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문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란 이야기를 20년 후에 다시 하게 될 거란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올해도 엄청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앞으로는 더 더워질 거란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뜨거운 한 여름 같은 청춘의 한 장면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제170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과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 마키메 마나부의 《8월의 고쇼 그라운드》는 바로 그런 청춘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이 책에는 표제작 〈8월의 고쇼 그라운드〉와 외에도 단편 〈12월의 미야코오지 마라톤〉 두 편이 실려 있다.
작품의 구성은 〈12월의 미야코오지 마라톤〉이란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사카토는 고1 여고생으로 교토에서 열리는 전국 마라톤 대회에 선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참석한다. 하지만 고코미 선배가 뛰지 못하게 되면서 이번 마라톤의 마지막 주자로 뛰게 된다.
12월, 눈발이 날리는 겨울에 치러지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어린 소녀를 카메라가 따라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녀는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교토 거리를 내달리는 동안 수많은 생각과 두려움에 맞닥뜨리게 된다. 청소년기의 성장 스토리를 담아낸 이 작품에서 작가는 눈발이 날리는 교토 거리에서 그녀가 경험하는 환상적인 사건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8월의 고쇼 그라운드〉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여자친구에게 차인 대학생 구치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무기력한 그에게 5학년 유급생인 친구 다몬이 아마추어 야구 대회 참가를 제안하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즉석에서 꾸린 야구팀, 어딘가 수상한 신입 선수들, 그리고 점차 드러나는 비밀 등. 작품은 단순한 스포츠 소설을 넘어 ‘패자였기에 더 빛날 수 있었던 청춘의 한 장면’을 드라마틱 하게 그려낸다.
이 책에 소개된 두 작품 모두, 소설의 배경은 교토라는 곳이다. 교토는 일본의 천년 고도(千年古都)라 불리며, 약 1,000년 동안 일본의 수도 역할을 해온 도시다. 헤이안 시대(794년)부터 메이지 유신(1868년)까지 일본의 정치·문화 중심지였고, 지금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으로 사랑받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쇼와 기온, 산조 대교와 신교고쿠 등 교토의 주요 장소들은 작품 속에서는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이라는 단순한 날씨적인 배경에 머물지 않고 청춘의 차가움과 뜨거움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된다.
이번 한국어판에는 소설 속 주요 장소를 담은 지도까지 수록되어 있어서 독자들이 작품 속 인물들과 함께 교토의 거리를 직접 걷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 책의 저자는 마키메 마나부는 환상과 일상을 자연스럽게 섞어내는 능력으로 유명하다. 경쾌한 대사, 위트 있는 상황, 그리고 문득 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이 그의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일상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비일상으로 넘어가며, 독자들에게 “읽고 나면 따뜻해진다"라는 여운을 남긴다. 또한 무기력한 대학생, 엉뚱한 여고생, 중국인 유학생 등 개성 강한 캐릭터들은 청춘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일본에서 아쿠타가와상이 ‘순수문학 신인상’이라면, 나오키상은 ‘대중문학 최고상’으로 《8월의 고쇼 그라운드》는 일본에서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작가의 등용문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청춘은 애잔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흔들리고 무너진 순간 속에서도 다시 달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마라톤을 통해, 야구를 통해 주인공들이 움켜쥔 작은 불씨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이러한 물음에 쉽게 답을 하지 못하더라도, 사는 동안 흔들림을 겪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8월의 고쇼 그라운드》는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듯 풍경이 그려지고 주인공을 따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교차하는 느낌을 주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청춘의 순간들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교토의 거리와 계절의 변화, 그리고 웃음과 눈물이 섞인 청춘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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