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의 경쟁과 꿈에 관하여
직장인들이 힘들게 산을 오르는 이유는 '임원'이라는 정상석에 올라 인증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가. 권력과 부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임원 승진. 그들만의 리그에서 경쟁의 동기를 암반수처럼 끓어오르게 하던 때가 있었다. 케바케겠지 하고 넘기던 일들이 기사가 날 정도면 이제는 공통의 문제다.
이 기사는 MZ세대 직장인으로 한정했지만 사회 전반의 조직문화에 어떤 바람이 불어서다.
"리더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아요" "승진하면 저희 국장님처럼 되는 건데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요"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책임은 크고, 자기 시간과 생활이 조직에 얽매여있는 직책자들의 모습이 MZ세대들이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로는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유동적인 감각이 중요해졌는데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조직원들이 많지 않다. 그동안 우리는 '전문성'이라는 가치를 위해 부단히 한 우물만 팠더랬다. 앞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전문성이라는 성벽으로 쌓아올린 '효율성의 시대'는 끝났다고 보는 사회학자도 있다.
게다가 하루 평균 8시간-9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과거엔 더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냈지만 어찌 됐든 하루 24시간을 3등분으로 쪼개면 삼분의 일을 일터에서 보낸다. 8시간을 충전의 시간 즉 수면 시간으로 디폴트 시킨다면 자유시간은 8시간. 일상에 꼭 필요한 식사시간과 통근 등 필수 시간을 빼고 나면 자유시간 5시간 확보도 어렵다. 회식까지 있는 날이라면 그날은 오롯이 회사를 위한 시간이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인생의 절반을 직장에 바치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그러나 '임원'이라는 꿈이 사라진 직장인들에게 정신을 차려보니 '밥벌이'라는 숭고한 목적 하나가 남는데 이마저도 없는 사람이 많으니 감지덕지하며 지내야 하는가. 무모하지만 모험을 떠나야 하느냐의 길목에 서게 된다.
죽어라 쏟아 부은 반 평생과 상무 승진. 주변의 온갖 축하와 줄 서기 말들 속에서 성취의 기쁨을 느낄 겨를은 길지 않다. 얼마 가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등 돌리는 동료들과 성과가 나지 않는다며 잘려 나가는 우리의 선배들. 마치 '퍼스트 펭귄'처럼 벼랑 위로 앞장 세워 보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그나마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수록 탈출 생각이 희망적이다. 직장에 있을 때 제2의 인생을 계획하라는 마케팅 카피만 잘 팔릴 뿐이다.
나는 시머싯몸의 '달과 6펜스'를 생각했다. 달이라니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럴수록 꿈과 세속 그 본질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럽다. '달과 6펜스'의 원래 제목은 '인간의 굴레에 대해' (Of Human Bondage) 였다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달을 동경하기에 바빠 발밑에 떨어진 6펜스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논평한 것을 보고 시머싯 몸이 '달과 6펜스'라고 정했다고 한다. 화가 고갱의 삶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썼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고갱이 그러했듯이 금융업에 종사하던 스트릭랜드는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며 가족들을 버리고 떠난다. 타히티라는 여행지에서 잊지 못할 어떤 감정을 느꼈기 때문인데, 내가 만약 이 남자의 와이프라도 됐다면 중년 남자의 무게가 한 편으로는 안쓰러우면서도 이토록 책임감 없는 모습이라니 하며 욕을 한 사발 했을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자신의 사명이나 당위가 온몸으로 느껴져서 이것 아니고는 살 수 없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행운이다. 사정 모르는 남들은 세상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른 무모함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본인은 그게 너무도 당연한 이치라 누구를 설득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그것이 삶의 당위가 되어버린다면 그냥 해야만 하는 것이 된다.
"아버지는 내가 당신처럼 목수가 되기를 바라셨네. 우리는 오대를 같은 직업으로 이어왔지. 하기야 그게 인생의 지혜일지도 몰라. 다른 곳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고 그저 아버지가 간 길을 밟는 것 말이야. 어렸을 적에 나는 마구 만들던 옆집 딸에게 장가를 들겠다고 했지. 눈이 푸르고 아마색 머리칼을 곱게 땋아 내린 조그만 계집아이였어. 그 애와 결혼했더라면 아마 집안을 아주 깔끔하게 정돈하고 살면서, 나도 가업을 이을 아들 하나쯤 두었을지도 몰라."
그런 강력함이 없는 나 같은 범인들은 세상사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더러는 이 난세를 구원해 줄 영웅을 갈망하기도 하고 더러는 여기저기 기웃대며 영웅 흉내를 내보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가 스트릭랜드라면 고갱이 주목받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만큼 강력한 사명을 찾으러 나서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현실적이다.
변화는 가속도가 붙었다. 변화에 맞서는 방법은 하나, 변하지 않는 나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파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서핑법이라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상황이 변하면 위대성에 대한 평가도 사뭇 달라지게 마련이다. 수상도 그 직을 떠나면 고작 잘난 척하는 말 재주꾼이었던 게 아닌가 여겨질 때가 많고, 장군도 부하를 잃으면 저잣거리의 보잘것없는 얘기 주인공으로 떨어지고 만다. 거기에 비하면 찰스 스트릭랜드의 위대성은 진짜였다"
6펜스는 달의 모양과 같다.
꿈은 간혹 이렇게 혼동하기 쉽다.
'임원 승진'은 6펜스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