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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쓰 Oct 26. 2024

커피 한잔의 수고로움

커피를 마시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은 내 하루에 일과다. 20살 시절에는 이 커피를 도대체 왜 마시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재떨이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꼭 그런 것 같은 텁텁함을 내게 주었다. 그 이후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이따금 친구들이 마시는 커피에 기미상궁처럼 조금씩 마셔보면서 꾸준히 도전했지만 여전히 맞지 않았다. 내게는 그저 딸기스무디가 천국이었고 딸기스무디가 내 생명수였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으면 하루가 허전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로움이 동반된다. 특히 뉴질랜드에 오고 나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도 물론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수고로움을 동반해야 했다. 더운 여름, 수족관에 들어간 물고기가 되어 힘겹게 헤엄쳐서 카페에 도착해야만 했다. 아니면 무거운 눈을 부릅뜨고 배달앱을 켜서 배달료와 한참을 씨름하는 수고로움.


그렇지만 뉴질랜드는 더 많은 수고로움을 동반해야 한다. 한국이야 과장 조금 보태서 말하면 걸어서 열 발자국 이내에 카페가 지천이었고 우리가 어떤 민족인지 말해주는 배달 시스템도 잘되어 있지만,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30-40분의 걸음을 걸어 카페에 도착한다. 흡사 조선시대를 체험하는 기분이다. 아니면 운전을 해서 차로 5분 정도 걸리는 카페에 도착해야 한다. 하지만 그 거리에 있는 카페가 내가 찾는 한국식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줄리 없다. 이곳은 롱블랙의 나라 뉴질랜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 나아져서 메뉴에 '아아'를 탑재는 하고 있지만, 따뜻한 티컵에 한가득 부어서 나온다. 아니면 위스키 잔, 근래에서는 Jar라고 불리는 유리병 잔에 담겨 나온다. 그런데 얼음은 과장 조금 보태면 거의 수정과에 띄워진 '잣'만큼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아닌, 그냥 차가운 커피일 뿐 내게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물론 근래에 차로 15-20분 거리에 한국분이 하시는 카페가 생겼지만, 매번 그렇게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


그래서 집에서 커피를 내려마시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한국에서도 사내 복지이며 가짜커피라고 불리는 회사 커피를 자주 내려마셨다. 그렇지만, 그건 내 손가락 버튼 하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로 무장한커피였다. 회사는 돈이 많으니까 그런 비싼 커피 기계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버튼 하나만 까딱하면 되었던 것을 내가 '내려마셨다고' 감히 표현할 수 없다. 커피 한 잔에는 많은 수고로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우리 집 커피 머신은 오래된 기계라 그라인더와 에스프레소 머신을 따로 쓴다. 그래서 우리 집 커피 머신은 두 번의 수고로움을 요한다. 먼저, 그라인더를 전원에 연결해 원두를 붓고 간다. 이후 수저로 내가 직접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떠서 포터필터라고 불리는 커피 추출용 그릇에 옮긴다. 흡사 밥주걱을 푸는 것처럼 그렇지만 무척 섬세하게 원두를 작은 수저에 퍼서 포터필터에 옮긴다. 다 옮겼다면 이제 템핑이라고 하는 커피 원두를 눌러주는 행위를 한다.


이후 에스프레소 머신에 전원을 켜고 추출을 위해 준비를 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에 물을 붓고 포터필터를 껴서 돌리고 컵을 두고 원두를 추출한다. 거기에 물을 붓고 얼음을 왕창 넣고 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완성된다. 이후 에스프레소 머신과 그라인더 모두를 설거지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처음 해봤을 때는 재밌고 쉬워서 커피 만드는 것이 즐거웠다. 특히 대학생 시절, 제과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 커피 내리는 것을 못해서 '멍청하다.'라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이러한 경험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물론, '멍청하다'라는 소리를 들은 후 나는 제과점 아르바이트를 바로 그만두었다. 이후 카페 아르바이트는 다시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 그간의 세월이 아쉽게도 느껴질 만큼 재밌었다.


그러나 매번 커피를 마실 때마다 이런 수고로움을 동반해야 하니 커피를 마시기 전에 많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커피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머리를 쓴다.

원두를 한 번에 왕창 뽑아놓고 병에 모아두고 냉장 보관했다가 마시는 것이다. 그렇지만, 직접 갓 내린 커피를 이길 수 없다. 그러다가 이제 나와 타협해 인스턴트커피를 마신곤 한다. 에스프레소 추출물을 이길 수는 없지만, 간편하고 인스턴트커피 만에 매력이 있다. 사람들이 왜 인스턴트커피를 사랑하는지, 캡슐 커피를 사랑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머나먼 남쪽 나라에 와서 비로소 커피 한잔의 수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얼죽아'로 아아를 마시는 것이 삶의 낙이고 즐거움이었는데 직접 내리고 보니 깨달은 게 있다. 내가 한국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커피는 바로 '남이 내린 커피', '남이 만든 커피'였던 것이다. 누군가의 노동력과 수고로움이 담긴 한잔의 커피 말이다. 그것을 나의 재화로 간편하게 사서 마실 수 있었고 나는 거기서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이렇게 간편하게 커피를 즐기면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 커피값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는 나의 재화와 능력을 함께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그 속에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자아도취 되어, 현대인의 필수품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나'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늦었지만 머나먼 타국에서 나는 내게 전해졌던 이름 모를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과 손에 감사를 전하며, 오늘도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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