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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사노라면 살아지고, 매일 내 몫의 볕은 새롭게 무리 지어 나타나곤 했다

by 청년 클레어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ㅡ 시편 118:17ㅡ


요즘도 아주 가끔은 초등학교 때 속생각들이 습관처럼 내면의 바다에서 괴물처럼 솟구쳐 오를 때가 있다.


"에이, 죽고 싶어"


그럴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문장을 세차게 밀친다. 어쩔때 외람된 단어의 출현에, '미쳤어' 스스로를 혼내다 이내 마음 머리를 쥐어박기도 한다.


관용구처럼 쓰는 '힘들어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속상해 죽겠다' 의 연장선상이라 생각하며, 대부분 무심히 뭉개며 지나가곤 하는데, 그럼에도 이 문장이 아직도 썩어 사라지지 않고 내 심연 어딘가에 뭉그적 1%라도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질기디 질긴 어느 어둠의 뒷머리를 응시하는 느낌이랄까.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속생각, 아무도 듣지 못하는 이 한 문장을 오늘 다시금 곱씹었다. 고속버스 차창은 만개한 벚꽃으로 찬연한 계절을 영화 속 화면처럼 한 컷 한 컷 보여주는데, 어느덧 오늘과 비슷했던 수십 년 전 어느 봄날로 빨려 들었다.


여전한 상처처럼 저 밑바닥에서 흐느적거리듯 몽롱한 그 봄날의 기억들, 초등학교 4학년때였던 것 같다. 그 봄 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가정폭력은 극에 달했다. 1주일이면 3-4일은 새벽 2-3시까지 아버지의 술주정과 횡포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아버지에게 맞지 않으려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남의 집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엄마와 나는, 혼자 사시는 동네 앉은뱅이 아주머니댁에 가서 하룻밤을 자기도 했다. 언니들은 시집간 큰언니나 고모네 가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다른 이웃집 아주머니댁에서 숨어 자기도 했다.


현실이 너무 참혹하게 리얼해서 지금 생각해도 영화 같았던 그해 어머니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참고글 : 수고하고 무거운 짐 ) 아버지를 뺀 가족들이 집을 나와 두 정거장 거리의 시장 뒷골목에 월세집을 얻었던 것이다. 당시 오빠는 중학생이였는데, 신경쇠약으로 공부가 안 될 뿐 아니라 극도로 위험하다 해서, 몇 년 뒤엔 오빠만 따로 1.5평의 월셋집을 얻어 주기도 했다. (참고글 :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어머니는 월셋집을 급하게 계약해 놓고는, 낮에 아버지가 일 나간 틈을 타, 당장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옷가지와 살림들을 챙겨 나왔다. 자식들 두고 절대 이혼은 안 한다 생각한 어머니가 찾아낸 최후 통첩 아니 최후 보루 같은 묘안이었던 것이다.


학교 마치고 처음 그 월셋집으로 귀가하던 날, 나는 알았다. 그 집주인이 우리 반 남자애네 집이었던 것을 말이다. 자존심이 굉장히 센, 한 여자 아이의 세계는 심각하게 균열이 일었지만 어디 하소연도 할 수도 없었다. 나를 뺀 다른 가족의 고생이 더 극심하다 조숙하게 판단했던 터라, 초라하고 창피하다고 투정조차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주인집이 맞닿아 있진 않아, 그 집에 있는 6-7개월 동안 그 남자애 얼굴을 그곳에서 맞닥뜨릴 일은 많지 않았다. 과일가게하는 부유한 우윳빛의 그 아이가 학교에 가서 소문을 내질 않길 바랄 뿐이었다.


그 즈음부터였던가. 삶을 살아내는 게 참 힘들다 느껴졌다. 견디는 게 숨이 찼다. 삶이 이토록 참혹하고 비참하고 초라할 수가 있는가, 이 현실을 직면하는게 두려워 도리어 아무 일 없다는듯 무감각하게 지내곤 했다. 뭉개지고 깨지고 찢겨진 마음을, 힘든 엄마나 가족 누구에게도 내보일 수도 없었다. 그나마 나는 칠 남매 중 여섯째로, 아버지가 좀 이뻐해 매는 거이 안 맞았던 터였다. 엄마, 언니, 오빠 모두가 아빠의 폭언과 술주정을 말리다 맞기 부지기수였던데 비하면 투정은 사치였다.


그래서였을까, 속내를 어디에도 드러내진 못 했던 무게를, 매일 자학하며 최소 하루에 3-4번은 "죽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교회 다니기 시작했던 6학년 초반까지 이 언어습관은 계속 됐다. 아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여전했다. 좀만 힘들면 '죽고 싶다'가 습관처럼 튀어나와 주인 행세를 했다.


내 나이 40대, 이젠 삶이 살만해졌는데도, 습관적으로 이 문장이 불쑥 튀어나올 때면 옛 기억이 떠올라 저항감이 생긴다. 물론 지금은 진짜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힘들다, 버겁다의 다른 표현이지만 말이다.


오늘 금요일, 홍콩에서 온 고객사 CEO와 조식 미팅이 있었다. 그 고객사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조선OOO 호텔 24층 조식 뷔페 라운지에서 이루어진 럭셔리한 일대일 미팅에서 나는 거침없이 할 말을 다하고 있었다. 투자은행 출신 임원들이 그러하듯 연예인급 외모의 185cm는 될듯한 훤칠한 키, 미국 명문대에서 MBA를 했던, 직전 직장에서의 연봉만 최소 10억은 될법한 사람이었다.


오늘 미팅에서 만난 대표와 닮은 연예인


새삼 수십 년 전 과일집 하던 주인집 아들의 우윳빛 얼굴에, 마음이 무너지듯 부끄러웠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사람이 죽고 싶다 느낄 땐, 숱한 서사가 조각조작 퍼즐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단순히 가난이 주는 결핍, 아버지의 폭거 때문만은 아니란 말이다. 비교의식, 나의 가난이 유독 내게만 혹독하게 내려진 징벌 같다는 피해의식과 서러움이 그 일례이다.


허나, 오늘은 우윳빛 도련님 앞에서 '죽고 싶다'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아련한 동료의식이 들었다. 동시에 코로나 전후로 자주 암송했던 시편 118편 17절 말씀이 되내어 졌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문득 이 성구대로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나 자신과 싸웠던가. 나를 잠식하려는 어둠과 벼랑 끝 전투를 벌였던 숱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며, 스스로가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조선 OOO호텔 자료에서 발췌


세상엔 여전히 금이야 옥이야 자란듯한 우윳빛 집주인 아들들이 있다. 허나, 그들이 겉보기엔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지만 실은 나와 동일한 싸움을 매일 치러내며 지금에 이르렀음을 "이젠" 안다. 우윳빛 주인집 도련님 같은 고객사 대표는 미팅 중간중간 일은 재밌는데 '굉장히 힘들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말쑥하고 여유로운 연예급 미소 뒤에 숨겨진 초췌한 이면이 느껴지며 안쓰럽기도 했다.


수려하고 세련된 비지니스 매너의 고객사 대표는, 오늘 내게 (신사업을 맡을 부문) CEO급 1명, R&D총괄 등 임원급 3개와 주니어급을 의뢰 주었다. 그 자리에서 내 인재풀에 있는 인재 2명의 면면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했다. 보통 이런 인재를 찾으려면 수주일에서 수개월이 걸리기도 하는데, 해당 직무에 적합한 인재들이 공교롭게도 몇 주 전부터 이직을 도와달라 연락 주었던 터이다.


오늘 오전에 미팅했던 조선 OOO 호텔 24층 자리. 뷔페식사 뜨러 간 사이 찍음. 어디에 있건, 누구에게나 햇볕은 동일하게 비춘다.


미팅이 끝나고 오후 2시가 되기도 전에, 업계에서 유능한 C-level 2명을 각각 추천했다. 고객사 대표도 영문 CV를 검토하고는 바로 다음 주초 2명 다 면접을 보겠다 했다. 지원 직무가 다른 2개의 포지션에 각각 말이다.


5월 초 홍콩으로 출국하기 전에 일정을 조율해 달라 했는데, 인재들과 순조롭게 일정도 잘 맞출 수 있었다. 이 2건 모두를 성공하면, 거금의 성공보수가 손에 쥐어지는 중요한 건들이다. 물론 C-Level 의뢰건은 중간중간 난관이 많기에 파이널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참고글 : 삶이 좋은 날)


어릴 적 달동네 술주정뱅의 딸, 어른이 되어서는 종종 고생스럽긴 해도 이젠 죽고 싶은 마음은 없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흔처럼 못 뗀 마음의 언어가 무심결에 튀어나오려 할 때면 , 그 입마저 틀어막고자 시편 118편 17절 성구를 되뇐다.


짝꿍 천재에 대해 남다른 애틋함이 있었던 것도 어쩜 그에게서 나의 어린 시절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연애 초반 극심한 우울증으로 "죽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던 그도, 요즘은 "100살 이상 살아야 하는데"를 자주 말하곤 한다. (참고글 : 아주 웃는 날에)


죽지 않고 살아서,

현재를 살아내고 살아가는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존엄하고 위대하다.











아래 글은 청년 클레어의 [연재 브런치북] 투덜이 털보와 마음숲 중에서 05화 [동화] 5. 허무산의 소리에서 발췌했습니다. 자전적인 요소가 녹아진 동화로서, 위의 제 인생 서사를 참고해서 다시 읽어 보면 글 자간의 의미가 더 잘 다가올 것 같아 공유드립니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허무감.

인생을 살다 보면, 열심히 내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싶은 순간에 맞닥뜨리곤 한다. 순리보다 역리가 버젓이 활보하고, 불의가 정의를 농락하며, 억울하게 학대받는 사람들, 가슴 아픈 사별과 고난에 직면할 때 더욱 그러하다. 코끝에 부여된 호흡 한숨을 간신히 연명하며 하루 몫의 수고와 고통, 인간관계의 지난함을 견디고 보듬고 세워가는 것, 그 반복이 잔혹하게 지루하다 느껴질 때가 있다.


어차피 죽으면 가져갈 것 하나 없는 인생에, 무슨 미련이 있어 이리도 치열하고 저리도 악다구니를 내는가 싶을 때, 인생들이 더없이 가여워 시린 눈물을 훔친다. 인생의 다음 순간 무슨 지뢰가 있을지 모르는데, 그 호흡 한숨이 뭐라고 기어이 내뱉고 들이쉬는 과정을 반복하는지, 삶은 자주 아찔하게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다.


프랭크의 허무감이 그랬다. 한 생명이 세상에서 깨어나고 소멸되는 과정은 신비로운 여정이건만, 그 신비가 일상으로 무디어져 가다가 이내 상실과 망각으로 사라져 갈 때, 그 허망함과 서러움은 숨 막히는 아픔이고 고통이다.


물리학자 프랭크 자신이 세상에 잊히기 시작할 때가 그러했고, 1950년 프랭크가 10살 때 발발한 한국 6.25 전쟁 때 부모님을 모두 잃어 전쟁고아가 되었을 때가 그러했다. 어느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되었던 그 세월이 감사하면서도 결연히 결단 내릴 수 없었던 기회가 도리어 야속하고 심장이 터질 듯 힘겨웠던 때도 있었다.


프랭크가 허무산에 발을 디딘 것은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고 몇 년 안 되었던 그즈음이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폭탄이 터져 돌아가신 부모님의 피 묻은 시신을 부둥켜안고 제대로 애곡 할 시간도 없이 도망쳐야 했던 전쟁세대. 같은 한국인끼리 죽고 죽이는 끔찍한 지옥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살아 나왔는지 기적 같기만 했다. 사랑 많으셨던 부모님을 향한 눈물 어린 그리움은 살을 에워 죽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에코나라의 허무산에 처음 발을 내딛던 날. 그 아랫마을 마음숲의 마더스 가든을 만나기 전까지 그랬다. 매일 밤마다 목놓아 그리워했던 부모님의 기억을 직면한 곳, 에코나라 '그리움 마을'에서 부모님을 드디어 대면하며 통곡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존재의 소멸은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지금 생을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낸 프랭크의 인생은 그때부터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프랭크가, 자신처럼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7살 다솜이를 그 허무산에서 마주친 것은, 그 후 7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프랭크가 50대 어느 날 인간세상에서 실종자로 처리되고, 80대가 되어 조우한 한 소녀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보게 된 것은 호흡이 얼마 안 남은 그에겐 천만다행이었다.



다솜이는 어린이치곤 허무산에 꽤 자주 다녀가는 아이였다. 허무산 등반가들에겐 꽤 유명한 아이였다. 그 나이 어린이들이 허무를 느끼기란 여간해서 찾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솜이가 처음 허무산에 발을 내디딘 것은 7살 무렵이었다. 다솜이의 데디가 병약해져 집에만 있기 시작한 지 1년 하고도 한참 지난 때였다.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허무산 꼭대기 하늘엔 매일 두루마리 같은 것이 펄렁이며 누군가의 혼잣말이 타자기를 치듯 한 자 한 자 새겨져 올라왔다. 그 성량과 단어들은 마치 영화의 대사 같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솜이도 처음 듣기엔 너무 어려운 내용들이었는데, 외국어 같은 이 문장들도 허무산에선 달문처럼 다솜이 귀에 속 들어왔다.


이곳은 하루 종일 수시로 이런 묵시가 계속 설파되었다. 이 공간에 하루라는 시간개념이 있다면 말이다. 잠시 후 멀리 보이는 한 산 꼭대기에서 커다란 소리가 굉음처럼 들렸다.


누군가 그 허무산 정상을 향해 삼삼오오 걸어 올라왔다. 그들은 에코나라 요정이나 난쟁이가 아니라 다솜이처럼 인간의 모습이었다. 진짜 인간인가 자세히 보려 해도 도저히 가까이 갈 순 없었다. 한참 지나서야, 그들이 인간임을 알았고 어떻게 허무산까지 왔는지 가늠해 수 있었다.



고독하고 외로운 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어떤 날은 왁자지껄 보였다. 그 길 양쪽으론 동굴 구멍 같은 것이 여기저기 나있었다. 그 구멍 입구 안쪽엔 세면대 높이의 암석위로 옹달샘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희한한 것은 물이 고여 있는 암석의 바닥면엔 '망각수. 여기서 있었던 일은 지워집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어린 사람들일수록 저 아래쪽 구멍에서 나와서 이 길을 걸어갔다. 위쪽 그러니깐 허무산 가까이에 있는 구멍은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 연배의 분들이 나와서 걸어 올라가곤 했다. 가끔 몸을 가누기 힘들어 요정들의 부축을 받거나 기구나 구름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많이 아파 보였다. 핏기 없는 얼굴이지만 이 허무산을 지나는 동안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때 요정 아자린이 날아와 다솜이에게 말을 건넸다. 그들은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 허무감에 깊이 직면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둘은 오랜 친구처럼 격이 없이 얘기를 나눴다. 요정 아자린은 투명한 격자무늬 날개를 웽웽거리며, 늘 그렇듯 거대한 설명들을 늘어놓았다. 다솜이가 어리다는 게 못내 마음이 쓰이는 듯했다.


"진정한 허무는 오직 진실한 사람만이 직면할 수 있어"


로고스는 인간들이 '허무'라는 비밀한 감정과 고대의 기억들을 보물 찾기처럼 알아내길 바랬다 한다. 인간 세상에 고통과 고난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했다. 마음이 정직하고 진실해, 진짜 허무를 찾아내면 선물처럼 허무산 곧 구름 위 세계를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이 생긴다고 했다.


허무산에 오르는 이들은 꿈을 꾸는 것인가 물었더니, 그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들은 허무산을 실제로 다녀가는 것인데, 다만 망각수를 마시기 때문에 다녀간 일을 매번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간혹 이곳 일들이 아련하게 떠오르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꿈, 영감, 착상, 아이디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했다.


"근데 왜 이 사람들은 허무산을 오르곤 하나요?"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을 멈추고 싶은 충동이 들지. 그땐 지혜가 필요하단다. 넌 아이라서 아직 잘 모를 수 있지만 말이야"


넌 아이라서, 라는 대목에서 다솜이는 다소 화가 삐죽 나왔지만 꾹 참고 들었다.


"이 인생을 잘 살아낼 수 있는 지혜를 얻고자 종종, 때론 자주 허무산에 오르는 거란다. 대부분은 허무산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깨달음을 얻고 부리나케 돌아가곤 하지.


지혜란, 외부에서 주어지기도 하지만 자신 내면의 소리를 잠잠히 듣는 고독에서 불현듯 찾아지기도 하거든"


다솜이는 알듯 말 듯 어려운 말들이었지만 뭔가 마음이 뭉클하고 찡했다. 문득 인생 살면서 꼭 필요한 지혜가 무엇인가 조심스레 물었다.


"다솜아 이미 지구엔 그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전해졌단다. 사람들은 그것을 종교, 철학, 문학 등의 이름으로 엄청난 지식을 널어놓았지. 안타까운 것은 그중 오류와 오타가 있어 정확한 정보가 가려지고 왜곡돼 있다는 게 문제지만, 일부러 내버려 둔단다.


지혜는 진리를 아는 게 첫 단추인데, 진실한 마음과 열정을 갖는다면 꼭 닿아야 할 진리에 끝내 도달할 수 있을 거란다. "



다솜이가 이번에도 너무 어렵다고 머리를 가로젓자 요정 아자린은 웃으며 덤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은 무관심이야. 무관심에서 고통이 시작되는 거야.


허무산을 자주 올랐던 사람들 중엔 '너 자신을 알라'를 외치던 노철학자도 있었고 종교뿐 아니라 정재계 지도자나 유명인들도 숱하게 많았단다.


동물을 주제로 동화를 썼던 요섭 작가도 있었지. 그들이 이곳에서 얻은 영감과 지혜를 틈틈이 나누곤 했던 거란다. 다만 지구로 돌아갈 땐 꼭 마셔야 하는 '망각수' 때문에, 기억이 흐려지거나 헷갈려 지혜에 오류가 생겨 안타깝지만 말이야."


다솜이는 무관심이 왜 나쁜 건지, 사람들이 그렇게 무관심한지 물었다.


"인간들은 생각보다 무관심하단다. 타인에 대해서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진짜 무엇을 원하고 힘들어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지.


인간들이 주로 관심을 갖고 것이라곤 온통 악한 본능과 감정에 휘둘리는 일들 뿐이란다. 그중에 하나가 유행이니 대세니 하는 거대한 여론이 만들어낸 나쁜 풍조란다.


인간들은 좋은 감정들을 부단히 오염시키고 타락시켰단다. 인간들은 애초에 자기애, 쾌락, 탐욕, 어그러진 이기심에 찌들어 있기 때문이지. 이 오염에서 벗아나기 위해선 서두에 말한 무관심을 경계해야 한단다.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이것이 바로 좋은 감정을 변질시키고 자기 나쁜 감정을 통제 못 하는 이유이지."


다솜이는 말이 너무 빠르다 느껴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무 어려워요. 쉽게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요정 아자린은 당황한 듯 얼굴이 빨개지다가 얘기했다.


"자, 봐봐.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 잘 하라고 하지 않니? 근데 아이는 공부를 잘 하려고 하는데, 자책감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져 안 되기도 하거든. 근데 엄마는 스파게티를 사주고는 할 일 다 했다며 자기 뜻대로 공부 안 하는 아이를 더 구박한단다. 아이가 왜 공부가 안 되는지 진짜 관심을 갖는 경우는 극소수란다. 진짜 관심을 방해하는 것은 이 경우도 엄마의 욕심이란다."


다솜이는 순간 우리 엄마는 (자신에게) 관심이 무지 많아서 좋다며, 새침하게 입을 앙당그렸다. 설명충 요정 아자린은 다솜이 표정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야. 남편은 월급을 타다 주면 할 도리 다했다 생각해. 아내들은 자신의 청춘을 희생해 가족들 위해 헌신하다 지쳐 외롭고 허망해 종종 삐치는 건데, 자주 삐친다고 또 싸우거든.


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제대로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는 거야. 그게 다 뿌리는 무관심이야. 다솜이가 어리기에 말하기 뭣하지만, 어른들이 나쁜 짓을 하는 이유도, 무관심에서 비롯된 이해충돌과 다툼이 잦아지며 시작되는 거란다"


다솜이는 우리 엄마와 데디는 어떤가 잠시 생각했다. 순간 '나쁜 짓'이란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요정 아자린은 인간 어린이를 좀 잘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무관심이 우리 집에도 곰팡이처럼 여기저기 퍼져있다 생각돼 근심이 커졌다. 요정 아자린은 한번 더 강조한다는 눈빛으로 얘기했다.


"즉 좋은 감정의 반대는 나쁜 감정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것. 에코나라에선 누구나 아는 지혜란다. 다행히 지구에도 이 지혜는 이미 파다하게 전해지긴 했단다.


다만 사람들이 무심히 제쳐놓으니 그게 문제지. 지혜는 경청하고 삶에 적용하고 실천해야, 그때 진짜 내 것이 된단다. 그전엔 그저 나와 상관없는 시끄러운 정보에 불과하지. "


다솜이는 요정 아자린이 어른들에 특화된 요정이라, 어린 자신에게 맞는 가르침을 주지 못 하는 것 같아, 유치원의 까꿍 선생님이 떠올랐다. 까꿍 선생님은 아이들이 부르는 별명으로 그 선생님은 아이들 눈높이에서 이해되게 이야기를 해준다. 먼 훗날 까꿍 선생님도 안내 요정이 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했지만 요정 아자린이 서운할까 봐 그 질문은 하지 않았다.




허무산 한참 아래쪽엔 흉측해 보이는 산이 하나 있었다. 요정 아자린이 그건 '망자의 산'이라고 했다. 이 산은 인생의 고통과 수고, 허무감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기억과 감정을 모아 놓은 곳이라고 했다.


이 산에서는 눈물이 매일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했다. 그 구멍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곳에서는 온갖 한숨과 탄식,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술과 마약, 담배 냄새가 나기도 하고 과자나 패스트푸드 냄새, TV나 스마트폰 소리도 함께 들렸다.


감정과 기억들은 자주 당시 냄새, 소리, 촉감 등과 딱 붙어있는데, 이들은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감정과 기억 분류작업 없이, 바로 이 산으로 옮겨와 어수선한 것 같았다.


"원통하다, 원통해"


"억울하고 서러워"


"아프고 외로워"


"견디기가 힘들어. 힘들어"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제발요, 제발!"


그 소리 중에 가장 많이 들리는 것은 '기회를 한 번만 더 달라'는 부르짖음이었다. 그 부르짖음은, 과거의 감정이 아니라 죽음 이후 감정이 전송돼 온 것이란 설명에 마음이 더 먹먹해졌다. 그 애절한 부르짖음을 듣는데 숨이 멎을 듯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보단 이 망자의 산은 기억과 감정을 담아놓았을 뿐, 그 주인들은 투덜나라로 보내져 거기서도 후회와 반성의 감정을 내뿜는 형벌을 감수하며 영원의 시간을 나야 한다 했다. 생명의 마감은 로고스의 영역인데, 그 주권을 침범한 악이 크다는 냉혹한 판단이었다. 다솜이는 이건 좀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가 봐도 죽는 게 나을법한 인생도 있을 텐데, 묻지 마 식 무지막지한 징계 같았다.


다솜이는 요정 아자린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물었다.


"그럼 망자의 산은 투덜나라에 있으면 되는 돼, 왜 에코나라에 있어요?"


"음.. 원래는 투덜나라에 있던 산을 큰 값을 치르고 에코나라로 옮겨 온 거지. 사람들이 자기 생명을 너무 쉽게 포기해서, 허무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시청각 교육을 하려던 거였지"


"아, 그렇구나.. "


허무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과 허무를 견뎌내는 사람들을 보는데, 다솜이는 문득 '나는 어디에 속할까?' 질문이 밀려 들었다.


이 땅에 삶이 덧없고 견디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 이 작은 아이는 너무도 이른 시기에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 매일 커다란 돌을 이고 사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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