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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만, 자유로운 내 자리

- 나는 누구였을까? 지금은 누구이며, 앞으로 누구이고 싶은가.

by 파랑새의숲


과거의 나 ―

왕년의 환상 속에서


나는 늘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그 이름 뒤에 숨은 건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와 역할이었다.


엄마 곁에선, 말 잘 듣고 엄마의 뜻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 위로가 되는 딸.
남편 곁에선, 든든한 내 편을 찾아 의지하려 했던 아내.
아이 앞에선, 사회적 이름을 내려놓고 “누구 엄마”라는 호칭만으로 불리기를 감내했던 사람.


그 모든 자리는 따뜻해 보였지만,

실상은 나를 지워내는 과정이었다.
나는 늘 누군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거기에 있었다.
엄마가 비운 자리를 대신했고,

남편이 기대는 자리에 눌러앉았다.
그러면서도 내 이름은 점점 희미해졌다.


결혼도, 가족도, 안정도… 사실은 내가 꿈꾸던 것과 달랐다.


나는 “신나는 새로운 나의 삶”을 원했지만,

현실은 양가 가족의 합주 속에 묻혀갔다.
결국 나는 ‘나’로 살지 못한 채,

의존의 다른 얼굴 속에서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과거의 ‘커리어우먼’이었던 나,
홀로일 때 자유롭게 여행 다니던 나,

그 예전 그래도 예쁘고 발랄했던 나.


누구의 제약도 없이 그저

내 몸 하나만 돌보면 되던 시절의 나,
그 ‘왕년의 환상’ 속에 빠져 깨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대고 있었다.


지금의 나 ―

환상에서 깨어나, 다시 묻다


의지와 의존은 다르다.

나는 그 단순한 사실을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엄마도, 남편도, 시어머니도

끝내는 나를 대신 살아줄 수 없었다.

의존 속의 따뜻함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 안도는 곧 간섭과 통제로 바뀌었다.


내 '존재'를 대신하는 도움은,

나를 지워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깊게 인식하고야 말았다.


아무도 내 편에 서주지 않는 순간,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 듯했다.
가슴은 공허했고, 눈앞은 막막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적막한 자리야말로

진정한 나의 자리가 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그곳은 외롭지만, 동시에 자유로웠다.

누구의 목소리도 나 대신 결정을 내려주지 않았고,
누구의 손길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비로소 나는 나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였을까?
지금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앞으로 나는 어떤 내가 되고 싶은가?”


외로움 속에서 찾은 내 자리,

이제 누구로 살아가고 싶은가


그 질문의 답은 선명했다.
내 자리를 스스로 세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

이제는 누구의 딸도, 아내도, 엄마도 아닌,
나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누구에게 동의와 지지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 이유와 근거를 찾을 수 있도록 내 안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


물론 그 길은 달콤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품에 기댔던 익숙한 시간들과 달리,
내 자리 위에 홀로 서는 일은 외롭고 고독했다.

비난이 밀려왔고, 원망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 고독의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흔들릴 때마다 되새겼다.
내가 없는 자리는 언제든 다른 누군가가 차지한다는 걸.

그러니 내가 존재하고 싶은 방식,

그 경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외롭지만 자유로운, 내가 선택한 나의 자리.


나는 과거의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나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

외롭더라도, 힘들더라도, 내 자리에서.


진짜 독립은,

누군가가 내 편에 서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두 발로 서는 데서 시작된다.


외로움은 그 길의 동반자이며,
자유는 그 외로움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책이 아닌 내 삶 속에서 깨달아가고 있었다.


자유란 단순히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될 용기’를 뜻한다.
Freedom is not just the absence of constraints, but the courage to be oneself.

— 롤로 메이 (Rollo May, 실존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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