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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Sep 28. 2020

은행 경비원은 할 일없이 그냥 서 있기만 한다고요?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한 달 중 가장 바쁜 날은 20일과 25일이다. 20일은 기초생활 수급자 수급 일이고, 25일은 노령연금 수급 일이다. 두 날이 가장 바쁘다는 말은 그만큼 노인과 기초생활 수급자 분들이 은행을 많이 찾아오신다는 말이다. 특히 25일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은행으로 총출동하는 날이다. 돈이 입금되었으니 그동안 돈이 없어서 입금하지 못한 공과금이나 월세를 그날 다 처리한다. 물론 그 모든 일은 모두 나의 일이다. 만약에 25일이 명절이 끼어 있는 주에 있거나 연초라면 특히나 더더욱 바쁘다. 온갖 손님들의 요구에 몸이 두 개 아니 세 개 되어도 부족할 때가 많다. 여기저기서 손님들이 부르는 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저기요.”

“아저씨.”

“삼촌.”

“총각.”

“어이.”     


이렇듯 나는 여러 가지로 불린다. 사람들은 내가 바쁜 건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이 봐야 할 일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에 앞사람의 일을 하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를 불러 세워 내 것도 좀 해 달라고 떼를 쓴다. 그럴 때면 짜증이 치밀어 오르지만 그렇다고 짜증을 낼 순 없으니 정중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외친다.     


경제적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노인들은 나라에서 주는 노령연금으로만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비중은 꽤 높은 걸로 알고 있다. 2019년 상반기 (6월 말 기준,), 389만 8천 명의 국민이 노령연금의 혜택을 받았으며 그 금액은 9조 2천4백억 원에 달한다. 한 달에 받는 노령연금 액수는 대략 20만 원부터 많게는 80-90만 원을 받기도 한다. (물론 기준마다 다 다르다) 이걸로 한 달 동안 밥을 해 먹고,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낸다. 행여나 몸이라도 아프면 그마저도 모자라 그냥 참는다고 말하는 분도 봤다. 이가 아파 치과를 가야 하지만 돈이 없어서 아파도 그냥 참는다고 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면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가난에 대해선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직접 그 상황에 되어야지만 느낄 수 있는 고통일 것이다.     


7,8,9월은 재산세, 부가세, 주민세를 내는 달이다. 특히 9월은 명절이 끼어 있고, 재산세를 납부하는 기간이라 더할 나위 없이 바쁘다. 재산세는 자동차세 주민세에 비해 한 사람이 가진 재산이 많기도 하고 배우자와 자녀 들 거까지 들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 납부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동차는 없어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지만 집은 없으면 살 수가 없으니 누구나 재산세는 있기 마련이다. 만약 명절이 9월 25일에 끼어 있으면 그날은 거의 사망하는 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딱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은행에 들어가고 첫 명절을 보내는 주간이었는데 그날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침부터 손님들이 득달같이 달라 들었다. 노령연금을 찾으러 온 손님부터 시작해, 동전 바꿔 달라는 손님, 지폐 바꿔 달라는 손님, 공과금에 재산세를 내달라고 하는 손님들까지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러다 ATM기기가 고장이라도 나면 기계실에 들어가 기계를 고쳐야 한다. 다양한 요구들이 이어진다. ATM기기는 자주 카드와 통장을 먹는다. 사실 먹는다는 표현은 기계가 오류가 나서 기계 뒤쪽으로 넘어갈 때를 말하지만 사실 그런 경우보다는 카드와 통장이 기계에서 나오면 얼른 빼가야 하지만 딴짓을 한다고 시간이 지체되면 기계는 다시 안쪽으로 카드나 통장을 집어넣게 되어있다. 분실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면 안 그래도 바쁜데 그런 것까지 찾아줘야 한다.     



25일이 공휴일이라면 25일이 되기 전에 노령연금이 입금된다. 만약 25일이 공휴일이고 그게 명절이라 기초생활 수급자가 나오는 20일과 겹치게 된다면 두 가지의 유형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린다. 거기다 9월이면 재산세를 납부하는 사람 플러스 명절이 있으면 은행은 폭발한다. 2018년 9월 20, 21일은 죽음의 날이었다. 목요일과 금요일이었는데 그때 추석이 아마 달력으로 확인해 본바 23, 24, 25, 26(대체 휴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위 사항들이 모두 겹쳤던  것이다. 거기다 일을 시작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첫 명절을 보내는 터라 여러 가지 사항들이 한꺼번에 겹치니 많은 사람들을 응대하는 데 능력이 부족했다. 특히 20일 목요일은 만보기를 재봤다면 아마 3만 보 이상은 나왔을 거 같다. 9시에 은행 문을 열고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은 서 있었고, 은행 안에 있는 시간보다 ATM실에 있었던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공과금 기계가 총 두 대인데 두 대 다 줄이 쭉 늘어서서 은행 문밖까지 이어졌었다. 정신없이 두 대를 왔다 갔다 하며 주민세, 재산세, 공과금을 내주고 있었다. 그러다 한 할아버지께서 재산세를 내러 오셨다. 본인 명의로 된 재산세는 따로 용지가 없어도 조회하면 바로 뜬다. 그래서 들고 온 용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실수로 용지에 나온 재산세가 아닌 것까지 모두 결제를 해버렸다. 세금은 한 번 돈을 내면 다시 무를 수가 없다. 근데 어차피 내야 할 돈이기도 해서 그냥 이것도 내셔야 하는 거라고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다시 돈 꺼내 오라고 하셨다.     


“뭐야 이거 왜 돈이 안 맞아. 내가 이것만 내라고 했잖아 왜 엉뚱한 것까지 내고 지랄이야!!”

“아... 고객님 근데 이것도 어차피 내셔야 해요.”

“뭐??!! 야!!! 내가 언제 그것까지 내라고 했어?? 어?? 빨리 돈 도로 내놔!!!”

“아.... 고객님 이거 한 번 내면 다시 무를 수가 없어요...”     


그 뒤로 할아버지의 욕설과 고함과 멸시가 이어졌다. 할아버지 뒤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줄이 있었고, ATM기기에선 손님들이 ‘이게 안 된다.’ 저게 안 된다.‘하며 나를 찾았고, 객장 안에서는 번호표 기계가 고장 났다며 은행원이 나를 부르고, 동전을 한 무더기 들고 온 손님은 아수라장이 된 은행을 보고도 자신의 일은 꼭 해야 한다는 신념이 가득 찬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그것도 은행이 떠나갈 만큼 아주 크게     


“죄송합니다!!!!!!!!!!!!!!!”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냥 목소리 크기로 나의 진심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내 실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할아버지는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순 없었다. 담장자인 출납계장도 사실 정신이 없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결국 할아버지는 욕을 하며 돌아갔고, 난 그 후로도 계속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땐 정말 힘들었다는 게 지금까지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큰 소리로 죄송하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일이 끝나고 내일도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다. 이렇게 명절에 개고생을 하지만 내가 받는 돈은 최저시급이었다. 물론 명절엔 약간에 보너스가 있지만 그래 봐야 15만 원 정도다. 은행원들은 얼마를 받는진 모르지만 아마 나보단 훨씬 많이 받을 것이다. 이것도 은행마다 다 다르다. 어떤 은행은 명절에 40만 원 받는 곳도 있고, 아예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곳도 있다. 진짜 명절만큼은 돈을 더 줘야 한다.     


긴 연휴를 보내고 나면 좋지만 쉰 기간만큼 은행 업무를 보지 못한 고객들은 연휴가 끝나는 동시에 은행을 쳐들어 온다. 그리고 연휴 내내 방치해 뒀던 ATM기기는 여기저기 고장이 나 있고, 그동안 쌓여 있던 돈과 누군가 가져가지 않은 카드며 통장들이 기계 안에 가득하다. 그렇게 9월이 지나가면, 10월, 11월은 조금 한가했다가 12월부터는 달력 전쟁이 이어지고 전쟁은 2월까지 지속된다. 2월이면 설날이 있기에 미친 듯이 바쁘다.    

 

누군가 그랬다. 은행 경비원은 할 일 없이 그냥 서 있기만 한다고. 보통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은행 경비원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다.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말 못 한다. 그리고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것도 엄청 힘들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무 소리나 하는 것이다. 저런 사람은 딱 명절이 끼어 있는 9월 20일과 25일 날 일을 시키면 절대 저런 말 못 할 것이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힘들 것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해도 일은 원래 힘든 것이다. 단지 일한 만큼만 보상을 해 준다면 좋을 거 같지만 비정규직에게 그런 건 사치이다. 그저 제때 월급만 줘도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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