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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May 24. 2020

혹시 은행 경비원은 어떻게 하면 시작할 수 있나요?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하루 종일 은행에서 만나는 사람은 어림잡아 100-150명 이상이 된다. 은행은 지점마다 방문하는 손님의 수가 다 다르다. 손님이 많아 하루 종일 바쁜 지점이 있는가 하면 너무 손님이 없어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 곳도 있다. 바쁨과 한가함 사이에 난 딱 중간쯤 위치해있다. 바쁜 날은 엄청나게 바쁘다. 하지만 바쁜 날만 피하면 평소에는 점심시간과 오후 3시 이후를 빼면 그나마 한가한 편이다.      


손님들이 은행에 방문에 나를 부르면 대게는 다 비슷한 용무 때문에 부른다. 그렇기에 그들이 나를 부르면 목소리에서부터 이미 느껴진다. 이분이 나에게 뭘 요구하려고 하는지를 말이다. 그런데 그날도 어김없이 똑같은 일상을 보내던 중 한 손님이 나를 불렀다. 그런데 목소리에서부터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은행에서 한 손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뭐 늘 있는 일이라 또 어떤 일로 나를 부르나 했는데 손님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여느 때와 달랐다.


“혹시 청원경찰(은행 경비원)을 어떻게 하면 시작할 수 있어요?”


나이는 대략 내 엄마와 비슷해 보이는데... 어머님이 은행 경비원을 하실 건 아닌 거 같고 해서 왜 그러냐고 여쭤봤다. 그랬더니 아들 이야기를 하셨다. 아들이 올해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 집에서 백수로 지내고 있다고 하셨다. 딱히 뭘 준비하고 있는 것도 없이 그저 방에서 시간만 때우고 있다고 했다. 이젠 아버지도 정년이 다되셔서 더 이상 아들까지 먹여 살 릴 수 없다고 하셨다. 아마도 아버지와의 마찰도 꽤 심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표정에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원래는 이렇게 의욕도 없지 않았다. 대학도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왔고, 대학생 때는 꿈도 있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고 했다. 미국으로 어학연수도 보내주고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뒷바라지는 다 해줬다. 호텔에서 잠깐 일을 했지만 보수도 적고 서서 일하고 밤낮이 바뀌는 것도 힘들어 그만두고 몇 년 전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줄줄이 낙방한 끝에 지금은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 친구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참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는 아들에게 대학도 어학연수도 보내 줄 수 있었지만 취직을 시켜줄 순 없었던 것이다.


또 한 번은 은행에 매일 오시는 맞은편 편의점 사장님이다. 사장님은 매일 오셔서 동전과 지폐를 바꿔 가신다. 가끔 아침을 거르고 출근하면 잠깐 편의점에 들려 핫도그나 샌드위치를 먹는데 먹으면서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하루는 사장님이 은행 경비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셨다. 위에 어머님과 똑같은 질문이었다. 사장님도 아들이 있는데 올해 서른이 넘었다고 했다. (시작이 똑같다.) 아들이 어려서 드럼을 치는 걸 좋아해 지금까지 음악을 하며 지냈다. 아마도 열심히 하면 유명해 지거나 잘 될 줄 알았던 것 같다. 좋아하니까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장님도 열심히 뒷바라지했을 거다. 하지만 열심히 한다고 노력한다고 모두가 잘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겠는가. 때로는 노력이 우릴 배신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도 나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이제 서른이 넘었다. 음악 한다고 군대도 늦게 갔다. 군대를 다녀온 아들이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음악 그만하고 일을 시작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다가 떠오른 일이 청원경찰(은행 경비원)이라고 했다. 사장님은 나에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뽑아 주시며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난 물론 성심성의껏 답을 해 드렸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두 친구의 이야기가 뭔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리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비정규직이 되었던 걸까? 노력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사실 노력의 기준은 결과에 달려 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나쁘면 그건 노력을 해도 안 한 게 된다. 하지만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도 결과가 좋으면 그건 노력을 한 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이다. 그렇기에 결과만 좋으면 사실 과정은 어떠하든 상관없다. 비정규직을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네가 만든 것도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찬호 작가의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좋은 사회란 ‘대단한 결심이 없이’ 평범하게 살아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때가 되면 다녀야 하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시스템’을 갖춘 것임은 자명하다. 용기 없는 자들,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는 자들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라는 말이다.”


몇 달 뒤 낯익은 손님이 내 팔을 붙잡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자기 아들도 청원경찰(은행 경비원)을 하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이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편의점 사장님도 웃으시면서 “우리 아들도 은행에서 일해~ 괜찮다고 할 만하다고 하더라~ 고마워 삼촌”하시면서 지나가셨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행이다. 비정규직이지만 그래도 내 몫을 해 낼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진 곳이 사회니까.



“당신이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 꿈을 찾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뒤늦은 감정의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당신이 새로운 삶의 찬란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아름다운 내면의 신호탄이다. 당신이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은 남들에게 뒤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매번 새로이 발견할 용기를 잃지 않은 것이다.


정여울 작가의 “월간 정여울”에 한 구절이다. 두 친구 모두 그럼에도 꿈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안주하기보다는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가진 노력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온전히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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