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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Sep 14. 2020

계약직은 볼펜과 같은 소모품에 불과하다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은행에는 나 말고도 비정규직이 두 명 더 있다. 한 명은 바로 청소하는 이모님이고, 다른 한 명은 서류 정리하는 파트타이머이다. 사실 파트타이머는 다른 지점에는 없는 곳도 많은데 내가 일하던 곳은 꼭 고용해서 썼다. 처음 지점에 일하러 갔을 땐 젊고 예쁜 직원이 있었다. 나이도 어렸고, 상당히 예뻤다. 하지만 그만큼 친절하진 않았다. 늘 표정은 굳어있었고, 차가웠다. 그래도 일은 잘했다. 지점에서 오래 일해 왔는지 은행원들과는 잘 지냈지만 왠지 나에게는 참 차가웠던 것 같다. 왜 그런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녀는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되고부터 일을 나오지 않았다. 무단으로 결근을 10번 해서 결국 지점에서 그녀를 해고했다. 뭐 사정이야 어떤지 몰라도 그렇게 무단으로 나오지 않는 건 잘못된 것이다. 새로 오신 부지점장님은 처음 지점에 왔는데 직원이 무단결근을 밥 먹듯이 하니 다음 직원은 무조건 성실한 사람이 오길 원했다. 그래서 새로 뽑은 직원은 정말 성실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으로 뽑았다. 그녀는 30대 후반으로 키가 작았고, 안경을 썼으며, 왜소한 체격에 늘 힘이 없어 보였다. 아직 미혼이었고, 서울에 친구와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오고 첫 회식을 가졌다. 그녀는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며 술을 마시지 않았다. 부지점장님은 그런 그녀가 아마도 그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그녀는 회식 자리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에 비해 부지점장님과 지점장님은 술을 아주 좋아하는 분들이었다. 나도 술은 어느 정도 좋아해 두 분이 그녀보다 나를 더 좋아하셨다. 그렇게 첫 회식에서 그녀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일찍 귀가했다.     





그녀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처음 일을 배울 때 전임자가 없어서 은행원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그녀는 늘 노트를 들고 다녔다. 그 속에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파트타이머는 나와 교대로 밥을 먹는다. 내가 밥을 먹으러 가면 나 대신 그녀가 1시간 동안 대신 손님을 안내했다. 그리고 내가 오면 그 뒤에 밥을 먹으러 간다. 그때마다 나의 책상에는 그녀의 노트가 올려져 있어서 가끔 거기 적힌 것들이 보일 때가 있다. 그 노트를 보니 군대에서 일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외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라 이병 때는 늘 노트를 들고 다녀야 했다. 그녀는 마치 이등병처럼 일했고, 행동했다. 노트만 보면 속으로 ‘와 진짜 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저런 것까지 적어 두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녀가 꼼꼼한 거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것보다는 그냥 일을 못 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조금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긴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괜찮았다. 그런 면에선 부지점장님이나 은행원들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은행원들의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 한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일을 못 하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그게 너무 과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나도 그건 느끼고 있었던 게, 내가 해야 할 일도 가끔 그녀가 자신이 하겠다고 나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고맙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라 괜찮다고 한다. 사실 조금 부담스러웠던 것도 있었다. 문제는 자기가 할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 은행으로 걸려 온 전화를 담당 은행원에게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자신은 은행원이 아니기 때문에 은행업무와 관련된 문의는 은행원에게 연결만 시켜주면 되는 일인데 그걸 자꾸 자신이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 손님이 화를 낸 적도 있었다. 이것뿐 만이 아니라 이미 일 한지 3개월이 지났음에도 그녀의 손에는 늘 그 노트가 들려 있었다. 3개월 정도면 이미 일을 숙지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일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물론 처음 하는 일이면 어려울 순 있다. 용어들도 새롭고, 서류들도 다 새롭고, 종류도 많아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도 알아야 하고 분류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개월이란 시간이면 사실 다 익히고도 남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간 동안에도 일을 숙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점점 은행원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심지어 지점에서 가장 평정심이 강하다고 생각되는 과장님까지도 그녀에게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심지어 둘은 동갑내기였다.




회식을 자주 했다.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당시에는 은행원들과 잘 지냈기 때문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회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이곳에 소속된 한 사람으로 인정해 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빼지 않고 참석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녀는 또 회식 자리에 오지 않았다. 물론 회식을 참여하는 건 본인 자유지만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와 더욱 어울리기 힘들어했다. 결국 회식 자리에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녀를 험담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부지점장님은 옆에서 그녀가 전화받는 목소리마저 싫다고 했으니 이미 그녀의 재계약은 물 건너갔던 것이다. 사실 나 또한 그녀에 대한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험담에 나 또한 동참했다. 1년 뒤에 나도 그녀와 같은 처지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6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하기에 6개월 만에 회사에서 나가게 되었다. 난 그런 그녀를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은행에 나보다 약한 사람이 있구나.’ 나보다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그녀나 나나 똑같은 비정규직이었지만 난 인정받는 대신에 그녀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에 내가 그녀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있었던 것 같다. 막상 내가 회사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당시 그녀가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나라는 인간은 이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떠나던 날 마지막으로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부족해서 늘 폐가 되어 죄송했다고 말이다. 떠나는 날까지 그녀 다웠다. 사실 난 그런 그녀의 태도가 싫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늘 의기소침해 있는, 자신감이 없는, 소극적인 그런 태도 말이다. 왜 그녀는 잘려나가는 마당에도 그런 속 없는 말을 했을까.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게 아니었을까? 늘 그렇게 외면받고 소외받아왔던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녀를 통해 나를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언젠가 그녀처럼 버림받고 외면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서 그녀의 호의에도 살가운 인사도 부담으로 느껴 버렸던 게 아니었을까?     





웃긴 건 비정규직은 일을 못 하면 교체하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사실 정규직으로 채용된 은행원이 일을 못 한다고 잘리는 일은 결코 없다. 새로 온 신입 은행원이 유독 일을 못 해 6개월이 지나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항상 얼어있어 실수를 연발해도 그녀는 계속 일을 할 수 있다. 노조가 있어서 쉽게 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나 나나 비정규직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자르고 새로운 직원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다른 신경 쓸 일도 많은데 이런 것 까지 신경을 써야 하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들어오기도 쉬운 만큼 나가기도 쉽다. 마치 볼펜을 쓰다가 볼펜이 나오지 않으면 새로운 걸로 바꿔 쓰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녀도 볼펜 같은 소모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가 회사에서 잘리게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 후로 은행원들이 나를 조금씩 피하는 걸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애써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때 유일하게 나에게 위로를 건넨 사람은 바로 새로 온 파트타이머 직원이었다. 그분은 나에게 힘내라며 스타벅스 카드를 쥐어 주시며 이렇게 말했다.

“희재 씨 그래도 힘내요. 앞으로 글 쓰실 때 카페 가시면 도움되라고 작지만 조금 넣었어요.
꼭 글 열심히 써서 나중에 작가 되면 연락 주세요. 책 한 권 살게요.
사인해주셔야 해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왜 떠나던 그녀에게 이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걸까? 왜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던 걸까? 아마도 나라는 인간이 가진 마음의 크기가 딱 이 정도밖에 되지 못했던 것이다.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일을 못 한다고 그녀를 무시했던 걸, 떠나는 그녀에게 힘내라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걸, 은근히 그녀를 보며 위안을 삼았던 걸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 내가 참 별로였다. 그녀가 어디를 가던 더 이상 소외받지 않고 외면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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