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서적 독립, 나의 대변인이자 보호자가 되는 일
나는 '착하고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또한 '멋지고 뭐든 척척 해내는 아내'였다.
게다가 '착하고 말 잘 듣는 며느리'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못되고 은혜 모르는 딸'이 되었다.
또한 '자기주장만 하고, 시어머니 입장 모르는 못된 며느리'였다.
게다가 '별나고 독특한 까다로운 며느리'가 되었다.
이렇게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 것은,
내가 이제까지 정서적 독립이 되어 있지 않아서였다.
내게 중요한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바로 '나'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나의 '의존'하는 습관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의존하여 엄마의 칭찬과 사랑에 의존했듯이,
결혼해서는 남편과 시댁의 평가에 연연하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함으로써 인정과 사랑을 받아 나를 채우고자 했다.
나는 이번 판의 퀘스트를 과감히 깨기로 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내가 되기로 했다.
엄마가 얼마나 서운해하실지,
남편이 얼마나 체면이 안 설지,
시댁이 얼마나 괘씸해할지,
그것을 이해는 하되
먼저 내 마음부터 살피기로 했다.
드디어 내가 '나의 편'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내게 불편한 것은 일단 하지 않기로 하고,
나쁜 아내, 못된 며느리라는 거친 비난에도 지지 않고 저항했다.
넌 네 입장만 얘기하느냐는 볼멘소리에 나는 소리칠 수 있었다.
그럼, 내가 내 입장 얘기하지 누가 내 입장 대신 해 줄 건데?
당신이 내 입장 대신 얘기해 줄 것도 아니잖아?
내가 내 입장 얘기하고 내 편들겠다는데,
그게 왜 이기적인 거야? 당연한 거지!
내가 '내가 여기 있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자,
정말 내가 그 모양으로 그 자리에 생겨났다.
나는 이제 나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인이자,
내 정서를 스스로 돌보는 나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나의 정서를 내가 스스로 돌보고, 달랠 줄 알며,
내 입장을 내 스스로 변호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확고한 '내 입장'이 무엇인지를 알고 지켜냄으로서,
타인도 또한 자신만의 입장이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어디까지 내가 허용할 수 있을지 나의 한계를 명확히 아는 것.
그 과정이 진정한 정서적 어른으로 성장하는 여정이 아닐까.
하지만 깨닫는 데서만 멈추면 여전히 제자리였다.
성숙한 나로 한 발 더 들어서기 위해서는,
나의 깨달음 위에 행동과 변화가 쌓여야 했다.
그제야 비로소 반복은 멈추고, 새로운 시간이 열릴 수 있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새롭게 짓는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을.
일단, 나의 공간과 나의 일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기존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가족들을 돌보는 것으로 가득 차 있던 나의 삶 속에 여백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공간은 '나'로 채워넣기로 했다.
그래서 집 안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히 나만의 머물 수 있는 물리적 공간.
그곳에선 싫어하는 것들을 모두 빼고,
오직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남겨 두었다.
책, 글, 빛, 그리고 숨 쉴 수 있는 여백.
그것이 내 새로운 삶을 지탱할 최소한의 재료였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구상하여 시작했다.
나는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내 이름으로 세상에 첫 발을 내딛었다.
내 손으로 시작하는 낯선 길 위에 섰다.
작은 간판과 명함도 만들었다.
서툴고 미숙했지만, 그것마저 내 손길이 닿은 흔적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불완전하기에 오히려 더 나다웠고,
앞으로 어떤 형태로 자라날지 기대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이 잘 될지 성공적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의 역할들, 가족들로 꽉 찬 삶에서 빠져나와
'나만의 삶'을 가꾸기 시작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미 완성된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타인의 시선이라는 낡은 구조를 허물고,
나만의 새로운 기둥을 세우고,
빛이 들어올 창을 내는 일이 아닐까.
이제 나는 다시 출발선 위에 서 있다.
법적 나이는 마흔셋이지만, 마음은 다시 스물셋으로.
그때처럼 두렵지만 설레고, 낯설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이 선명하다.
내 안에 만든 작은 공간에서,
내 이름으로 낸 사업자 등록증 앞에서,
서툴지만 직접 만든 간판과 명함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긴다.
과거의 것들을 버린 건 아니다.
나의 과거의 그 모든 것들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다만 이제는 그것들이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세운 기둥이 된 것뿐이다.
나는 안다.
독립이란 철저히 혼자가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바로 서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그 힘이 있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기댈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지지대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완성된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자라나는 나무처럼
죽을 때까지 새 순을 틔우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외롭더라도, 자유롭게.
독립된 타인과 의존이 아닌 연대를 하며,
누구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직접 바라보며.
성숙은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자기 삶을 창조할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Maturity is the courage to create one’s life without leaning on others.)
-롤로 메이 (Rollo May), 미국 실존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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