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읗 Sep 09. 2020

그깟 봉투 때문에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은 일 년 중 은행이 가장 바쁜 날이다. 명절 기간에 은행이 바쁜 이유는 모두가 다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새 돈” 때문이다. 특히 추석보단 설 날이 더 바쁘다. 추석보단 설이 명절로 치면 더 비중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처음 은행에 들어와서 맞이한 명절을 생각하면 아니 생각도 하기 싫다. 정말 죽을 뻔했으니까. 일단 내가 다니던 은행의 특징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오신다. 이것만 들어도 딱 감이 올 거다. 보통 용돈을 주는 주체는 어른들이다. 그리고 꼭 돈은 빳빳한 새 것 이어야만 한다. 빳빳한 새 돈 만 원과 꾸깃꾸깃한 만 원 중 뭐가 더 값이 나가는 것일까? 뭔 개소린가 싶을 거다. 가치는 헌 거든 새 거든 똑같다. 나라는 인간이 씻지 못해 더럽다고 내가 아닌 게 아닌 거처럼 말이다. (물론 더러운 것보다 깨끗한 게 더 좋지만 말이다.) 하지만 명절에는 모두가 새 것을 원한다. 왜 그런 걸까 싶어 물어보면 그래도 이왕이면 헌 돈보다 새 돈을 주는 게 받는 사람이 기분이 좋지 않냐고 한다. 그래서 난 그랬다. 만약 나 같으면 새 돈 만 원 보다 헌 돈 오만 원을 받겠다고 말이다.     


새 돈은 지점마다 가지고 있는 수량이 정해져 있을 거다. 이거도 아마 한국은행에다가 주문을 해서 받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새 돈도 다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돈을 만드는데 드는 종이 값이며 잉크 값 그리고 노동력 등 새 돈을 찍어 내는 것 자체가 다 돈이 드는 거라 어쩌면 새 돈을 바꾸는 것도 돈을 내고 바꿔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새 돈을 찾는다. 찾는 사람이 많다고 모든 사람에게 다 드릴 수가 없다. 수량은 정해 져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명절이 되기 전이면 ‘새 돈 전쟁’을 돌입하기 위해 준비한다. 은행은 전쟁을 참 많이 치르는 것 같다.      





1인당 천 원 오천 원 만 원 오 만원 권종 별로 받을 수 있는 수량과 금액을 정해 둔다. 그래서 딱 그 수량만큼만 지급한다는 공지를 또 지점 문 앞에 붙여 둔다. 하지만 이 또한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순순히 따르면 우리 손님들이 아니지 않은가. 그동안 봐온 우리 손님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 갖고 보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투사들이 아닌가. 전쟁에서 패하는 쪽은 늘 은행이었다. 손님은 왕이니까.     

특히 오만 원권과 만 원권이 인기가 많다. 그에 비해 수량은 가장 적다. 그래서 늘 손님들은 은행원들에게 늘 항의한다.     


“만 원권 20만 원어치 새 돈으로 바꿔줘요.”

“손님 죄송하지만 만 원권은 한 사람 당 10만 원 밖에 못 드리고 있어요.”

“난 20만 원이 필요한데?”

“죄송합니다. 손님 하지만 수량이 부족...”

“부족하면 찍어 와야지!! 손님이 달라는데 뭔 말이 많아!!! 지점장 어딨어!!!”     


지점장님이 나온다고 해서 없는 만 원권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 손님이 거래를 많이 하시는 손님이라면 아마도 좀 더 챙겨줬을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손님이면 그냥 돌려보내거나 정 안되면 경찰을 부르기도 한다. 객장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이유로 말이다.     


설날이면 새 돈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은 명절용 돈 봉투를 준다. 이 봉투 또한 수량이 많지 않다. 200매 정도 받았던 것 같다. 그냥 은행에서 나오는 봉투와는 많이 다른 봉투이다. 알록달록 무늬가 그려져 있고, 문구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적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으신다. 물론 이것도 1인당 3매까지 밖에 받아가지 못한다. 보통은 은행 창구에서 받아가는 걸로 돼있지만 나와 친한 손님들은 나에게 와서 조금씩 더 달라고 부탁을 한다. 물론 난 안된다고 말하지만 매번 그렇게 거절만 하고 있으려니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딱 한 분에게 몰래 봉투를 드리다가 결국 다른 손님이 그걸 발견하고 왜 자신에게는 더 주지 않냐고 항의를 했다.     


뭐 대충 이런 봉투인데... 참고로 난 대구은행은 아님...


“저기요. 1인당 3 매라면서요. 근데 왜 저 사람한테는 2개 더 주고 저는 안 줘요?”

“아... 저 그게 저... 그게 아니라.”

“지금 사람 간 보시는 거예요? 사람 봐가면서 이 사람은 주고 저 사람은 안 주고 뭐 그런 거예요? 지금 사람 차별하시는 거예요? 여기 그런 곳이에요? 아니 뭐 일을 이따위로 해!!”

“죄송합니다.”     


난 할 말이 없었다. 분명 내가 잘못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2장을 더 받으신 손님은 자신은 이미 해야 할 미션을 다 수행했기 때문에 자리를 뜨고 없었다. 순간 그 손님이 너무 야속했다. 손님들은 밀어닥치는데 난 고작 돈 봉투 2장 더 줬다고 졸지에 사람을 간 보고 차별하는 안하무인 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마치 내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이 손님은 점점 나를 더 쏘아붙였고, 난 순간 내가 이런 말까지 들을 만큼 잘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남은 봉투를 다 그 손님께 드렸다.     


“정 원하시면 그냥 다 가져가세요.”

“아니 이봐요. 지금 내가 이깟 봉투 몇 장 더 얻으려고 이러는 걸로 보여요??”
“제가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죠. 그럼 제가 뭐 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뭐 잘했다고 말대꾸야!!!”


사실 나도 참다가 한계가 왔다. 안 그래도 바쁘고 힘든데 손님들은 더 밀어닥치고 여기저기서 나를 부르는데 고작 봉투 때문에 이렇게 욕을 처먹고 있는 상황이 짜증 나고 그냥 다 싫었다. 일이 더 커지자 뒤에서 지켜보시던 부지점장님께서 나오셔서 결국 중재를 했지만 그 손님은 결국 나를 상대로 민원을 넣었다. 난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깟 봉투가 뭐라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난 왜 그깟 봉투로 예민하게 군 걸까. 이 모든 게 봉투를 더 달라고 한 그 손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원망스러웠다가 봉투 2장을 더 준 나를 원망했다가 다시 그깟 봉투 안 줬다고 뭐라고 한 그 손님이 또 원망스러웠다. 그냥 세상이 다 원망스러웠다. 이대론 일을 못할 거 같아 잠시 옥상으로 올라왔다.


화를 내신 손님이 가고 남은 봉투들을 다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말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졌다. 인간들은 왜 그 모양일까. 인간들은 왜 이따위일까. 정말 서비스업은 대한민국에선 해서는 안 되는 직업이라는 걸 느꼈다. 어떻게 인간들이 이토록 이기적일 수가 있을까. 난 은행에서 인간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자주 목격한다. 화가 나면 참지 않는다. 욕이란 욕은 다 해놓고 나중에 손에 커피나 바카스 같은 것을 들고 찾아온다. 아까는 미안했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건 진짜 상대에게 미안해서 하는 사과가 아니다. 그냥 그런 행동을 한 자신이 민망하고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렇게 우여곡절이 가득했던 명절이 지나고 나면 은행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 손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기 사람 차별하는 곳이에요?’ 그때 왜 이 말을 못 했을까. 은행은 사람을 돈으로 차별하는 곳이 맞다고 말이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거처럼 굴던 은행원들도 막상 계좌를 조회하고 돈이 없는 걸 알면 그 태도를 싹 바꾸는 건 언제나 볼 수 있는 태도임을 말이다. 그렇다고 그게 잘못된 것이냐고 물으면 꼭 그렇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어쨌든 은행은 그런 곳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게 당연한 거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일어난다. 아마도 그 손님이 화가 난 이유는 봉투를 더 받지 못한 게 아니라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이유이거나 공평하게 나눠 준다 해놓고 그렇지 못했던 것이 화가 났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한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었다. 비록 그게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 일이 어떤 이에게는 큰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뒤로 그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은행에서 처음 뵌 분이었다. 아마도 거래는 하지만 지점에는 오지 않는 분인데 명절이라 들리신 것 같다. 만약 낯이 익고 친한 사이라면 그분도 나에게 와서 화를 내기 전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삼촌 저도 2장 더 주면 안 돼요?”

이전 14화 은행은 새해가 되면 '달력 전쟁'을 준비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