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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May 26. 2020

직업 말고, 사람의 귀천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무슨 일하세요?"


난 이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순간 망설이게 된다. 왜 망설이게 되는지 처음엔 잘 몰랐다. 하지만 몇 번 같은 일이 반복되고 나서야 내가 왜 망설이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비치는 내가 하고 있는 은행 경비원이라는 일이 일로서 딱히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들에게 당당히 '저 은행 경비원 합니다.'라고 손쉽게 말을 꺼낼 수 없는 이유였다. 그 이유를 알고 난 후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자존감이 낮아지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한 번은 독서모임에 나갔다. 서울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만날 사람도 없고, 취미라고 해 봐야 독서가 전부인 나에게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즐겁자고 나간 모임에서 난 또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00 씨는 무슨 일하세요?"

"저는 회사에서 글 쓰는 일해요."

"오 기자신가 보다."

"00 씨는 무슨 일 해요?"

"전 회사 인사팀에서 근무해요."


사람들끼리 나는 무슨 일 한다. 너는 무슨 일하냐 물으며 마치 일하기 배틀을 하듯 그렇게 무슨 일 무슨 일 거렸다. 그 속에서 난 또다시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그 차례가 나에게까지 오지 않길 속으로 빌었다. 사실 그 차례가 오는 게 무서워 그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고 말하고 독서모임을 나왔다. 좋자고 나갔는데 오히려 기분이 더 다운되었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고, 불쌍했다. 왜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거지? 은행 경비원이 뭐 어땠다고, 그게 잘 못된 일인가? 내가 은행 경비원 하는데 그 사람들이 뭐 보태준 거 있나? 그냥 나 스스로 자격지심이 그랬던 것이다. 바보같이... 그리고 한 동안 그 모임을 나가지 않았다. 그럴 거면 그냥 집에서 혼자 책 읽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직업의 귀천이 있을까? 아마도 그 어떤 나라보다 많이 따질 것이다. 흔히 사자 직업이라고 일컫는 직종은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의사, 판사, 변호사, 검사, 교사 등 이런 직종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기에 어릴 적부터 그런 직업을 가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한다. 인생을 갈아 넣을 만큼 노력하여 얻은 직업은 나라는 사람을 대변해 주듯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흔히 블루칼라 계열의 직종은 어떤가. 예를 들어 청소부, 경비원, 공장 인부 등 주로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이 아닌 몸으로 하는 직업들은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직업일 것이다. 그것을 하기 위해 인생을 갈아 넣진 않지만 그 일을 함으로 인생을 갈아 넣게 된다. 그렇다고 경비원이 청소부가 세상에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거리는 쓰레기장이 될 것이고, 안전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왜 우리는 직업을 두고 귀하고 천함을 따질까. 그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들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를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리는 것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들이다. 그 사람의 직업이 검사라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부분이 검사만큼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직업이 청소부라 해서 그 사람의 모든 부분이 청소부보다 대단할지도 모른다. 이 말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사실은 직업에 편견이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수단이다. 그것을 결정짓는 직업은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직업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난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이다. 은행을 지키는 청원경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은행 경비원이다. 은행을 방문하는 고객님들과 은행의 사유재산을 지키는 경비원이다. 경비원이지만 경비보다는 안내를 주로 한다. 고객님들이 어떤 업무를 하러 오셨는지 파악하여 그에 맞는 곳으로 안내해주고 간단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나의 주 업무이다. 그러다 보니 은행에 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맞댈 수밖에 없다. 경비원이기보다는 그냥 안내원이 더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는 고객님들의 시선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은 나도 은행원인 줄 아신다. 여기서 진급을 하면 창구에 앉아 업무를 보신다고 착각하고 계신다. 그런데 대부분은 내가 비정규직이고 경비원인지 알고 있는 눈치이다.


어김없이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보내며 근무를 하고 있던 무렵 한 고객님이 내 앞을 스윽 지나가면서 명찰을 보시곤 한 마디를 던지셨다.


“어?? 곽씨네?? 곽 씨는 양반인데...”


“경비원은 체면에 안 서지... 쯧쯧”


난 순간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혹시 잘 못 들은 건 아닌가? 나보고 한 말인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뒤엉켰다. 그리고 그 고객님 아니 그놈을 다시 봤다. 눈이 마주쳤다. 울화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가서 한 마디 할까? 혹시 그랬다가 싸움이라도 나면 난 비정규직이니까 쉽게 잘릴 텐데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그놈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런 나에게 그놈은 은행을 나가면서 한 마디 돌을 더 던졌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뭐지 저 미친놈은 진짜 가서 머리통을 후려갈겨버릴까. 뭐 저런 썅썅바 같은..... 후,,,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참기가 힘들다. 왜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고,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 참을 생각했다.

체면,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이라는 말이다. 결론은 경비원이라는 일은 떳떳한 일이 아니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천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양반 집안 곽 씨 사람이 천한 일을 하고 있으니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무슨 조선시대냐. (그리고 확실한 건 우리 집안은 양반 집안이 아니다!!!!)


사실 이런 대우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식당이나 편의점 카페 등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원에게 함부로 말하고 욕하고 하대하는 것을 보면 한국은 직업의 귀천이 있는 나라이다. 오죽하면 전화 상담원이 상담 전화를 받기 전에 아기 목소리가 나오면서 ‘지금 전화 상담을 받는 사람은 우리 엄마입니다. 부디 바르고 고운 말을 써주세요.‘ 같이 부탁 어린 말을 하겠는가. 나 같이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은 고객님이 한 마디 하면 그냥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을이기 때문이다. 손님은 왕이니까 왕에게 게기면 목이 잘려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분은 우리를 고용한 고용주들이다. 하지만 그분들 또한 우리의 편이 아닐 때가 많다. 손님을 탓하기보단 우리를 탓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 이 나라에는 직업의 귀천이 존재한다. 학교에서 등수를 매기며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나누고 주공아파트에 사는 아이와는 놀지 말라고 하는 부모와 공부 안 하면 길에서 쓰레기나 치우게 된다고 말하는 엄마들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내 직업의 천한과 귀함은 남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하는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다만, 사람에게는 귀천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을 조심하면 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그냥 더러워서 피하지. 앞으로 똥은 피하는 걸로 하자. 상대할 가치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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