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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Sep 05. 2020

그 많은 동전들은 다 어디서 오는 걸까.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어릴 적 돼지저금통에 돈을 모아 본 일은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해봤을 거다. 저금통이 가득 차면 돼지 잡는 날이라며 아버지가 돼지 저금통 배를 가르고 그 속에 가득 들어 있는 동전과 몇몇 지폐들을 펴서 셈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럴 때면 마치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치킨을 사 먹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난다. 내가 모은 내 돈이지만 마치 공돈이 생긴 것 마냥 기분이 좋은 것은 마치 겨울 잠바 주머니에서 뜻하지 않게 돈을 발견했을 때랑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내가 은행에서 하는 일 중 가장 많이 하는 일은 atm기기 업무일 것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하는 일은 바로 동전 분류하는 작업이다. 신용카드와 스마트 폰이 나온 이후로 사람들은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모든 결제는 카드 하나만 있으면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거스름돈을 받거나 거슬러 주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휴대가 간편하고 가볍다. 그렇기에 굳이 두꺼운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고 그냥 얇은 카드 한 장이면 충분한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시대가 발전했건만 어디서 그렇게 동전들을 모아서 들고 오는지 하루에 기본 50만 원에서 100만 원 넘게 동전이 들어온다. 사실 은행이 동전을 교환해주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돈을 다루는 곳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은행을 이용해 주시는 고객님들께 서비스 차원으로 해드리고 있다. 하지만 가끔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상대할 때면 들고 있는 동전을 모조리 엎어 버리고 싶을 때도 가끔 있다.    

 

처음 지점에 갔을 땐 동전을 들고 오시는 손님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오전 오후 그리고 일주일 내내 동전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양이 너무 많을 때는 30분 동안 동전 분류만 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30분 동안 그걸 붙잡고 있으면 다른 일을 못한다. 공과금 내 달라고 오시는 손님, 계좌이체 도와 달라는 손님, 갑자기 atm기계가 고장 나면 출납계장은 또 나를 찾는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 터지면 동전을 분류하다 멈추고 다른 일을 먼저 보러 뛰어다닌다. 다른 일을 처리하고 와서 동전을 다시 분류한다. 그렇게 금고에는 동전 자루들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보관하기 힘들 때까지 가면 동전이 필요한 업체에다가 현금을 받고 판다.      


동전 분류는 물론 기계가 한다. 하지만 동전을 기계 앞까지 들고 가고 기계에 쏟아붓고, 분류된 동전을 다시 다른 통으로 옮겨 담고, 금액이 얼마인지 확인하고 그 금액을 은행원에게 알려주면 금액만큼 계좌로 입금해준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그냥 현금으로 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현금으로 드리는 건 안된다고 말씀하시면 왜 안 되냐고 소리를 지르신다. 사실 현금으로 줘도 상관없다. 별 일이 없다면 말이다.     


은행 첫 근무 날 동전 분류를 하고 고객님께 나온 금액만큼 현금을 드렸다. 그런데 나중에 전화가 와서는 자신이 집에서 손으로 세고 확인한 금액이랑 맞지 않다며 민원을 넣으셨다. 분명 가져갈 땐 알겠다 하고 가져갔는데 나중에 말을 바꾼 것이었다. 현금으로 내어드리면 얼마를 줬는지 증거가 남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차액만큼 부지점장님이 계좌로 송금해 드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무조건 계좌로 송금하게끔 바꿨다. 내가 실수했을 수도 있지만 고객님이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꼭 얼마를 받아 가셨는지 증거를 남기기 위해 계좌이체를 해야 한다. 이런 사정이 있다는 걸 일일이 설명을 드려도 어르신들은 그냥 당장 써야 한다고 현금으로 달라고 생떼를 쓴다. 가끔은 욕을 퍼붓기도 하신다. 사정이 이러면 그냥 내 드리는 수밖에 없다. 대신 얼마를 받아 가셨는지 꼭 써 둔다. 혹시나 나중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사실 그냥 주는 대로 받아 가신다. 적어도 뒤에서 말은 하지 않으신다.     



동전을 들고 오는 사람들 또한 다양하다. 이사를 가기 전에 집에 있던 동전을 싹싹 긁어모아 왔다는 사람도 있고, 회사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가져오신 분도 있고, 어디서 굴러 다니다 왔는지 출처도 알 수 있는 동전들을 들고 오시는 분도 있다. 그 동전들을 보면 가끔은 머리카락이 엉켜 붙어 있는 것도 있고, 알 수 없는 찐득찐득한 것들이 서로 엉켜 붙어 손으로 일일이 때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도 있다. 어쩔 때는 못이나 압정 같은 것들이 같이 들어 있어 손이 다칠 뻔 한적도 있었다. 단추나 쿠폰 같은 것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지만 매번 고무줄이 녹아서 동전들끼리 달라붙어 있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왜 항상 고무줄은 녹아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왜 고무줄은 동전들과 함께 있는 걸까.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가끔 동전들을 보면 이게 동전인지 그냥 쇠덩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이게 과연 돈인가 그냥 쓰레기 인가 정체성이 혼란이 올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 하나하나 일일이 다 잡아내면 아마도 난 하루 종일 동전만 만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가끔 집에서 동전을 직접 세고 오시는 분들 중에 꼭 열 개씩 동전을 테이프로 말아서 들고 오시는 분도 있었다. 아무리 손으로 세고 왔어도 다시 기계로 세야 하기 때문에 붙어 있는 테이프들을 일일이 때야 한다. 그럴 때면 그냥 손님보고 다 때라고 한다. 이런 것 마저 우리가 하고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은행원들도 동전을 들고 오는 손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실적에 관련 없는 일이기도 하고, 동전을 세면 아무래도 엄청 시끄럽다. 동전들끼리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소음이 심하다. 그래서 누군가 전화 통화를 하면 기계를 잠시 멈춰야 한다. 시끄러워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해가 거듭할수록 동전받는 시간을 줄였다. 처음에는 오전에만 했다가 마지막에는 아예 화요일, 수요일 오전에만 받는다고 공지를 붙여 뒀다. 그나마 좀 편해졌지만 이런 은행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어하는 손님들에게는 왜 그런지 설명을 해줘 봤자 돌아오는 건 욕밖에 없다. 그 욕은 다 내가 먹어야 하는 것들이다. 그냥 조용히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꼭 딴지를 걸고 해 달라고 때 쓰는 사람들이 있다. 무거운 동전을 기꺼이 들고 왔는데 안 된다고 쫓겨나면 또다시 그 무거운 동전을 들고 돌아가기가 짜증 나고 싫은 것이다. 마음은 이해 하지만 그 무거운 동전을 넘겨받는 내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이건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이잖아! “라고 말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동전 분류하는 일도 은행 경비원이 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어쨌든 동전도 돈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동전을 오후 늦게 들고 오신 손님이 있었다. 분명히 은행 문 앞에 대문짝 만하게 오전에만 동전 입금이 가능하다고 써 붙여 놨음에도 거들떠보지 않고 그냥 은행 문을 박차고 들어 와서는 동전을 바꿔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오전 12시까지만 받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전에는 해줬으면서 왜 지금은 오전이냐며 화를 내시며 안 바꿔 주면 동전 다 엎어 버리겠다고 하셨다. 가끔 아니 자주 그런 사람들이 있다. 큰 소리 내면 다 들어주겠지 손님이 해달라고 하면 다 해줘야지 하는 왕대접을 받길 원하는 사람들 말이다. 사실 귀찮고 욕먹기 싫으면 그냥 해 주면 그만이다. 사실 그럴 때도 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나도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쳤다. 그래서 그냥 엎으라고 했다. 물론 동전을 엎진 않았지만 손님은 나를 상대로 민원을 넣었고, 난 부지점장님께 엄청 혼이 났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 앉으면 안 됩니다.' 하고 써 놨는 걸 보고도 앉는 사람, '금연구역'이라고 떡하니 써놨음에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과연 저 사람들 뇌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나도 자주 그런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가 있다. 문 앞에 ‘당기시오.’라고 쓰여 있음에도 당당히 밀고 들어갈 때면 말이다. 



은행 문을 닫고 나면 하루 종일 들어온 동전들을 분류 별로 따로 묶거나 양이 많으면 포대에 따로 담아 둔다. 이 일도 원래는 은행원들이 했다고 한다. 과장님은 예전에는 이런 동전들 다 자기가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이런 기계도 없었다고 하시며 지금은 좋아진 거라고 하셨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생긴 신조어가 있다. latte is horse 라떼는 말이야... 그나저나 원래는 은행원이 했다는데 이걸 언제부터 은행 경비원들이 하게 된 걸까. 잘 모르지만 일단은 시키니까 열심히 했다.     


동전은 돈이지만 지폐와 달리 쇠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모이면 엄청나게 무겁다. 동전이 많이 들어오는 날에는 그 무거운 동전들을 하나하나 들고 옮기고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동전들을 다 분류하고 나면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은행에 처음 들어왔을 땐 동전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기계를 다루는 법도 잘 몰랐고, 아무튼 모든 면에서 다 서툴렀기 때문에 느리고 더뎌 항상 집에 늦게 갔다. 하지만 이 짓도 1년 2년 동안 하다 보니 이제는 누구보다 빠르게 하게 되어 금방 하고 금방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은행을 그만두고 난 후 집에 동전 몇 개가 집에 굴러다닌다. 어디다 쓰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버리기엔 돈이기 때문에 또 아까워서 적당히 모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현금도 잘 쓰지 않는데 저 동전들은 어디서 굴러들어 온 걸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나중에 적당히 모이면 은행에 가서 바꿔 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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