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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Sep 24. 2021

늦은 밤 라면을 끓였다

소울 푸드는 아니지만 라면에 진심인...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들 숙제 참견에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공모전에 제출할 소설을 마무리하느라 칼로리 소모가 만만치 않았다. 밤 10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시침에 맞춰 배꼽시계도 덩달아 울었다. 언제나 진리인 황홀한 자태의 치맥이 유혹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왠지 글발 받는 날, 한 자라도 더 써야지 싶어 눈물을 머금고 치맥은 포기한다. 그렇다고 몸이 전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그래, 이 시간에는 라면이 정답이지! 


 "아빠 라면 먹을 건데 같이 먹을 사람?" 인공 조미료의 바다를 함께 항해할 동료를 구해 보지만, 오늘따라 나서는 용자(勇者)가 없다. 배신자들! 1년 365일 다이어트 중인 아내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본다. "사탄아 물러가라!" 아내는 손가락 십자가를 만들어 눈앞에 들이댄다. 헐벗고 굶주린 어린양이 사탄으로 낙인찍히는 순간이다. 밤 10시 이후 (야식으로) 라면을 먹어 보지 않은 자만이 나에게 돌을 던지라!!!   


 어차피 '승자는 혼자다'(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라고 독하게 마음먹고 주방에 홀로 선다. 라면 하나 끓이도록 최적화된 냄비에 수돗물을 받는다. 라면 끓일 때 정수기 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정수기 물은 라면의 핵심인 수프 맛을 반감시킨다는 통계를, 지난 35년간 스스로 작성한, 믿기 때문이다. 라면 봉지에 적힌 적당한 물의 양(500ml)은 이제 계량컵 없이도 적확하게 측량 가능하다. 오랜 습관이 이렇게나 무섭다. 언제부턴가 건강을 생각해 물을 450ml만 사용한다. 물이 줄어드는 만큼 수프도 덜 넣는다. 물론 라면 맛에는 약간의 변화도 없다. 오랜 세월 라면과 함께 울고 웃었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내공이다. 세상에서 가장 값싼, 하지만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행복 중 하나인 라면을 오래도록 즐기기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다. 


 한동안 과학계와 식품업계에서 화제가 된 '라면 끓일 때 면을 언제 넣는가?'는 어느새 해묵은 논쟁이 되었지만, 면발의 쫄깃함이 라면의 생명이라 믿는 나는 물과 면과 수프를 동시에 넣고 끓이는 조리법이 마음에 들었다. 라면은 처음부터 '깊이'를 논하는 음식은 아니지 않은가. 자극적이고 인공적인, 몸에 좋지 않으므로 입에 좋은 맛이면 충분했다. 라면의 3대 요소라 할 수 있는 물, 면, 수프를 동시에 넣고 끓이는 방법은 쫄깃한 면발과 함께 라면의 오묘한 인공의 맛을 극대화하는 최상의 조리법이다. 게다가 현명한 우리네 어머니들은 몸에 좋지 않은 라면이 몸에 좋을 수 있도록 기발한 아이디어를 고안해 내지 않았던가! 그렇다, 계란이다. 


 계란 없는 라면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라면은 팥 없는 팥빙수요, 아이언맨 없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다. 적어도 나는 그런 라면을 상상할 수 없다. 라면과 계란의 조합, 겉으로 보면 하나에 하나를 얹는 단순한 덧셈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자칫 단순해 보이는 조합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우주가 창조된다. 라면이 인스턴트식품을 넘어 국민 음식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동인(動因)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라면 국물과 계란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장주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주인지 구분할 수 없는 완벽한 조화. 펄펄 끓는 라면 속에 계란을 넣자마자 젓가락을 사용해 빛의 속도로 저어주면 끝이다. 국물 맛은 (다소 텁텁해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적어도 내게는 천상의 맛이다. 김혜자 배우님의 오랜 조미료 광고처럼, "그래, 이 맛이야!"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매사에 잘 맞는 짝꿍인 아내와 나도 라면과 계란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정반대 입장을 취한다. 아내는 닭이 알을 품듯이, 면이 계란을 포근히 감싸는 조리법을 선호한다. 라면 국물이 계란과 섞이지 않아야 수프 본연의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내 주장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라면에 계란을 왜 넣는 것일까? 아내는 수란에 빗대어 아둔한 남편의 무지몽매를 일깨워준다. 면 속에 꼭꼭 숨은 계란은 흰자와 노른자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특히 노른자는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은 노오란 보름달이 된다. 라면 국물과 함께 그 노른자를 숟가락으로 퍼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단다. 동의할 수 없지만, 아내의 취향을 존중한다. 내가 끓일 때는 내 조리법대로, 아내가 끓일 때는 아내 조리법대로!    


 완성된 라면은 통째로 다른 그릇에 옮겨 담지 않는다. 작은 캠핑용 스테인리스 식기에 딱 한 젓가락만큼씩만 덜어 먹는다. 예전 양은 냄비 시절에는 뚜껑에 덜어 먹었지만, 양은 냄비가 몸에 좋지 않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접한 이후로 더는 사용하지 않는다. 향수(鄕愁)를 캠핑용 스테인리스 식기로 달래는 셈이다. 아내가 라면을 끓여줄 때면 큰 국그릇에 옮겨주곤 한다. 그러면 왠지 라면의 참맛 일부가 증발해 버리는 느낌이다. 라면은 낡은 사진첩에서 꺼내보는 오래된 사진처럼 추억이라는 양념으로 함께 먹는 음식이기도 하니까. 물론 김치도 절때 빼놓을 수 없다. 배추김치도 좋지만, 파김치나 부추김치, 때로는 갓김치와 함께 먹으면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 언제나 주인공은 라면이 되어야 한다. 김치는 거들뿐! 


 식탁에 앉아 꼬들꼬들한 면발을 호로록 흡입하려던 찰나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던 아내가 "어, 맛있어 보인다. 한 입만!" 하며 은근슬쩍 내 앞에 자리를 잡는다. 등골이 오싹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또르륵 흘러내린다. 이 한 입이, 한 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세월이 무수히 증명했다. "다이어트 안 해?"라고 반격하지만 소용없다. 한 입 정도는 살로 가지 않고 소화 중에 어딘가로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절대 한 입으로 끝내지 않으면서…. 어느새 무기(젓가락과 캠핑용 스테인리스 식기)를 챙겨 전장에 참여한 아내는 공들여 끓인 '내' 라면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긴다. "오늘 라면 왜 이렇게 맛있어!"라고 말하는 순간 끝이다. 면의 절반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라면 먹을 거냐고 물어봤잖아요!"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내는 세상 예쁜 얼굴로 '한 입만 먹으려고 했지. 라면은 역시 하나 끓일 때 제일 맛있어."라고 말하며 얼른 자리를 피한다. 아내가 사라진 자리에는 쓸모를 잃은 무기들만이 애처롭게 남는다.  


 어쩔 수 없다. 비장의 카드를 사용하는 수밖에. 정량은 군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라면은 오롯이 하나가 정량이다. 반쪽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차라리 먹지 않은 것만 못하다. 황급히 냉장고로 달려간다. 찬밥을 찾는다. 다행히 저녁때 먹고 남은 밥을 소분해서 담아놓았다. 얼른 하나 꺼내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간 돌린다. 적당히 데워진 밥을 식은 라면 국물에 말았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밥이라야 한다. 그러면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린다. 이른 저녁을 먹었지만, 야식은 이렇게 정당성을 확보한다. (아! 이 놈의 확증편향!) 늦게 소식을 접한 아이들이 식탁으로 몰려왔다. 벌써 다 먹었냐고 나라 잃은 얼굴을 한다. 아빠가 한 입 줄줄 알았단다. 치! 그래도 안다, 그 마음 알아!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묻는다. 


 "라면 한 그릇 할래?" 


 라면은 살 안 찐다. 살은 우리가 찌지!!!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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