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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홍작가의 일희일비(一喜一悲)

by 조이홍

2025년 새해가 밝았나 싶었는데 어느새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이런 말 정말 하기 싫지만, 나이 들수록 시간은 참 빠르게 흐릅니다. 10대 때는 그렇게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굴더니, 40대가 되니 터보 엔진을 장착한 레이싱 자동차 같습니다. 슈우웅~~~, 붙잡을 사이도 없이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5~60대 때는 또 어떻게 달라질지 벌써부터 후들후들합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큰 변화는 15년간 모아 온 책장을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 번은 더 읽겠다 싶은 책을 제외하고 모조리 중고 서점에 판매하거나 분리 수거함으로 보냈습니다. 그렇게 대략 백여 권 정도가 자리를 지켰는데 기회가 되면 '살아남은 책들의 목록'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번에 책들의 운명을 결정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글쓰기' 관련 분야였습니다. 출간의 꿈이 시들해진 요즘, 이 책들을 다시 볼까 싶었더랬죠. 밑줄 팍팍 그어가며 읽었던 책들이고, 잘 표시는 나지 않지만 '글쓰기 체력'에 알게 모르게 조금씩 붙어 있는 근육들이 되어 주었을 텐데 말입니다. 한 권 한 권, 간직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깊었습니다.


글쓰기 책들을 이리저리 넘겨보다 예전에 브런치에 글쓰기 책에 관해 썼던 글이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썼더라 찾아보니 여전히 저에게도, 동료 작가분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해 '리라이팅'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우선 사그라진 제 창작의 불꽃부터 살려야겠다 싶기도 하고요. 솔직히 글쓰기 책 읽고 얼마나 글발이 좋아졌나고 물어보심, 대답하기도 전에 이전까지 썼던 문장들이 먼저 대답할 터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글쓰기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정도도 어림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 주었던 책들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저에게만 해당될 수도 있지만, 목록을 공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글쓰기의 기초를 다지고 싶다면 필독, 이태준의 <문장강화>

장르 소설을 쓰고 싶은 이들이 읽어볼 만한 레이먼드 챈들러의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21세기 르네상스적 인물 움베르트 에코의 <젊은 소설가의 고백>

등단 50주년을 맞아 독자와 묻고 답한 내용을 담은 조정래의 <홀로 쓰고 함께 살다>

묘사(보여주기) 스킬 쌓기에 그만인 샌드라 거스의 <묘사의 힘>

작가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는 로저 로젠블랫의 <하버드대 까칠 교수님의 글쓰기 수업>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에 대한 안내서 강원국의 <나는 말하듯이 쓴다>

꼭 출간하라고 응원해 준 강원국의 <강원국의 글쓰기>

스토리의 힘을 깨닫게 해주는 리사 크론의 <스토리만이 살 길>

교정/교열 전문가가 작심하고 쓴 김정선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그것도 잘, 편성준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글에 영혼을 불어넣는 비법을 엿볼 수 있는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

작법서를 읽고 소설가가 된 사람은 없다고 고백한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

장편을 쓰지 못한 풋내기 작가 시절 헤밍웨이의 글쓰기와 삶을 보여준 <파리는 날마다 축제>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길잡이가 되어준 <인간의 130가지 감정 표현법>

워낙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저 목록에서 과연 몇 권이나 책장에 남아 있을까요. 책을 읽으면 마음에 드는 문장은 필사해 둡니다. 레이먼드 챈들러 식으로 말하면 문장을 뜯고 해체해 내 문장으로 만드는 노력을 한다고나 할까요. 한때는 참 열심히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커다랗게 써둔 문장을 책상 이곳저곳에 붙여두었습니다. 소설에 인용할만한 명문도 많지만, 글쓰기에 관한 문장도 상당합니다. 어쩌면 글쓰기에 지친, 슬럼프에 빠진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해 몇 개 소개해 봅니다. 네덜란드 저널리스트이자 사상자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휴먼카인드>에서 말했듯이 인간 본성은 선하며 우리는 남을 돕기 위해 태어났으니까요.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 헤밍웨이


제대로 쓰려고 하지 마라. 그냥 쓰라.
- 제임스 서버 (미국 소설가)


소설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 제임스 미치너 (미국 소설가)


작가란 오늘 아침에 한 줄의 글을 쓴 사람이다.
-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


때때로 나는 궁금합니다.
글을 쓰거나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들은
도대체 인간의 삶에 내재된 광기나 우울, 고통, 두려움 등을
어떻게 피하는 걸까요?
- 그레이엄 그린 (영국 작가)


좋은 글을 쓰고, 못 쓰고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의 여부로 결정된다.
단어는 문학의 밥이다.
- 조정래


'영감'이란 약삭빠른 작가들이
예술적으로 추앙받기 위해 하는 나쁜 말이다.
- 움베르트 에코


스스로 터득할 수 없는 작가는
다른 사람에게 배움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분석'하고 '모방'해 봐요.
나에게 플롯은 만드는 게 아닙니다.
자라나는 거지요.
- 레이먼드 챈들러


그것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있으면 소설이 된다.
- 황정은


커다란 실수와 시행착오를 범하라.
많은 종이를 다 써버려라.
완벽주의는 졸렬하고 냉혹한 형태의 이상주의이다.
반면 뒤죽박죽 무질서야말로 예술가들의 진정한 친구이다.
우리가 무엇을 써야 할지를 깨닫기 위해서도 실패는 필수다.
- 앤 라모트


겉장이 파란 공책 한 권, 연필 두 자루와 연필깎이,
대리석 상판 테이블, 코끝을 간질이는 커피 향,
이른 아침 카페 안팎을 쓸고 닦는 세제 냄새,
그리고 행운. 이것이 내게 필요한 전부였다.
- 헤밍웨이

언제까지 '독자'로 남아 있으렵니까? 언제까지 10대의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기를 기다리렵니까? 아, 이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노트북 전원을 켜십시오. 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미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시군요. 그렇다면 문장 하나를 써보세요. 창작자가 되어보세요. 영감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을 향해 힘껏 달려가세요. 삶에 내재된 우울, 고통, 두려움을 찾아 기쁨과 즐거움, 희망이라는 양념으로 맛깔나게 버무리세요.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뜯고 씹고 맛보세요. 모든 시작은 단 한 줄의 문장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쓰지 않은 한 줄의 문장이 어쩌면 당신을, 우리를 진정한 작가로 만들어 줄지도 모릅니다. 이래도 쓰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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