정을 담아서,

실타래가 풀리길..


하지만 말을 뱉으려니 숨이 막힌다.

호흡이 짧아진다. 숨부터 쉬자.

후~~ 후~~


오후 햇살을 한가득 받던 아이는

수 십 년이 지나도 마당에 얼어붙은 채 서 있다.


검게 부풀어 오른 막연한 두려움.

그럴수록 눈을 떠 지금 여기를 보자..

초록과 노랑이 괜찮다며 밝게 비추고 있다.


4. 어느 날, 뜻밖의 손님이 왔다.


28살, 봄.

조울증이 갑자기 찾아왔다.

가족력도 없고, 특별한 외상도 없는데.. 왜 나만?


의사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사람마다 원인이 다 달라요.

원인을 찾는 것보다 치료가 먼저입니다."


하지만 나는

무심코 했던 말, 행동, 선택 하나하나에

'왜'라는 낚싯줄을 멀리 던졌다.


조울증 발병이 단순한 하나의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린 에고를 재건해야 했다.


과거의 나는, 나를 모르고 살았고

이후의 나는, 나를 알려고 애썼다.


5. 누군가 묻는다면


"조울증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나요?"

누군가 물어볼 때가 있다

나의 대답은 언제나

"아니요"


나와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셀프테라피는 치유의 주도권을 ‘나’에게 돌려준다.

외부의 평가가 없기 때문에 ‘잘하려는’ 부담도 없다.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면 내 감정을 알게 되고,

내 감정과 친구가 될 수 있다.




'감정을 묻고 그려보기'에 관한 Q&A


Q1. '감정을 묻고 그려보기'라는 주제는 어떤 점에서 좋은가요?


A1. 종이에 감정을 그리는 것은 사람에게 직접 감정을 쏟아내는 게 아니라서 안전합니다. 마음속 깊은 기억, 잊혔던 감정, 숨겨놓은 두려움이 시각적인 상징으로 떠오릅니다. 그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나도 몰랐던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분석보다 경험, 통제보다 이해를 하게 해 줍니다.



Q2. '감정을 묻고 그려보기'는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나요?


A2. 깊이 빠져있는 감정에서 헤어 나오고 싶은 사람, 당황하면 필요 이상으로 얼어붙는 사람, 주변환경에 따라 감정이 자주 바뀌는 사람, 말보다 낙서나 그림을 즐기는 사람. 특정 기억이나 감정이 강하게 남아있는 사람, 나를 더 잘 알고 더 잘 돌보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합니다.



Q3. '감정을 묻고 그려보기' 기법은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요?


A3. 먼저, 감정 조절 능력이 향상됩니다. 감정을 ‘색깔과 형태’로 표현하기 시작해서, 언어화까지. 감정을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둘째, 메타인지가 작동합니다. 오래된 기억과 정서가 ‘이미지’로 표현되고, 현재 상황을 직시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셋째, 나와의 관계가 깊어집니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진짜 나’를 발견하게 되며 자존감, 자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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