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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Jun 10. 2023

선생님의 주먹과 'BEEF'의 상관관계

요즘 사람들의 '분노'에 관하여


딱히 한 가지를 고르지 않아도 네이버 랭킹 뉴스에는 분노로 가득 찬 사건사고 기사들이 넘친다. 아파트의 지침이 바뀌면서 방문증을 요구하는 경비원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하라" 며 떡하니 입구에 주차를 해놓은 입주자부터 또래 여성을 살인한 사이코패스까지 등장했다. 정말이지 다이내믹 코리아다. 어쩌면 선생님이 주먹으로 아이를 때렸다는 기사는 이에 비하면 작은 일인가 싶을 정도다. 상식을 넘어선 분노의 표출이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우리는 지뢰밭을 걷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 경제  "선생님이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초등3학년이 꾹꾹 눌러쓴 글


기사에 따르면 B군은 "지금도 심장이 콩닥콩닥거리고 선생님이 너무 무섭다"며 "우리 반 친구 중에 한 명이라도 영어 시험을 못 보면 아무도 운동장에 못 가게 했는데, 내가 영어를 못해서 나 때문에 친구들이 운동장을 못 가게 돼 너무 미안했다"라고 종이를 꾹꾹 눌러썼다. 선생님의 사정이 어찌 되었든 아동학대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교육청에선 담임을 교체했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 밝혔지만 아이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먹고사는 언론사의 문제도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생존을 위협하는 현대인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기술의 발전이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과 달리 더욱 각박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는 시선도 있다. 어쩌면 근본적인 이유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촘촘한 관계망 속에서 희생양을 찾는 사람들은 기업보다 더 빠르고 손쉽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발맞춰 악플러가 되기도 한다.


나는 영화 조커를 떠올렸다.

영화 <조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도 상당했지만 '조커'가 가진 상징성은 악당을 넘어 분노의 표출에 있다.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을 꿈꾸는 남자다. 하지만 모두가 미쳐가는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맨 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웃긴 거 알려줄까? 뭐가 정말 웃긴 건지? 난 지금까지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X 같은 코미디더라고"


분노란 무엇인가. 학술용어로는 ‘자신의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하거나, 손해를 강요당하거나, 위협을 당하거나 등등 여러 불합리하고 부당한 상황에서 생길 수 있다. 흔한 감정이지만,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정이다 보니 어떤 인간이라도 때로 심한 경우는 분노를 통제하기 힘들다.


심리학계에서 설명하는 분노의 5단계도 있다. 보통사람들의 경우에는 닥친 일에 대한 부인과 저항의 시기를 거처 분노, 타협, 우울감, 납득의 단계를 거치면서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악당은 어떠한가. 살인이나 폭력을 저지르는 범죄 수준의 악당은 대부분 분노의 감정을 숨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태로 내재되어 있던 분노는 게임 캐릭터 게이지가 차듯 차오른다. 사이코패스 같은 정신병을 제외하고는 악감정을 담아두는 상태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비축하는 셈이 된다.


몇몇 유튜버는 심신에 안정을 주는 심호흡법과 명상을 가르치며 돈을 번다. 종교로 귀의하여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성인의 자세를 배우기도 한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부를 불러온다는 '시크릿' 법칙은 미국을 강타했다. 분노와 상충되는 '지나치게 밝음'을 강요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어쩌면 마음속 장롱에 분노라는 감정을 가둬둔다. 그리고 조커 같은 소수의 악당을 넘어 누구나가 될 수 있음을 건드린, 감독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다는 이야기처럼 넷플릭스 시리즈 'BEEF'(성난 사람들)가 탄생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BEEF>


아카데미 '미나리'를 연기했던 '스티븐 연'이 주연을 맡았다. 미국에서도 흥행을 이어가며 아시아계의 반란이라는 헤드라인이 주를 이루었지만 단순히 소수인종의 신선한 영화라고 평가한다면 이렇게나 많은 공감과 갈채를 설명할 길이 없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양극화라고도 표현할 수 없다. 그러기엔 빈부의 양극단인 두 사람의 분노는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도급업자로 나오는 대니는 드라마 초반부터 생활의 팍팍함에 욕을 달고 등장한다. 에이미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사업가로 비칠 수 있으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타인의 사소한 실수에도 쉽게 예민해지면서 화를 감추지 못하는데 스파크는 난폭운전으로 튄다. 후진을 하려던 대니의 차 뒤로 에이미의 차량이 만난다. 에이미는 짜증스럽게 클랙슨을 울리면서 둘은 공포의 레이싱으로 이야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잇단 복수와 납치, 불륜 등의 스토리가 뒤엉키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그들은 서로를 위로한다.


뉴욕타임스의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분노는 나쁘다'는 단순한 도덕적 메시지에서 벗어나 치사하고 멍청하더라도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는 아이디어를 탐구한다고 말했다. 특히 마지막 회 ‘빛의 형상’은 칼 융이 썼던 “깨달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하는 게 아니라 어두움을 의식하면서 온다”의 일부로 이 문장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말했다.(출처: 한겨레, 김은형 기자)


Some people get their kicks, Stompin' on a dream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내치고 꿈을 짓밟아
But I don't let it, let it get me down
하지만 난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아. 좌절하도록 놔두지 않을 거야
'Cause this fine old world. it keeps spinnin' around
왜냐면 오래되었지만 꽤 괜찮은 이 세상은  계속 돌고 있으니까
I've been a puppet, a pauper, a pirate A poet, a pawn and a king
난 꼭두각시이자, 거지, 해적, 시인, 졸병이고, 왕이었지
I've been up and down and over and out
난 계속 오르락내리락했어
And I know one thing
그리고 한 가지를 알게 되었지
Each time I find myself layin' flat on my face
매번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더라도
I pick myself up and get back in the race
난 스스로 일어나 다시 레이스에 뛰어든다는 걸
That's life (that's life) that's life
삶이란 그런 거지  


- 조커 OST '프랭크 시나트라' <That's life>


우리는 얼마나 어두움에 대해 방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나.

팍팍한 삶 때문에. 남들을 보살필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나만 잘살면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원리라서. 가지각색의 사정으로 나의 인간성을 방치하고 있는 동안 나를 설명하는 고급 취향과 고귀한 언어들은 더 이상 나의 삶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색깔을 잃는 순간 쌓아온 명성과 돈은 아무도 설득할 수없는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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