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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이름의 퀘스트

- 의존 vs. 사랑, 나의 인생의 과제를 비추는 거울

by 파랑새의숲


<엣지 오브 투마로우>라는 영화가 있다.


어느 날, 무심하게 영화를 보다가

이상하게 이 상황 설정자체가

내 삶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구를 쳐들어온 괴생명체들과 싸우는 이야기인데

어째서였을까.


주인공은 타임루프에 갇힌다.

문제를 해결하여 그 상황을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을 때까지,

그는 그 똑같은 '매일'을 살아내야 한다.


마치 한 판을 깨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게임의 한 장면처럼.


끝나지 않는 전쟁터, 결코 끝나지 않는 그 하루.
벗어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렇게 지루하게 계속 반복해서 살아야 하는 '똑같은 오늘'.


혹시 나의 삶도 그렇게 패턴화 되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의심이 들었다.


결국 영화에서도, 나의 삶에서도

그 반복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방식을 바꾸고 다른 선택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와 똑같은 선택을 반복해서는 실패가 분명했다.

나는 또 똑같은 문제를 맞닥뜨릴 내일을 살게 될 것이었다.


나의 결혼이라는 무대가 생각났다.


찬찬히 돌아보니,
낭만 가득한 사랑의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그 안에는 내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숨어 있었다.


‘의존’이라는 오래된 주제는 얼굴만 바꿔 나타났고,
나는 그것을 깨뜨리지 않는 한

나는 같은 오늘을 끝없이 반복하며 살 수도 있다는

깨달음과 두려움이 나를 스쳐갔다.


사랑과 결혼에 대하여


나는 결혼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선택'이라고만 믿어왔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장밋빛 말들을 속삭이며

서로의 손을 잡고 마냥 행복하게만 사는 것이라고.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랑에 빠진 순간조차도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이 작동한 건 아닌가 싶다.


단순히 외모나 취향, 성격 같은 겉모습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오래된 무언가가 서로를 향해 끌려간 것은 아닌가,

무언가 우리 인생의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파트너로

상대를 직감적으로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역시, 나의 직감처럼 많은 심리학자들이

이런 결혼의 속성에 대해 이미 이야기해 왔었다.


보이지 않는 끌림의 법칙


우리는 늘 말한다.
성격이 맞아서, 가치관이 비슷해서, 이끌려서, 함께 있으면 행복해서 그래서 그 사람과 남은 생을 함께 하고 싶어 결혼했다고.


그런데 사실은,
내가 성장하면서 끝내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에게
더 깊이 이끌리는 건 아닌가.


그것이 부모와의 관계였다면, 부모를 닮은 사람.

어떤 특정한 이슈였다면,

그 특정한 이슈를 과거에는 해결하지 못했으나,

다시 한번 해결할 수 있는 그 기회를 마련할 수 있는 상대.


결국은 나를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들 수 있는 어떤 특성,
혹은 내가 감당하지 못했던 그림자를 가진 사람에게
우리는 묘하게 운명적으로 끌려왔던 게 아닐까.


상처가 부르는 되풀이


심리학의 거장,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이
과거의 미해결 과제를 반복하려는 성향,
즉 “반복강박”을 지녔다고 했다.

어쩌면 결혼도 그런 반복이었을지 모른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충족되지 못했던 욕구와 상처를
다시 배우자를 통해 풀어내려는

무의식적 시도라는 반복 강박 말이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의 말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내 안에서 아직 통합되지 못한

어떤 조각을 비추는 거울은 아닐까.


우리들의 배우자는 우리의 존재 뒷면에 존재하는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의 그림자' 같은 존재들인가?


거울 속의 나를 찾아서


가족 치료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머리 보웬은

사람이 결국 자아분화 수준이 비슷한 상대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아분화란' 가족의 정서적 얽힘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다.


결국 결혼은 각자 풀지 못한 정서적 과제를
다시 재현하는 무대가 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다시 자극하면서도,
그 안에서 성장의 과제를 마주하게 되는 건 아닐까.


결핍이 이끄는 사랑


이 외에도 심리치료와 부부상담의 대가,
이마고 관계치료의 창시자 하빌 헨드릭스의 이론도 떠올랐다.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채워지지 못했던 부분,
그 결핍을 닮은 사람에게 이상하게도 끌려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비로소 오래된 상처를 다시 치유할 기회를 얻는다고.


그러고 보면, 결혼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치유의 여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프로이트의 반복강박,
융의 그림자와 투사,
보웬의 자아분화,
헨드릭스의 이마고 이론까지…

이런 수많은 심리학 이론들은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상처를 마주하고, 관계를 통해 성장하며,
그 과정을 지나 정신적 자유에 이르는 길 말이다.


사랑, 진정한 치유의 무대일지도


그렇다면 결혼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제도라기보다는,
내가 풀지 못한 문제를 다시 풀어보라고
주어진 장일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부부가 그 과제를
성숙하게 해결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를 가장 깊이 흔드는 사람,
때로는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를 가장 크게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결혼은
어떤 과제를 비추고 있는 걸까.

내가 만난 그 사람을 통해
나는 어떤 오래된 상처와 다시 마주하게 된 걸까.


그리고 우리는 그 만남을
정말 서로를 성장시키는 치유의 여정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걸까.


결국, 결혼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지만
끝내는 함께 치유라는 여정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
다시 서게 되는 건 아닐까.


사랑은 결핍을 통해 시작되지만, 그 결핍을 치유하는 힘 또한 사랑 속에 있다.
Love begins in our unmet needs, yet within it lies the power to heal them.
— 하빌 헨드릭스 (Harville Hendrix), 『Getting the Love You W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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