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그림,
누구일까, 자기 자신일까. 좋다. 한참 동안 그림을 쳐다본다. 좋다. 아빠도 수채화 많이 그렸었지. 뭔가 재능 있어 보인다. 한창 젊었을 때의 아빠에게 우리 집 꼬맹이가 지금 보다 훨씬 꼬맹이적에 그린 그림을 긴 세월이 지나서 지금 다시 본다.
책 정리를 하다가 말다가 시간만 쭈욱 흐르고, 지나간 책을 들춰보다가 발견했다. 버리지도 못하고 몽땅 다 간직하려고 했을 것이다. 유한한 길이가 무한한 부피를 흠모하듯이. 네가 그린 그림, 네가 끄적인 낙서를 아빠는 버리지 못한다. 너에겐 할아버지가 생전에 꼭 그러셨듯이. 얼굴에 미소가 번져서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 나는 이렇게 적는다.
그리운 손가락, 그리운 발가락, 그리운 콧등, 그리운 귓볼, 그리운 눈동자, 그리운 이마, 그리운 입술, 그리운 두 뺨, 그리운 너의 머리카락, 그리운 너의 책가방, 그리운 필통, 그리운 운동화, 그리운 공책, 그리운 왼손 글씨, 그리운 밥 먹는 얼굴, 그리운 아이스크림 먹는 얼굴, 그리운 너의 모든 풍경들의 안쪽으로 무언가 쪼록 스민다.
나는 그렇다, 오늘도 여름날 태양과 함께 잘 달렸다. 바로 너처럼 말이야. 나중에 세월이 지나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때가 올 거다. 아빠의 그리움이 얼마나 얼마나 진흙탕처럼 물컹했는지 알게 되고 말고. 그렇고말고.
#니가그린그림
#8월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