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적의 기적의 기적

하기나 해!

by 조이홍

우리나라에서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3대가 나란히 걷다가 동시에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8,145,060분의 1입니다. 백분율로 따지면 0.0000123%라고 하고요. 도대체 0이 몇 개인지.... 조금 과장하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살짝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매주 로또 복권 1등 당첨자는 적게는 네댓 명에서 많게는 스무 명 남짓 나옵니다. 가히 기적이라고 할만합니다.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기적을 원하시나요. 그 비법이 궁금한가요. 의외로 간단합니다. 지금 당장 로또 복권을 구매하면 됩니다. 적어도 복권을 구매해야 0.0000123%의 확률이라도 생깁니다. 그렇지 않다면 확률은 0%입니다. 로또에 당첨되고 싶다면 당장 로또부터 사야 합니다. 아, 너무 쌀로 밥 짓는 이야기인가요.


영화나 드라마의 클리셰로 종종 '사람은 3억 분의 1(1/300,000,000)의 확률로 태어난다'라고 표현합니다. 어마어마한 확률을 뚫고 태어난 존재이니 직업, 성별, 나이, 국적, 민족 등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엄하다는 의미로 언급되곤 하지요. 지금 상황이 좀 좋지 않더라도 기죽지 말고, 풀죽지 말고 아름다운 세상 찬란하게 살아보라고 격려하는 의미일 터입니다. 그런데 사실 정자는 대부분 질외로 흐르거나 질내 산성물질에 의해 질식사하고 항체에 의해 잡아먹히기도 해 실제 자궁경부를 통과해 난소에 이르는 정자는 평균 1~200개 정도라고 합니다. 3억 분의 1은 과장법의 끝판왕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6%의 확률(정자가 난자에 착상할 확률)로 태어났다고 해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난관을 뚫고 태어난 우리는 이미 대단한 존재입니다. 아, 이것도 너무 뻔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3억 분의 1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게 남아 있으니까요. 이토록 광활한 우주에 생명체가 태어날 수 있는 '지구'란 행성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수학 체계를 뛰어넘어 숫자로는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수학적으로 계산했겠으나 무지한 저로서는 아쉽게도 이 글에 담아낼 수 없습니다. 아무튼, 스티븐 호킹 박사가 '설계된 우주'라고 표현할 정도로 극도로 결렬한 탄생 과정(빅뱅)을 거치고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변수가 수십억 년 후 태어날 생명체의 생존에 적합하도록 세팅(토마스 헤르토흐, 시간의 기원 중에서)되었으니 이야말로 기적의 몇 승이어야 가능할까요. 만약 하나만 까딱 잘못되어도 이 우주는, 우주란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어마어마한 '공간 낭비'를 벌였을지도 모릅니다. 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물론 이 광활한 우주에 지구 같은, 아니 지구와 환경이 달라도 우주와 자아를 인식할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인류가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해당 전제 하에서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유전자 수프에서 DNA 복제가 가능한 유전자가 등장하기까지 수십에서 수만 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것 역시 인간의 수학 체계를 뛰어넘어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할 만큼 아무것도 없는 끈적끈적한 수프에서 어떻게 최초의 생명체가 될 씨앗이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이 우주가 모든 까다로운 조건을 수용하고 생명체의 존재를 허락한 까닭은, 우리 존재를 허락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정말 전지전능한 존재가 이 모든 걸 설계한 걸까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에 관해 평범한 사람들이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뛰어난 천재들이 지금도, 앞으로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요.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 모든 기적이 일어난 이면에는 아무런 의도나 목적 없이 '그냥 행해진' 무수한 시도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짐작도 할 수 없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그냥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때론 기적은 이토록 사소한, 아무런 목표나 목적도 없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운이 좋습니까. 적당히 이 우주와 자아를 인식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생명체로 21세기를 살아가니까요.


그러니 지금 뭔가를 하고 싶다면 '그냥 하면' 됩니다. 기적의 기적의 기적으로 태어난 행성에 사는 우리가, 3억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태어난 우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할 까닭은 하나도 없습니다. 뭔가를 계획했다면, 그것이 어마어마한 성공을 위한 계획이 아니더라도,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하면 됩니다. 핑곗거리를 만들면 수십 개가 넘겠지만, 그 모든 걸 넘어서 그냥 해보면 됩니다. 여러분께 생명체를 창조하라거나 지구를 만들라는 미션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을 테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도저히 끊을 수 없었던 숏폼을 끊었습니다. 실제로는 두 살 차이지만 열 살은 더 늙어 보인다는 말에 매일 5km씩 걷고 달립니다. 읽지도 못하는 일본어를 한글로 발음을 써가며 공부합니다. 뭐 대단한 결심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니까 됩니다. 만약 대단한 결심 같은 걸 했다면 안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하니까 그냥 됩니다.


얼마 전 읽은 <단순한 열정>의 한 대목을 휴대폰에 메모해 두었습니다. 어쩌면 이 문장 때문에 이번 글을 쓰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이 밝아도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무의미한 하루가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시간은 더 이상 나를 의미 있는 것으로 이끌어주지 못했다. 단지 나를 늙게 할 뿐이었다."


소중한 한 시간을, 하루를, 일 년을 그저 늙어가는 데만 쓰시렵니까.

하려던 거 하세요.

Just do it!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글쓰기는 안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