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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에서 보는 통계학적 오류와 믿음

대중문화로 공부하기 2편

우리는 살아가면서 두 가지 오류의 가능성을 직면하게 된다. 첫 번째로 올바른 가설을 기각하는 오류, 두 번째로 틀린 가설을 받아들이는 오류이다. 통계학 용어로 전자를 타입1오류, 후자를 타입2 오류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오류를 극복하기(그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인간은 두 가지 메커니즘을 개발한다. 전자를 위해 '믿음', 후자를 위해 '의심'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는 두 가지 오류의 가능성을 동시에 낮출 수 없다. 어느 한쪽에 무게를 두어 한 가지 오류의 가능성을 낮추면 나머지 한 가지 오류의 가능성은 커지게 된다. 의심을 강화하면 거짓말을 믿는 오류는 줄일 수 있지만, 진실을 부정할 오류는 쉽게 발생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영화 곡성의 클라이막스는 이러한 두 가지 오류 가능성 앞에 던져진 인간의 나약함을 굉장히 잘 표현했다. 자신을 믿고 집에 가지 말라는 무명(천우희)과 절대 그녀에게 현혹되지 말고 의심하라는 일광(황정민) 사이에 낀 곽도원의 처지는 인간의 나약함이 야기하는 혼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인간은 두 가지 오류 가능성이 동시에 다가오게 되는 순간에 타입2오류를 낮추는 방법인 '의심'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맞았을 때 얻게 되는 보상보다 자신이 틀렸을 때 발생할 피해에 더 예민하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뱀이 종용하는 의심 사이에서 최초의 인류가 선택한 의심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이러한 인간 본성을 전하는 설화는 수도 없이 많다. 상자를 열었던 판도라, 에로스를 의심하여 사랑을 잃은 푸시케, 남편의 의심으로 인간이 되지 못한 구미호, 하회마을에서 전해지는 이매 탈의 기원까지... 어쩌면 의심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이러한 근원에 대해 전망 이론을 밝혀냈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일정한 보상을 얻을 때  얻는 만족은 등가의 손실을 입을 때 느끼는 불만족에 비해 작다. 그렇기에 인간은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방법에 먼저 집중한다. 또한 그 기저에는 '두려움'이란 감정이 있고,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집착'이 그 두려움을 강화하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너를 대체 어떻게 믿냐?" "그냥 믿어"이러한 문답 속에 급박해진 곽도원은 의심의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미 합리적인 추론 과정이 아니다. 이미 의심하려는 동기가 이를 뒷받침해줄 근거를 재구성하고 있던 것이다. 결국 인간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장면이 바뀌며 일본인이 사제에게 "넌 그저 내가 악마라고 믿고 싶은 거지?"라는 대사를 던지듯 말이다.

게다가 관객인 우리는 일상적인 도그마에 의해 그 판단을 확증하게 된다. 마지막 악마로 변한 일본인을 보기 전까지 우리는 일본인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처럼 판단하고 무명이 사탄 인양 생각한다. 사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존재는 무명이지만 그가 여자라는 점, 악마인 일본인이 무력하게 쫓기고 울기까지 하는 장면이 떠오르며 '약자는 악인 일리가 없다'라는 판단과 함께 손에 못 자국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그가 약한 자의 모습을 가지셨던 예수님이 아닐까 판단하게 만드는 스테레오 타입이 작용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믿음의 문제가 세계관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래서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 본성에 역행한다. 그런 인간을 잘 알기에 예수님께서는 수제자인 베드로를 가리키며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네가 날 부인하리라'는 말씀을 하셨다. 영화 속 무명 역시 닭이 세 번 울 때까지만 날 믿으라고 부탁하는데 이는 믿음이란 게 인간 본성으론 도저히 유지하기 힘든 것이라면 그 시간을 지속하기 위해 애쓰길 바라는 속마음이 담긴 것은 아니었을까?

모든 관계에서 건강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믿는 법을 훈련해나가야 한다. 이것은 신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부부간 친구 간에도 그렇다. 관계 속에 행복이 있고, 행복해지기 위해 믿어야 한다. 그렇기에 믿음을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고,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한다.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버리라고 하신 것은 물질적 재산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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