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의 통 큰 나눔은 배가 되어 돌아오곤 합니다
오늘은 2025년 한글날이다. 짝꿍네 갔다 평소에 찜찜했던 깜박거리는 형광등 몇 개를 처리하기로 했다. 이에 근처 단골 철물점 사장님께 출장 서비스를 요청했다. 깜박거리는 형광등 4개를 교체하고 부엌의 싱크대 문 하나가 덜컹거려 함께 수리했다.
철물점 사장님은 3년 전 디스크 수술을 했는데, 그때 비하면 요즘은 통증이 90% 정도 사라졌다 한다. 다만 발가락이 찌릿찌릿할 때가 있다는 여운을 남겼고 천재는 발가락 재활을 하시면 좋겠다 조언을 해드렸다. 철물점 사장님도 천재가 의사인 것을 이미 알아 물어보는 눈치였다.
출장비로 형광등 포함 4만 원을 말씀하셨는데, 일부러 5만 원으로 결제했다. 사장님 가시고 천재가 족저근막염 때문에 샀던 발, 다리 마사지기를 사장님께 드리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참고글 : 삼만이의 코피 발바닥)
작년 초 천재가 다이어트한다고 하루 3만보를 걷다 족저근만염에 걸렸었는데, 1년 동안 집중해서 치료해서 지금은 다행히 완치되었다. 그 덕에 이젠 발 마사지기를 쓰지 않으니 그 사장님께 드리자는 말이었다. 당시 쿠팡에서 12만 원으로 싸게 샀는데, 다른 데서는 15만~20만 원은 할 제품이었다.
나도 바로 옳거니 '오~ 그거 좋네!' 대찬성 했다. 철물점 사장님께 전화했더니 감사하다며 가지러 온다 했다. 이왕 드리는 거 배달 서비스까지 하면 좋지 않는가 생각했고, 사장님께 갖다 드린다고 했다. 낑낑거리며 그 무거운 가전제품을 마트가방에 세로로 넣어서 철물점 사장님께 드렸다. 사장님은 쑥스러워하시며 연신 감사하다 하셨고, 추석선물이라며 환한 미소로 인사드리고 서둘러 집에 왔다.
천재는 철물점 사장님이 좋아한다고 하니 기뻐했다. 그 표정을 보는데 불현듯 작년에 브런치에 썼다가 서랍에 넣어둔 글인 <통 크루즈의 땅>이 떠올랐다. 이 남자는 외면보다 내면이 더 매력적인데, 그러니 사실상 모태 솔로였던 클레어의 짝꿍이 되지 않았을까. 오늘도 웃음꽃이 입가에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아래 글은 2024년 5월 21일에 발행했다가 바로 발행 취소 후 브런치 서랍에 넣어 두었던 글입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쑥스러움이 누그러져 재발행 합니다 :)
짝꿍 천재는 청학동 선비처럼 공부나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나 만나기 전까지 부동산 관련 매매를 직접 해본 적이 없고 굳이 들자면 상속재산을 받은 정도의 거래만 했었다.
올해(2024년) 4월 5일, 사전투표가 시작되었던 금요일 오후, 짝꿍 천재가 다소 상기된 표정이나 이내 절제하듯 담담하게 말을 전했다.
"나, 땅이 1억짜리가 있었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몰랐던 땅이 또 있었는데, 누군가 1억에 사겠다 했나 봐."
"어구.. 어떻게 내 명의로 된 땅이 1억씩이나 되는 걸 모르고 있을 수 있어?"
"아마, (상속받은 땅과 아파트 중) 그 짜투리 땅은 5년 전만 해도 가격이 별로 안 돼 유심히 안 본 것 같아. 몇 백만 원이었나. 강 주변에 있는 땅이고"
"근데 그게 5년 만에 1억이면 100배나 오른 거야?"
"최소 10배겠지."
"아, 몇백에서 천만 원 뭐 그랬는데, 자기가 시세를 안 알아본 거구나"
"응"
이 남자는 늘 중간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재물에 관해서도 이 남자는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 종종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고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본인도 인정하는 바대로, 그는 3만 원~5만 원대 소비에서 대해서는 스쿠르지 영감을 방불할 만큼 검소한 절약정신을 발휘한다. 그러다 지출금액이 백만 원에서 천만 원, 억대가 되면 정신줄이 고무줄처럼 달라진다. 갑자기 통이 확~ 커진다.
짝꿍 천재는 살면서 할부로 물건을 사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대학 때부터 발병한 아버지의 병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가풍이 그런 듯도 하다. 어머니도 굉장히 검소하지만 집부터 차 등 물품 매매에서도 대출 없이 사고, 빚 지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고 했다. 반면 우리 집은 초등학교 때까지 영세민(기초생활수급자)이었고 11명의 대가족이었던 터라, 빚이 없이 살아본 적이 없고, 조금만 고가라면 대부부 할부로 샀던 것과 비교가 되었다.
천재는 나와 연애 초기에 오래 몰았던 자동차를 바꿔 새로 샀는데, 억대의 상당히 고가인 젊은 감각의 차를 현금으로 사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다. 4000원 커피 사 먹는 것도 아까워하는 그가 차는 일시불 현금으로 사는 이 사람이 동일인인가 싶었다. 이런 일은 꽤 여러 번 있었다. 아마도 짝꿍이 20대 초반에 아버지가 뇌졸중이 생긴 후 가장의 수입이 불규칙했던 것도 빚을 기피하는데 영향이 있는 듯했다.
그는 부모님께 땅을 꽤 상속 받았는데, 그나 나나 그 땅에 대해서 무심하다. 노년에 예기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 다른 가족의 빈곤문제 등 큰 트러블이 오지 않는 한, 둘 다 공히 땅의 일부를 기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우린 70세까지 성실히 일해서 우리 수입으로 먹고 살고 큰 땅은 손을 대지 않기로, 없다 생각하고 살기로 했다. 상당한 시세의 큰 땅은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뇌리에서 지워져 없는 듯이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짜투리 땅 얘기에서 이 남자의 소비 행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스타벅스 커피도 돈이 아까워 안 사 먹는 사람이다. 연애 초기에 너무 그래서 내가 데이트 공용 체크카드를 만들어서 마음껏 쓰라고 했다. 그제야 편하게 커피를 사 마셨다. 택시를 타는 것도 엄청난 낭비라 여긴다.
그런 그와 내가 작년 우리가 자주 들어왔던 내 조카 진국(가명)이 문제로 사실상 거이 1억 원에 가까운 돈을 지원해 주었다. 도덕적 해이를 염려해 형식은 빌려주는 형태이나 재기해서 5년이고 10년이나 진짜 여유 생길 때 주라 했다. 사실상 되돌려 받을 기대를 그다지 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짝꿍도 상당한 돈을 지원해 주었다.
나는 연인사이에서 이렇게 돈문제로 남자 도움 받는 게 진짜 내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수중엔 몇 가지 이슈로 돈이 다 묶인 관계로 현금이 거의 없었고 조카는 세금추징, 대출 체납으로 징역을 살 수 있다는 판단에 이르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땅값이 1억이라는 대목이었다. 그 작은 필지의 강 주변에 있는 땅이 5년 사이에 그렇게 가격이 오른 이유가 무얼까. 그 땅을 팔겠다고 적극적으로 매물을 내놓은 것도 광고한 것도 아닌데, 사겠다는 사람이 때마침 나타난 것도 신기했다. 천재에게 말했다.
"내가 전에 여러 번 말했지. 나는 살면서, 누군가를 선의로 도와주다 내가 손해 봤을 때, 하나님께서 어떤 형태로든 다 채워주셔서, 그 때문에 내 생활에 구멍 난 적이 없어. 카드연체도 사실상 한 번도 없었고."
천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내가 이 성경 말씀을 말했잖아. 조카 돈 대준 금액과 땅값이 절묘하게 일치하잖아? 내 말이 맞지"
"응. 근데 좀 더 (케이스 내지는 사례가) 여러 번 쌓여야 해"
그는 이것이 우연이지만 어렴풋이 무언의 사인을 느끼는 것도 같다. 그로서는 좀 더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하면 더 실감이 나겠다는 장난 섞인 말이었다.
그즈음 짝꿍 천재네 놀러 갈 때면, 종종 배달음식도 줄이자며 왕뚜껑 컵라면 끊여달라고 했었다. 짝꿍은 누군가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줄 때는 통이 컸으나 자신에게는 엄격한 잣대로 검소와 절제를 훈련하는 것 같았다. 돈이 있어 펑펑 나누는 것도 아니고 설사 여유가 있다 해도, 도움을 받는 사람의 처지와 마음을 헤아리려는 그와 나의 무언의 의식이기도 했다. 그때 나도 종종 마른 김과 김치 그리고 간단한 국에 밥을 먹곤 했다. 조카를 도와주기 위해서, 천재는 미국 주식을 손해 보고 처분했고 나는 고율의 카드론 대출을 받은 적도 있었고, 매달 남모르게 감내해야 할 마음고생이 꽤 있었다.
내가 어려서 영세민(지금의 기초생활수급자)으로 살면서 느꼈던 비릿한 이질감이 있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 오면서 밍크 코트나 고급 자동차를 타고 귀티를 풍기는 일, 명품을 휘감을 때 풍기는 득의에 찬 표정을 그대로 들고 오는 일이 그것이었다. (참고글 : 19,742원짜리 아파트(1))
그 시절 어린 마음에, 누군가를 도울 때 돈이나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결핍과 고통에 함께 하는 마음이 아닐까 되뇌었다.
내가 직장 생활하며 연봉이 꽤 올라갔음에도, 자동차 운전면허를 일부러 따지 않고, 대중교통을 여전히 고수하는 이유이다. 간혹 택시를 탈 때조차 그 돈이 허비일까 싶어, 그 탑승시간을 절약하듯 시간을 선용하려, 이동시간 내내 일을 하거나 독서나 공부를 한다.
천재는 며칠 전에도 왕뚜껑 시리즈를 맛 종류별로 3종류를 끓여 먹자 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후루룩 3개의 컵라면을 왕처럼 다 해치웠다. 종종 고급 레스토랑을 갈 수도 있고, 고가의 해외여행도 갈 수 있겠지만, 둘 다 그것을 기피하는 이유는 우리의 내민 손이 빈말이 되지 않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물론 천재의 우울증이 완치되는 날 우린 멋진 여행을 계획하고 있고 종종 소박하나마 스위트한 외식도 한다.
"참, 자기는 3만 원 이내는 돈 쓸 때 벌벌 떨면서 금액이 백, 천, 억 단위로 올라가면 통이 커지더라. 신기해"
"내가 그래서 '통 쿠(큰)르즈"잖아. 통이 크잖아"
"맞네! 톰 크르즈, 통 큰루즈"
천재가 미국 영화배우 톰 쿠르즈의 열혈팬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남자가 진정 통이 큰 건지 아님 통이 작다가 가끔 발작하듯 통이 커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재정의 문제에 있어서는 '벼랑 끝에 선 누군가를 돕자'에 서로 뜻이 맞고 우리 재정의 일부는 인생 내내 '기부를 꾸준히 하자'는데 뜻이 일치하는데, 이 모든 헷갈리는 논란은 잠재워진다.
통 큰 내 남자의 인생 내내 재물이 탐욕의 덫이 되지 않길 바란다. 땅이나 돈, 그 무엇이든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아우르는 요긴한 도구로 잘 통제하고, 포스 있게 다스려 선용하기를 날마도 두 손 모아 소망한다.
각주: 2025년 9월 현재까지, 나와 짝꿍 천재가, 조카의 사업실패로 인한 빚과 조카와 그의 마미(넷째언니)의 부족한 생활비 등을 수습해 준 것만 누적 3억이 넘는다. 그로 인해 이젠 조카가 빚을 거이다 갚은 듯하다.
최근 글인 < 노인빈곤 vs 효도의 복> 에선 내가 프로젝트 1건으로 1.3억의 성과급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조카를 도와주며 손해 본 돈을 많이 보전했다. 본글도 2024년 당시 그런 맥락이었다.
* 연관 글 : [유머 1] 기분 좋은 케미
※제 짝꿍 천재는 브런치 작가활동은 전혀 하지 않아요. 비슷한 필명들에 헷갈리지 마셔요 :)
*사진, 그림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