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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풀이 낙서글의 효능

낙서글, 선으로 악을 갚는 잠깐 멈춤의 도구

by 청년 클레어

오늘은 속풀이 낙서글의 효능을 기술하기 위해서, 진짜 속풀이 낙서글을 예시처럼 기술해 본다. 평소에 혼자 종교 묵상이나 낙서할 때 가끔 속풀이 할 일이 생기면 이런 식으로 한다. 이리 혼자 낙서글을 쓰다 보면 어느덧 속이 시원해진다. 절대자와 나, 내 노트만 아는 신문고랄까. 한번 비밀스러운 예시를 들여다 보자.


낙서글은 문장력을 따지는 글의 종류가 아니기에, 두서 없는 글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어떻게 속에 묻어 놓은 마음과 속생각들을 끄집어내는가에 집중해 보자. 사담으로 20대 때 내 지독한 문제는 자기 속 아픈 걸 털어놓지 못한 것이었다. 그 시절 막 써 내려간 낙서글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25:21-22)




직장이나 종교모임, 봉사단체 등에서 가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무례함을 목도한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뒷담화를 좋아하는 동시에 충고나 조언을 잘 받지 못하는 아집이 있다는 데 있다.


내가 속한 한 봉사모임에 중년의 남자 리더가 있었다. 그는 직장에서 영업부서에서 일했다. 오랫동안 그 모임에 적을 두었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리더가 되었다. 감투를 쓰기 전에는 무난하고 편안해 보였던 이 중년의 남성은 감투를 쓰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기 정치를 하는 것이었다. 해당 직책에 요구되는 인격이나 실력도 부족한 이 사람은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들을 견제하곤 했다. 여기서 부족한다는 말은, 내가 만난 동일 직분 사람들 중 좀 많이 부족했다는 의미이지 극단적 사이코패스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는, 한 번은 그 봉사모임의 top리더십이 뒷담화와 인신공격에 놓여 있을 땐, 은근히 뒷담화 무리 편에서 자기 세력을 키우는 모양새를 보였다. 실은 이 남성은 그 기간 나도 대놓고 견제하고 면박에 준하는 배제를 반복하며, 내가 그 모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려 애썼다. 나는 이 사람도 신천지인줄 알았다. 대놓고 이렇게 나를 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마다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비열하고 조악한 모습을 볼 때마다 오히려 안쓰러웠다. 그의 열등감이 발로였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본인은 모를 테지만 말이다.


그는 자신이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반복하는 자신의 죄성이 뭔지는 잘 모르는 듯했다. 성격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 남성과 몇 번은 부딪혔을 테지만, 나는 잡음을 만들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속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말로 해서 바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


헌데, 희한한 것은 그가 나를 모임에서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배제하려고 내 앞에서, 내 뒤에서 나름의 술수를 쓸수록 그의 세력이 커지는 게 아니라 더 엉키었다. 그는 전에 뒷담화의 단상에 나왔던 그 백조장과 무리들의 편을 들었던 사람으로, 그 봉사모임의 Top리더십을 도리어 어렵게 했던 사람이다. 허나, 그가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는 일련의 시도는 해당 무리들이 1-2년에 걸쳐 그 부서에서 모두 나가면서 일단락되었다.


낙동강 오리알이 된 그는 그제야 나에게 하던 못 뗀 습성이 조금은 교정되었고 풀이 죽은 모습이기도 했다. 새로 오신 top리더십도 내가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다 판단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몇 번만 겪어보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전에 썼던, 뒷담화의 단상의 그 이후 이야기가 궁금한가? 그 백조장은 공동체를 흠집내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뒷담화하더니, 그 즈음에 (그 모임에서) 신천지를 조심하라는 말씀이 계속 선포되던때 공교롭게 그해 연말 봉사직을 사임했다. 그리곤 금세 그 봉사모임의 다른 부서로 옮겨가서 또 신분세탁하며 열심히 사는 듯했다. 그곳에서라도 손톱을 숨기고 입술의 교활함을 버리고 성숙해진다면 그 신분세탁도 의미가 있을게다.


그 부서에 달려가서 그분 조심하랄 순 없었으나 그 봉사모임의 Top 리더십들은 워낙 인격이 훌륭하고 깨어있어서 그 존재를 금세 아실 것을 신뢰했다. 다만 알아도 품어줄 텐데, 다만 그곳에서는 공동체나 구성원들 뒷담화를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조금은 황당한 게, 그리 신분세탁하고선, 그다음 해 해당 봉사모임 홍보영상에서 버젓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 비릿한 어떤 행태를 보며, 답답했지만 입에 재갈을 물리고 조용히 기도했다. 백조장은 나름 교육 관련 자영업을 하고 있었던 터이다. 본인도 자기 사업장에서 뒷담화, 자기 리더십에 흠집 내는 일을 겪으며 자기 발견을 했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일까, 그분의 카톡은 그 이후 시련 관련 카톡글이 종종 올라왔다. 그 시련이 애매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해코지하는 못 뗀 본성과 인격에 대한 연단이건만 그것을 알까 싶었다.




앞서 말한 중년 남성은 바로 그 백조장과 그 무리들을 은근히 비호했던 사람이다. 나중에 Top리더십은 이 중년 남성의 그런 행태를 알고 대놓고 그분 앞에서 나를 세워주는 말들을 하곤 했다.


이 중년 남성은 최근 자기 직장일이 너무 안 풀려 절망에 가까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보았다. 근데 아는가? 내가, 그의 행태에 일절 상처나 마음 상한 일을 내색 않고 다 참으며 기도만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님께서 다만 그를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다루사, 인간적인 정치와 작위적 자기 영향력 확장을 위해 타인에게 행한 무례를 다듬어 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조금 누구러지는가 싶었는데, 그는 최근에도 비슷한 패턴을 반복했다. 전보다 횟수 등이 많이 줄었지만 어쩔 수 없는 본성인가 보다. 사실 그가 영업직으로 일하는 그 직장의 부사장을 난 인재로 편하게 소통하고 있다. 아니 그 회사의 전. 부회장도 알고 소통했었다. 그러니 나를 견제하는 행태는 그의 무의식일지, 의식일지 당연한 수순이었다 보다. 물론 그는 내 이런 인맥을 모르는 듯 하나 추정은 가능할 듯하다. 내가 알아내려면, 직장에서 그의 행태나 실적도 알아내겠지만 그런 치졸한 짓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싶진 않다.




내가 낙서글 쓰던 습관이 왜 생겼는지 전에 여러 번 말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땐 워낙 내성적이어서, 나를 괴롭히고 상처 주는 이들에게 바로 앙갚음을 하지 못하는 대신, 지금처럼 낙서하면서 있었던 사건들을 나열하고 속풀이를 하던 일상이 어느덧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물론 지금은 성격이 180도 바뀌어서 할 말은 이젠 좀 하는 편이긴 하다.


그 중년 남성은 그 봉사모임에 있는 중 여러 번 나로 하여금 "일 힘들지 않냐? 이제 그만하고 다른 사람 주라"는 식의 말을 대놓고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했다. 꼭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말이다. 그때마다 속 없는 사람처럼, "저는 그만한다는 말을 수년 동안 하는데도, 절 안 놓아주시네요. 후임을 구해 주세요ㅎㅎ"라고 했다.


이런 몰상식한 발언을 사람 면전에서, 그것도 아무도 없을 때 하는 야비한 사람을, 구성원들이 있을 때는 존대하며 아무 내색도 안 하고 대하는 나의 속이 어떠했겠는가. 사실 나는 직장일이 바빠 그 일은 6-7년 전부터 내려놓으려고 여러 번 사임을 밝혔으나 그때마다 일이 생기고 후임이 한다 했다 개인사로 고사하는 일이 반복된 것이었다. 하나님의 주권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하던 터였는데, 참 희한한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또 한 여자 선배는 말을 자주 무례하게 했다. 그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투정하고 소곤거리는 것을 진짜 많이 보고 들었다. 그때마다 일이 많고 빠르게 처리하려다 보면 말이 짧아지고 사납거나 무례하게 들릴지 모르나 실은 진심과 열정이 있는 좋은 사람이라고 일관되게 변호해 주었다.


나, 기도시간에는 그 여자 선배의 입술을 혹독하게 훈련 주시도록 기도했다. 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기 때문이고 그 자신의 평판도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혹독이란 단어를 감히 썼던 것은 그 언어습관이 쉬 고쳐지지 않아서 이다.


이들은 모두 모임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나 정작 자기 발견은 더딘 것 같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일을 많이 할수록 혈기와 무례가 늘어나는 모습은 기이하다. 다행히 이 분은 내가 조심스럽게 그런 여론을 전달한 적은 있고 그 후론 좀 누그러지셨다.


열심히 일하는 자의 공로의식, 자기의는 그렇게 보상심리로 켜켜이 쌓여 간다. 그것은 공동체에서 자기 영향력을 확인하고 견고히 하려는 인간적인 정치, 위아래 가릴 것 없는 조심성 없는 언어의 발언 등으로 부지불식간에 나타난다. 내 멘토였다면, 바로 면전에서 혹독하게 책망했을 모습들이다.


최근 이 두 분의 이런 모습이 또 드러나는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실수하는 것처럼 해서 우회적 직언을 했다. 그들은 내 깊은 속뜻을 헤아렸는지 모르겠다. 이때는 Top 리더십에게도 내 실수라는 식으로 얘기하며 그 상황을 공유해 버렸다.



하늘을 향한 순수한 열심과 자기 열심은 과정의 양상과 열매가 다르다. 자기 열심으로 임하는 일이 갖는 독은 무자비함과 무례, 타인을 향한 디스, 뒷담화, 침소봉대 등에서 드러난다. 즉 자기 열심은 인격 성숙과 비례하지 못한다. 그런 분들은 봉사의 열심을 조금 줄이고 자기 발견의 고요의 시간을 좀 더 갖는 게 나을 수 있다. 나도 이런 독을 알기에 실은 일부러 봉사모임의 일을 줄여갔고 지금은 최소한만 한다. 대신 그 영역에 다른 사람들을 세워드리고자 했고 스터디카페 3인 청년을 세우는 등 다른 형태의 봉사를 했다.


이런 일이 아니라도, 어떤 이슈건 사람들과 논쟁하거나 다투지 마라. 종교가 있다면 하늘에 맡기고 기도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지름길이다. 내 입술과 손에 피를 묻히지 말라는 말이 있다. 즉 스스로 직접 응징하거나 맞대응하지 말라는 의미다. 상대방이 악의적이고 무례할지라도, 할 수 있는 한 선대하고 선의로 대해야 한다. 혹여 나도 인간이라 오해하거나 억측할 수 있기 때문에 맞대응을 잠시 유보하는 방편도 된다.


대신 하나님께 맡기자. 내가 당한 답답하고 속상한 일들이 켜켜이 쌓여갈수록 그런 사람들의 머리엔 숯불이 지글지글 타오른다. 즉 하나님의 징계와 혹독한 훈련의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는 말이다.


서두에 말한 중년 남성이 '왜 내 직장일이 안 풀리는지,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되는데, 너무 힘들다'는 식의 말을 올초에 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기 바라면서, 뒤에서는 타인을 은근슬쩍 괴롭히고 아프게 하면, 하나님께서 배로 돌려준다는 것을 아셔야 하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주지하다시피, 반대로 올해 난 직장에서 잭팟처럼 일이 너무도 잘 풀리고 있다. 이것이 시원한 맞대응이다.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가장 명징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책망과 징계 말이다.도 누구처럼 뒷담화할 수도 있었고 희안한 사람들의 해괴한 행태를 사람들에게 떠벌릴 수도 있지만 입에 재갈을 물린 이유다.


직장이나 가정, 봉사모임 등 각종 공동체에서 속이 타고 마음이 무너지는 상처를 받아 신음하는가? 우선 노트북을 열고 브런치스토리나 일기장, 묵상글에 조용히 낙서글을 남겨보자. 속이 해갈되며, 내 감정폭발을 유보할 수 있는 에너지 응집을 덧입게 된다.


그리고 이 유보를 통해서, 하늘의 전능한 손길이 나를 도우시고 대신 되갚아주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위 글은 속감정을 나열하듯 기술한거고 이러고 나선 해당 사람들을 불쌍히 본다. 나이 들어도 그에 걸맞는 품성을 덧입지 못 하는 사람은 겉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속사람은 무일푼의 걸인에 준하는 불쌍한 이들이다. 날이 서려던 감정은 혼자 낙서후 언제 그랬냐는듯 내면이 다시금 온화해졌다.


중년 남성이 올해 새로 온지 1-2년도 안된, 허나 백조장과 그 무리들과 좀 유사한 한분을 바로 양육쪽엔가 리더로 세웠다. 뭔가 구리나 기도만하고 있다. 이분도 나랑 친하지도 않은데 은근히 면박,견제의 시도를 하는게, 공통된 특징이 보이기 때문이다.



혹 이 글이 나비효과가 되어 당사자들이 알게 된다면 단호히 말한다. 우연으로 보지 말고 하늘의 주권과 책망으로 받고, 이제라도 성숙을 향해 나아가시길 당부한다. 이 글이 부디 작은 나비가 되어 무례한 종교인들을 겸손히 낮추어 주시길 기도한다.












아래는 위 낙서글과 비슷한 동기로 2년 전 브런치에 썼던 또 다른 낙서글이다. 출처는 청년 클레어의 마음의 주소 feat 큐티 매거진뒷담화의 단상이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상상을 해봤다.



새벽에 일어나 잠자리 들 때까지 나의 마음의 언어, 생각. 심지어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며 떠오르는 모든 심상들. 그것을 타자기로 타이핑하는 비서가 있다면 어떨까? 나아가 그렇게 타이핑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모아 출판한다면 어떨까. 이 대목에서 '너무 좋을 것 같다', '할 말 다 한다니 속이 다 시원할 것 같네', '안 그래도 내가 까발리고 싶었던 건데 좋아', '나도 한 성격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주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창피하다', '끔찍하다' '절대 안 될 소리', '옛날에 매력적인 이성에게 품었던 은밀한 생각까지 다 들통나자나', '나는 그 사람을 싫어하는데, 상사니깐 립서비스 했는데. 상사가 알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까. 나는 이득보다는 손해가 많을 것 같아 출판하지 않을 것 같다. 특히 모든 등장인물이 실명이라면 더욱. 그 순간 브런치가 떠올랐다. 내가 오프라인에 몸을 담고 사는 동네 사람들이 아니라 브런치라는 외국에 가서 말을 한다면. 그것도 비실명으로. 그럼 좀 말해볼 만하지 않을까.


나와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의외로 꽤 많을 것 같다. 아니 모두가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른바 매너와 경우가 꽤 밝은 2023년 대한민국의 교양시민이다. 직장에서고, 교회ㅡ참고로 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정통 기독교인이다ㅡ에서고, 심지어 집에서도. 나는 할 수만 있으면 배려와 매너로 사람들을 대하려 애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를 꾹 참을 때가 훨씬 많다. 하지만 본 매거진에서는 각 주제별로 이런 나의 고민과 고뇌의 흔적을 글의 형태로 드러내 나눠보고자 한다.


오늘 첫 번째 주제인 '뒷담화' 도 여러 각도에서 몇 번 조명해 보려 한다. 오늘은 봉사모임에서의 뒷담화다. 나는 유독 저항의식과 사회개혁적인 마음이 초등학교 때부터 남달랐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잘 용납이 안 되는 세상의 모습 중 하나가 어른들의 뒷담화였다. 나는 뒷담화는 가장 비겁한 자기 정치이며, 음흉하게 자기를 높이며 타인을 깎아내리는 야심이라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뒷담화가 일상이 된 사람들은 내 친구들 중에도 없고, 그런 분들과는 거리를 많이 둔다.






그런 나에게 올봄엔가 한 존재가 던져졌다. 한 봉사모임-어디의 봉사모임인지는 유추가능하리라 본다-에서 만난 B선배. 작년부터 그녀는 우리 모임에 동참하게 된 준신입이신 분이다. 그럼에도 선배라 지칭하는 것은 나이가 나보다 7년에서 10년은 많으실듯해서. 그런데 이 분이 처음에는 안 그러시더니 1년이 지나가자 사람들 뒷담화를 여기저기 흘리며 모임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흐리는 거다. 그런 B선배의 야욕은 조용한 나의 세계에도 문을 두드렸다. 한 번은 모임의 일 때문에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또 다른 A선배에 대해서 건의라는 명분으로 계속 뒷담화를 하는 거였다. 나는 연신 그분이 그렇게 나쁜 분이 아니라고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두 분의 오해를 풀고자 진땀을 흘렸다. 1년간 지켜본 바로는 조심스럽지만 B선배는 천성이 워낙 이 사람, 저 사람의 뒷담화를 흘리는 분 같았다. 사실 A선배는 그 모임에서 중요한 위치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하는 분이었고 나 역시 그 모임에서 다소 일을 많이 하고 있었다. 느껴진다. B선배는 A선배를 질투는 하는 것이었다. B선배는 입담과 정치성향은 좋으나 능력이 출중한 것은 아니고 특히 인격이 다듬어지지 않아. 툭하면 중년의 나이에도 곧잘 삐치고 별일 아닌 일에도 언성이 곧잘 올라가곤 했다. 그 모임의 교양 있는 기존 사람들은 그를 품어주고 덮어 주고 얼르고 달래느라 여태 큰 잡음 없이 지나갔다. 나도 그렇게 눈감아 주는 한 사람 중 하나였다. B선배는 나이로 봐서 그 모임에서 가장 연장자 중 한 명이었기에, 오래 봉사했다면 직분을 맡았을 수도 있는 연배다. 또 본인 딴에는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1년이 지나도 본인이 만족할만한 그럴듯한 감투가 씌여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B선배의 뒷담화가 담고 있는 복잡하면서도 입체적인 그러면서도 심플한 동기. 같은 인간으로서 또 여자로서 이해가 되면서도 나의 남다른 의협심이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내가 의분이 일 때면 마음에 단어와 문장이 거품처럼 차오르는데, 순간 단어가 따발총처럼 내면에 차오른다. '와, 뭐야. 나잇값 좀 하지. 그리고 여기는 사람을 돕는 봉사모임인데, 이런 모임에 와서 세상 정치를 하다니. 샘 많아 질투하는 것 나도 그럴 수 있으니 이해가 되지만. 모임 분위기를 더 이상 흐리게 두어서는 안 되겠다'


그래 뒤에서 자기 세력을 펼치려는 속내 다 보이는 뒷담화는 더는 봐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지랖 넓게 A선배를 변호하다가, 이내 나에게까지 삐치고 말을 안 하시는 거다. '와, 유치원생도 아니고' 애들 용어로 이제는 나도 빡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재빠르게 나의 내면의 단어를 정정하려 애쓰는 나. "감정이 잘 이탈되고 조율이 안 되는 사람이구나, 이분 상처가 많으신 분 같다."라고. 나는 격분하려는 의협심을 다잡으며 그렇게 나의 감정을 순화해서 기술하려 애쓰는 내 안의 다른 감정들과 씨름했다. B선배는 그 후부터 자기의 말에 전적 동의해 주지 않는 나에게 서운함을 드러냈다. 심지어 B선배는 이번에는 나에 대해서 뭔가를 말하고 다니는 눈치였다. 그냥 눈치가 그랬는데, 팩트는 일일 리 알아보고 싶지 않았다. 나까지 어둠에 물드는 것 같아서.



그리고 어느 날 큐티를 하면서, B선배가 남들을 뒷담화를 하면서 스스로도 자각할 자책감과 그럼에도 그것을 고수하는 그의 질투심 아래 있을 아픈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이분은 아픈 거다. 어려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지 못 했거나. 이전투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 많이 노출되어 정치가 익숙해진 게 아닐까. 생각은 하염없이 길어지다, 나는 이미 B선배에게 카톡의 커피쿠폰을 선물로 발송하고 있었다. 선물이라 쓰고 나 혼자 몰래 '내가 좀 더 기다려 볼게요'라고 읽으며. B선배는 그 후에도 성향이나 태도가 여전했다. 그는 바뀌지 않았으나 내가 바뀌었다. 의협심과 격분에서 긍휼과 이해로. 나의 마음은 다시금 평화를 회복했고, 전투 가득한 곳곳의 전장들을 지그시 바라보며 두 손을 모으곤 한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기독교 서적의 책제목 중 <무례한 기독교인>(리처드 마우, IVP)이 있다. 그리고 나는 사실 <무례한 기독교인> 대한 저항의식이 큰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이른바 교회 내 내부고발자. 그러나 교회 안에서도 대놓고 비판하거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교회나 직장, 가정 어디서고 비판자들을 얼래고 달래는 중재자 이른바 피스메이커(peacemaker)에 더 가깝다. 즉 나는 사람들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고 포용하고 원수를 사랑하자를 실천하고자 애쓰는 진영의 사람이다. 그럼 나의 저항의식은 어떻게 해소하냐고요? 진짜 해야 할 말은 절대자(하나님)에게 한다. 큐티로 기도로. 그렇게 쌓이고 쌓인 단어와 문장, 장문들은 정말 거대한 산에 이른다. 내 멘토가 늘 말했듯,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되도록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성숙의 지름길이다'라는 말에 전적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대목에서는 공론화해서 나누어야 할 대목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브런치를 통해서나마, 이 부분에 대해서. 그간의 내가 묵히고 묵힌 사연들을 조금씩 공유하면 좋겠다고. 물론 내 속내를 적나라하게 타이핑하듯은 못 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브런치 매거진 <마음의 주소 feat큐티>는 그런 이유로 오픈한다. 단순히 기독교 큐티 나눔이라기보다. 직장, 가정, 교회, 사회에서 느껴왔던 문제의식, 나의 저항감을 내면으로만 묵혀 놓았던 주제들을. 내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치유하고 설복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다듬으며 성장하려고 애쓰는지. 마음 성장기의 관점에서 봐주면 좋겠다. 기독교에 반감이 있거나 종교가 지루하다 느끼는 분들은 본 매거진은 너그러이 또 과감히 Skiip 해 주길 바란다. 이 매거진에서는 오프라인에서 볼 수 없었던 나의 면모를 만날 수도 있다. 즉 조금은 정제되지 않고 순화되지 않은 뾰족뾰족한 단어들도 나올 수 있다. 나의 마음을 타이핑하는 비서가 여과 없이 대필해 줄 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뿐 아니라 우리 내면의 단어일 수 있기에 안심하고 기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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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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