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쓰 Nov 21. 2024

고마워요 임영웅이

임영웅 콘서트 티켓팅날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우리는 이것을 일명 ‘효도 전쟁’이라고 부른다. 그 어떤 티켓팅을 해봐도 임영웅 콘서트만큼이나 치열하고 대기수가 길지는 않다. 또한, 자신의 *본진 콘서트에서 **금손들이 대거 참가하기에 여간 쉽지 않은 싸움이다. 황금손들도 자신의 ***용병을 데리고 참전하는 격.


*본진 :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를 말한다.

**금손 : 티켓팅 잘하는 사람들, 자리를 잘 잡는 사람들을 말한다.

**용병: 함께 티켓팅에 참전해서 자리를 잡아줄 사람들, 주로 지인이나 콘서트 좀 다녀본 사람들이 참가한다. 진짜 돈 주고 고용하기도 함.


-



임영웅씨의 콘서트 티켓팅은 단순히 콘서트를 가냐 못 가냐가 아닌, 효녀가 될 것인가 불효녀가 될 것인가로 갈리는 일이다. 티켓팅에 실패해도, 성공해도 모두 하나 같이 “엄마!!!!!!!!!”를 외친다. 그러니 이토록 치열할 수밖에-


일명 효도 대전에서 성공한 그녀들은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의 등장씬처럼 의기양양해져 컴퓨터 앞을 떠난다. 그리고 엄마에게 효녀 한 효도인증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이를 자랑한다. 모든 이는 이 어려운 것을 해냈다고 손뼉 치며 그를 부러워한다. 세상, 어느 가수의 티켓팅이 이렇게도 장엄한 전투와도 같냐는 말이다.


이 티켓팅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임영웅이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자신의 엄마에게 고마워한다. 자신의 어머니의 본진 티켓팅이 그리 힘들지 않음에 감사한다. 그러니 임영웅이의 콘서트를 가는 엄마들은‘대단한 효녀‘를 두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이는 콘서트로 입증이 되는 격인 것이다. 누가 우리 엄마의 어깨를 올라가게 하고 누가 우리 엄마를 설레게 할 것인지는 바로 나의 마우스 클릭에 달려있으니, 전쟁만큼이나 치열할 수밖에 없다.


*임영웅이: 그냥 ’ 임영웅‘으로 칭하지 않고 엄마들은 모두 ’ 임영웅이‘라고 칭한다. 그래서 ’ 임영웅이‘로 표현하였다.


-


누가 현대 시대에서 ’효‘가 없다고 말했던가? 인터넷에 이리 효녀들이 넘쳐나고 티켓팅만 해도 여기저기 효녀 천지들이다. 주로 아들보다는 딸들이 많이 참가한다. 이러한 티켓팅을 예전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름인 ’프로듀스 101‘을 따서 ’ 효녀듀스 101‘이라고 부르는 이 서바이벌에 애석하게도(?) 나 역시도 참가해야 했다.



나는 엄마가 아닌 우리 사랑하는 작은 이모 은대장을 위한 참전이었다. 나에게는 엄마와도 같은 이모가 둘이나 있다. 정동원이를 사랑하는 우주총동원 큰 이모, 임영웅이를 사랑하는 영웅시대 작은 이모 이렇게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이모의 딸인 언니와 내가 그렇게 덕질을 한건, 이 두 분의 DNA에서 기이한 일이란 것을 미스터트롯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덕질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우주총동원인 큰 이모는 정동원이의 콘서트를 몇 번씩 다녀왔는데, 영웅시대 작은 이모는 임영웅이 콘서트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겐 임영웅이 콘서트 표가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티켓팅 소식이 들리면 일정표에 등록하고, 1시간 전부터 로그인하며 온갖 인증을 거친다. 모든 세팅이 끝이 나면 수능 날의 초조함과 긴장감 보다 더한 압박을 느끼며 티켓 오픈 시간을 기다린다. 정각에 맞추어 클릭해야 한다. 가장 빠르게 먼저 들어간 사람만이 효녀가 될 수 있다. 단 몇 초, 아니 0.0001초로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노련해야 하고 민첩해야 한다. 이번엔 좀 빨랐다. 빨라도 9 만번대다. 9만 번이 뭐가 빠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임영웅이의 콘서트에서는 10만 번 대에 들어와도 선방한 것이다. 10만 번 미만에겐 기회가 없고, 중간에 이미 ‘이 공연은 매진입니다’를 목도하게 된다. 임영웅이의 콘서트 티켓팅은 거진 2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싸움이다.


클릭해서 대기순번을 받았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 자칫 나의 실수로 마우스를 잘못 움직여 대기창이 꺼지기라도 한다면 망하는 것이다. 그때는 진짜 나 자신이 싫어지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이번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들어간 지인 언니에게 *포도알 개수를 묻는다. 지인 언니가 이번엔 고척돔이라서 그런지 자리가 여유롭다고 했다. 나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며 모니터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나 혼자만 티켓팅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은 금물 내 뒤에는 무려 23만 명이 있다. 어느 그룹도 어느 가수의 티켓팅에서 이런 숫자를 본 적이 없다. 오직 임영웅이의 콘서트에서만 가능하다.


*포도알 : 콘서트 좌석 표가 주로 보라색이어서 포도알 같다고 표현한다.


이제 드디어 내 차례다. 간절하고 간절하다. 제발 우리 은대장 콘서트 좀 가게 해달라며 기도해 보지만, 포도알이 한 개도 없다. 간간히 오류로 나오는 좌석들이 있어 희망을 걸고 눌러보지만 *이선좌다. 속상함과 짜증이 올라온다. “도대체 누가 가는 거야 임영웅이 콘서트는?” 하며 속상해하지만, 내 주위 모든 효녀들은 이미 성공한 듯하다. 작년에 성공하고 나니 이번에는 참전하지 않은 효녀들도 많았는데, 어떻게 나는 성공을 단 한번도 하지 못하는지 분에 겹다. 한 번이라도 보내주고 싶은데 아주 많이 속상하다. 수능을 망친 것 보다 더한 기분이다.


*이선좌: 이미 선택한 좌석입니다라는 뜻이다. 나의 둔탁함을 말해준다. 좌석이 떠서 내가 갈 수 있는 줄 알고 눌렀는데 ’ 이선좌‘가 뜨면 너무나도 짜증이 난다. 그럴 거면 왜 보여주는 거야?



-

이번 효도 대전에서도 대패한 나는 절망하고 좌절한다.  “왜!!! 도대체 왜!!!!”하며 좌절한다. 동태눈으로 인터넷을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면 나에겐 없던 임영웅이 콘서트 티켓이 성황이다. 인터넷에서는 티켓값에 웃돈을 얹어서 판매하는 업자들이 판을 친다. 분명 18만 원 대였는데, 중고 장터나 인터넷에서는 33만 원, 50만 원이 되어있다. 임영웅 씨는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 티켓을 신고하는 제도 등 다양한 제도를 시도하지만, 아무래도 저건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간절한 사람들은 저 돈을 내고서라도 효도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유혹은 쉽게 뿌리칠 수 없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괘씸하다. 노래는 임영웅이가 하는데 왜 돈은 지들이 버냐 이 말이다. 정당하게 해야지, 기분이 나빠지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지 못한 건 우리 은대장이 이번에도 임영웅이 콘서트를 못 간다는 것, 내가 보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작은 이모는 “괜찮아~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또 가면 되지~“하는데 그때가 제일 속상하다. 아무래도 임영웅 씨는 콘서트를 나주평야, 한강 유역에서 개최해야 할 것 같다. 본인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한 한 달 정도 콘서트를 해주시면 좋겠다. 고척돔은 임영웅 씨에게 너무 좁다. 왜 우리나라에는 더 큰 공연장이 없는지 통탄스럽다. 진즉에 도쿄돔 같은 큰 공연장을 지어놨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선조 탓을 해야겠다.



이렇게 친절한 콘서트 설명을 본 적이 없다.

이번 콘서트도 실패지만, 그래도 간간히 있을 *취겟팅을 또 노려보아야겠다. 콘서트는 실패했지만, 임영웅이에게 고마운 것은 티켓팅을 통해 모두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어서다.


그리고 임영웅이 덕에 엄마 세대들과 딸들의 세대가 함께 공연을 관람하거나, 공연 문화를 나누는 세대의 소통의 장이 되어주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임영웅이는 콘서트에 간 엄마를 모시러 온 딸들을 위해 대기석 존도 마련해 주고 혼자 간 엄마가 걱정되지 않게 일일이 경호원을 붙여 좌석을 찾아준다.


무엇보다도 전광판도 크게 띄워주고, 차례차례 나가며 엄마들이 다치지 않도록 안전하게 대해준다. 팬들을 정말 존중해 주고 위해주는 임영웅이가 있어 콘서트 장 문화가 더욱 발전하는 듯한 기분이다. 정말 좋은 문화와 많은 시스템들을 도입해주었다. 부디, 오랫동안 건재해주어서 꼭 내 손으로 작은 이모의 콘서트 입성을 이룰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란다.


*취겟팅 : 취소한 콘서트 표를 겟하는 티켓팅을 의미한다.


티켓팅은 실패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임영웅이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며, 시도가 좋았다고 말하며 마음을 나눈다. 오늘은 임영웅이 덕분에 남편과 마음을 나누었다.


남편은 오늘 내 시도가 대 패배였는데도 나의 9만 번 대를 기뻐해주었다.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그의 게임 멤버들에게 내 뒤에 23만 명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주었다. 티켓도 겠하지 못했는데 그런 걸 왜 말하냐고 핀잔처럼 말하니 “왜~ 멋있잖아! 뒤에 23만 명이 있었어!”하고 배시시 웃는다. 그러더니 ‘임영웅 티켓팅 패배자! 그래도 괜찮다!’를 외쳐주었다.


티켓팅은 실패했으나, 이런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을 보니 인생은 실패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임영웅이 덕분에 또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과의 마음을 나눈다. 매번 콘서트는 실패하지만, 언젠가 또 임영웅이의 콘서트를 당당히 보내줄 날을 꿈꾸며… 그래도 고마워요, 임영웅이!!!



작가의 이전글 커피 한잔의 수고로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