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는 오리주물럭

59. 오리주물럭

by 간장밥

오리고기를 샀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주물럭을 할 요량이다.


아내는 임신한 뒤로 입맛이 달라졌다. 죽기 전 마지막 식사로 삼겹살을 꼽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돼지고기도 소고기도 손이 가질 않는단다.


그나마 괜찮다고 한 게 오리고기였다. 빨갛게 볶아낸 오리주물럭.


망설이지 않고 장바구니에 오리고기를 담았다.


평생 처음이었다.



다른 고기는 수도 없이 먹었지만, 오리와는 인연이 뜸했다. 부모님 모두 즐기지 않으셨던 터라 우리집 밥상에 오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삶은 늘 다르게 흐른다. 예상했든 못 했든 상관없이 바뀐다.


평생 사지 않던 오리고기를 임신한 아내를 위해 주저않고 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남편, 이거 내가 생각하던 그 맛이에요. 맛있어요."


아내는 입안 가득 오리고기를 넣고 웃었다.


그래, 돼지든 오리든 상관 없다. 아내가 맛있어 하면 그만이다.



대부분의 아들들이 그렇듯이, 나는 부모님에게 살갑지 못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말과 행동이 번번이 투박했다.


그 탓에 부모님도 참 많이 서운해 하셨더랬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말이라는데, 나는 늘 같은 방식으로만 말했다.


그런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뜻밖에도 브런치였다.



다섯 해 전. 작가가 되고 싶어 시작한 브런치.


먹을거리와 맛집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보니 자연스레 가족이 그 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보여주신 다양한 맛 경험이 하나 하나 글감이 되었고, 그 글들은 부모님의 눈과 가슴에 닿았다.


"응, 아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난 뒤, 부모님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까지 달라졌다.



오리주물럭으로 임신한 아내의 밥상을 차려줄 상상을 못했던 것처럼, 브런치로 우리 가족이 더 돈독해지는 모습은 조금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아직 출간을 하지는 못했다. 따지고 보면, 작가의 꿈은 아직 실현하지 못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제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비할 수 없는 더욱 커다란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늘, 식탁 위 오리주물럭이 유난히 맛깔스러워 보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