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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에 대한 단상

중고책, 그리고 '책의 여행'

by 조이홍

국민 독서 실태 조사는 격년 단위 조사라 2023년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2023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는 만 19세 이상 성인 5,000명(가구 방문 면접 조사)과 초등학생(4학년 이상) 및 중・고등학생 2,400명(학교 방문 설문지 조사)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조사 기간은 2023년 10월 4일부터 2023년 11월 10일입니다.




독서 실태 조사 결과를 보고 오랜만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이게 얼마만의 긍정적인 결과인지요. 뭐, 그렇다고 매번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를 찾아보는 건 아니지만 최근 5~6년간의 결과 수치를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초·중·고교 학생의 종합독서율과 연간 종합독서량'의 증가였습니다. 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를 제외하고 지난 1년간 일반도서를 1권 이상 읽거나 들은(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포함) 초·중·고교 학생의 비율이 지난 조사보다 4.4포인트 오른 95.8%라는 수치를 나타냈습니다. 또한 연간 종합독서량도 지난 조사보다 1.6권 늘어난 36.0권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보였습니다. 누가 요즘 아이들 책 안 읽는다고 했던가요. 아, 우리 집에 두 명이나 있어서 제가 그랬군요. 반성합니다.


반면, 안타깝게도 성인의 경우 종합독서율은 43.0%, 종합독서량은 3.9권으로 2021년 조사에 비해 각각 4.5% 포인트, 0.6권 줄어들었습니다.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결과와 함께 1994년 이래 성인 독서율이 최저치를 경신했다는 헤드라인이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매체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지만 '전자책'의 약진이 눈에 띕니다. 학생의 경우에는 종이책과 전자책이 고르게 증가했지만, 성인은 종이책은 감소한 반면 전자책 이용은 소폭 증가했습니다. 종이책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성인들도 서서히 전자책으로 기우는 듯합니다. 아마도 올해 결과가 나오면(내년 4월쯤) 이런 추세는 더욱 뚜렷해질 터입니다. 연령대로 보면 20대의 전자책 이용이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2021년 조사에 비해 7.8% 증가한 58.3%를 기록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제 예상보다 학생들의 종이책 이용 비율이 여전히 높다는 것입니다(93.1%). 버스나 전철을 타면 예전만큼 책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 걱정했는데 아마 대부분 '샤이 리더'였나 봅니다.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 경험이 85.4%인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복잡한 대중교통수단보다는 안락하고 쾌적한 도서관에서 책 읽기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서하기 어려운 까닭으로 성인은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4.4%)'를, 학생은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31.2%)'를 첫 번째로 꼽았습니다. '그럴 수 있어'라고 할만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사연에는 살짝 눈을 흘깁니다. '책 이외에 매체를 이용해서(스마트폰/텔레비전/영화/게임)'라는 항목에 성인 23.4%, 학생 20.6%가 응답했습니다. 하긴 일하고 공부하느라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를 한껏 소비했는데, 거기에 집중을 요하는 책까지 읽으라고 하면 누가 좋아할까요. 이해하려고 마음먹으면 이해 못 할 것도 없겠지요. 책이 너무 진중하고 무거운 매체라는 고정관점을 바꿀 '대스타 작가'가 등장하지 않으면 좀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 듯합니다.


'독서의 목적'은 이런 실태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줍니다. 성인들은 독서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24.6%가 '마음의 성장(위로)'이라고 응답했습니다. 2019년과 2021년에는 '지식과 정보 습득'이었는데 2023년에는 세상이 더 각박해졌나 봅니다. 자연스러운 결과지만 학생들이 독서하는 가장 큰 목적은 '학업에 필요해서(29.4%)'였습니다. 사교육 위주 입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여기에 있지 않는지 고민해 볼만합니다. 다음으로 성인과 학생 모두 '책 읽는 것이 재미있어서'를 독서의 목적으로 22.5%, 27.3% 응답했습니다. 제 경우는 첫 번째가 '재미', 두 번째가 '지식과 정보 습득'입니다. 재미없는 책을 억지로 읽을 까닭은 없습니다. 누가 책 좀 읽으라고 핀잔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마지막으로 다소 의외의 결과는 60세 이상 연령층의 종합 독서율이 15.7%74.5%를 보인 20대와 큰 격차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제 주위에 있는 60대는 늘 책과 가까이하는 반면 책 읽는 20대와는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나 고령, 저소득층이 책과 거리를 둔다는 것은 비단 '독서 진흥'의 차원이 아닌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단초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의견 내 봅니다.


2023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는 학생 독서지표의 전반적 상승과 청년층의 전자책 독서율 급증에 따른 종이책 독서율 상쇄 같은 긍정적인 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이 궁금하다면 문체부 누리집(www.mcst.go.kr) ‘2023 국민 독서실태 조사’ 보고서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연휴 마지막 날 거실 한 면을 가득 채우던 책장을 정리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별로, 장르별로, 나라별로 정리해 두었던 책들을 꺼내 소장용과 판매용으로 구분했습니다. '남은 생에 동안 한 번은 더 읽겠지' 싶은 책들만 엄선해 분류했더니 백 여권 정도 되었습니다. 나머지 4백 여 권은 알라딘 앱을 통해 '매입가 조회'부터 확인했습니다. 한 권 한 권 바코드를 읽어 가격을 조회하는데 한나절이나 걸렸습니다. 2백 여권은 매입 불가라 어쩔 수 없이 폐지로 분리수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페이지마다 쳐놓은 줄이 왜 그리 많던지요. 여기저기 메모도 많고요. 책 읽는 습관이 그러하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아내와 둘이 낑낑대며 들고 간 2백 여권 중에 알라딘에서는 백 여권만 사들였습니다. 이미 재고가 많은 책들이나 너무 낡은 책들은 구입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상품'의 관점에서 그럴 수 있어했습니다. 백 여권을 판 값으로 12만 원 남짓한 돈을 받아 들고 나와 중국집에 들렀습니다. 수타 짜장이 맛있는 집이라 짜장면 한 그릇씩 먹었습니다. 맛 난 짜장면을 먹는데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평생 아끼고 아끼던, 희로애락을 선물했던 책들의 가치 치고는 너무 박하다 싶었습니다. 중고책을 그저 '상품'의 관점으로만 봐야 하는 걸까.


현실적으로 중고책 매입 가격이 너무 낮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0년 정도 지난 책들은 균일가 1천 원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런 책들은 재판매 가격도 매우 낮을 터입니다. 상품의 관점이 아니라 '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책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택도 없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너무 낡아 읽을 수 없거나 낙서나 밑줄로 지저분해 읽을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가끔 궁금합니다. 헌책이라는 매체는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책처럼 깨끗한 책을 원하는 사람은 새책을 사면 될 테니까요.


15년 전쯤에 '책의 여행'이라는 걸 시작했습니다. 이곳 브런치에서도 동료 작가님들께 몇 번 시도했었더랬습니다. 책 한 권을 골라 읽고 지면 어딘가에 한 줄 평을 씁니다. 그리고 그 책을 회사 동료에게 선물했습니다. 다 읽고 한 줄 평을 써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모르고 너만 아는' 친구에게 그 책을 선물하라고요. 그렇게 손에서 손으로 책의 여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그 책이 어디를 여행하고 있을까 가끔 생각납니다. 책만이 전해줄 수 있는 애틋함이 있습니다. 그런 책의 여행을 오랜만에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중고책방에서 구입한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로요. 이 책의 여정에 함께 하고픈 분이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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