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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Sep 29. 2020

비정규직의 단점과 장점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비정규직이라서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물론 단점이 장점보다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돋보여서 그렇지 아주 잘 찾아보면 비정규직도 그것 나름대로 장점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오른쪽이 있으면 왼쪽이 있는 것처럼 비정규직도 그러하다. 


일단,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은 경험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직업군을 다 경험해 볼 수 없다. 그래서 모든 비정규직이 다 그렇다고는 말할 순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나의 경험에 의해서만 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고로, 내 말이 진리가 될 순 없다. 모든 것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아마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비정규직의 장점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퇴근'이다. 직장인들이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은 ‘퇴사’겠지만 돈을 계속해서 벌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퇴사’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달려 있는 무화과와 같을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 당장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곧 다가올 퇴근이다. 내일 또 출근해야 하지만 그건 내일 생각하면 될 일이고 일단 퇴근이 시급하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은 퇴근이 빠르다. 은행 경비원을 예로 들면 고정 근무시간은 08:00 – 17:30까지이다. 점심시간 1시간을 빼면 딱 8시간 근무이다. 아주 가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야근을 할 때가 있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다. 보통 5시가 되면 내가 할 일은 전부 마무리된다. 그래서 30분 동안 할 것 없이 멍하니 앉아 있으니 지점장님께서 그냥 퇴근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 일을 다 끝내고 나면 그냥 바로 퇴근했다. 다른 지점은 어떤지 몰라도 내가 있던 지점을 그랬다. 그러면 안 되지만 지점장이 가라고 하는데 가야 하지 않겠나. 그에 비해 은행원들은 보통 평균 퇴근 시간은 7시에서 7시 반 정도로 알고 있다. 그것도 대부계(대출)는 9시를 넘어서 퇴근할 때도 많다고 하니 은행원이 괜히 돈을 많이 받는 게 아닌 것 같다.     




두 번째는 소속감이다.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은행 경비원은 은행 소속이 아니다. 은행 산하에 있는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 파견 근로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은행이 나를 책임져 주는 게 아니라, 용역업체에서 나를 책임져야 한다. 은행에서 일하고 은행원과 일하지만 소속이 다르니 함께 어울려도 어울린다고 하기가 애매하다. 그런 점이 때로는 나를 낙동강 오리알처럼 느끼게 해서 외롭고, 소속감에서 비롯되는 안정감을 얻기 힘들지만 반대로 자유롭다. 구속되는 것이 없으니 편한 느낌이 든다. 

단적인 예로 난 은행원들이 함께 있는 카톡방에 초대되지 않는다. 잘은 모르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도 카톡방으로 상사들의 지시로 요란하다. 그로 인해 퇴근을 했지만 퇴근을 한 것 같지 않을 때가 많다는 걸 책에서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진 모르지만 최근에 카카오에선 업무용 카카오톡을 새롭게 만들어 낼 거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난 퇴근을 하고 나면 완전히 자유롭다. 누구도 나에게 연락을 하는 사람이 없다.


다른 예로 회식을 들 수 있다. 은행 경비원들이 가장 은행원들과 괴리를 느끼는 곳이 바로 회식이다. 회식을 하면 그들은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이뤄지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은행권 이야기라던지 혹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비정규직인 은행 경비원은 단 하나도 공감할 수도 없고, 그렇기에 할 이야기도 없어 그냥 고기나 굽고 고기나 먹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은행 경비원들이 회식에 가길 꺼려한다. 근데 사실 안 가도 상관없다. 굳이 애써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으면 다른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아도 사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다. 이유는 우리에겐 승진도 없고, 업적 평가도 없고, 그렇기에 사내정치도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개인의 욕심으로 인해 더욱더 높은 곳으로 더욱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비정규직은 한 달에 받는 월급 200만 원 남짓 되는 돈 말고는 사실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가지 않아도 된다. 어떤 면에선 자유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선 성장이 없기 때문에 늘 제자리에 있어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 원래 자유는 불안을 동반한다. 그것은 비정규직이 가져가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책임감이다. 아무래도 소속이 다르고, 비정규직이다 보니 정규직인 직원들처럼 내 일이다 혹은 내 직장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년을 계약해 놓고 일하는 직원과 1년을 계약해 놓고 일하는 직원에게 똑같은 책임감을 가지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임금을 적게 받고, 복지는 개나 줘버리는 게 아닌가? 물론 계약직 비정규직 직원이라도 정말 내가 일을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고 앞으로 정규직 전환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는 분들도 충분히 많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부디 기업에게 버림받아 상처 받지 않고, 꼭 정규직이 되거나 열심히 일한 보상과 대가를 꼭 받기를 바란다. 하지만 보통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윤태호 작가님의 ‘미생’에서도 주인공 장그래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훌륭하게 업무를 수행했고, 그로 인해 능력을 높이 평가받지만 결국 그에게 돌아오는 건 계약 만료로 회사를 떠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끝이 아닌 다른 기회가 그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생각했을 땐 그 허무함과 상처는 누가 보상해 주겠는가. 오로지 개인이 떠안고 가야 한다. 그렇기에 비정규직 직원에게 일에 대한 책임감까지 바라는 것은 어쩌면 사치이지 않을까? 성실히 일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까지 거기까지가 비정규직 직원이 할 수 있는 선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것은 오로지 나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어심리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론 퇴사가 자유롭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정규직인 은행원들 보다 퇴사를 했을 때 잃는 것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가진 게 얼마 없으니 그것이 없다고 해도 다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규직은 얻기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놓기도 어렵다. 그래서 퇴사를 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도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내가 은행원이라도 해도 쉽게 퇴사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장점이라고 말하고 보니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장점만 늘어다 놓고 보면 ‘이것도 할만한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점은 이것에 비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단점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장점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된다. 인간에게 소속감을 갖는 것은 본능과 같은 일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으면 인간은 큰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국가가 만들어졌고, 인종이 나눠졌고, 가족이 생긴 이유도 소속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에게는 소속감을 느끼기가 힘들다. 이것은 아주 큰 단점이자 문제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다. 1년을 계약하고 일을 하면 그다음 1년은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 안정적이고 싶은 마음도 인간에게는 본능과 같다. 소속감과 안정감은 바늘과 실 같은 것이다. 소속이 돼있으면 일단 안정적이다.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비정규직은 늘 불안과 함께 살아야 한다.      


사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돈이다. 월급이 적다. 한없이 작다. 늘 모자라서 카드값이 간당간당하다. 월말이 되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돈이 적으면 그것은 내 생활에 아주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시간이 많다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있어도 돈이 없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더 하게 된다. 그러면 어차피 시간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어쩌면 일찍 퇴근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퇴근을 했지만 바로 출근을 하러 가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론 복지이다. 내가 은행 경비원으로 있으면서 받은 복지는 명절에 받는 30만 원이 전부였다. 그리고 3월에 하루씩 주어지는 휴가가 끝이었다. 명절에 받는 주방세제 같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이런 것도 복지에 포함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곳도 있다. 명절에 받는 30만 원조차 없는 곳도 있어서 최악은 아니지만 사실 그게 그거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앞에 말한 장점이 무색해 질만큼 단점이 너무 두드러지니 그다지 하고 싶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순 없지 않은가. 요즘은 일자리가 없어서 이런 비정규직도 못해서 난리다. 시켜만 주면 누구든지 하려고 하는 사람이 가득할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비정규직이 가진 장점을 잘 활용해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겨 가는 사람이 가장 현명하고 지혜롭고 능력 있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난 그러지 못해서 현명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은 능력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처럼 되기 싫은 사람은 어떻게든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 한 번 비정규직에 발을 들여다 놓으면 끊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뭐든 한 번에 두 가지를 하는 건 쉽지 않다. 일을 하면서 이직을 준비하거나 공무원 시험이든 다른 것을 준비한다는 것은 엄청난 각오와 노력을 동반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돈도 벌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하지만 그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 지금 생활에 만족해 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비정규직이 아무리 장점이 뛰어나다 해도 비정규직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신분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단순히 장점과 단점으로 나눌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각자가 맡은 역할이 다르고 그에 따라 자신이 맡은 곳에 일하면 그만이지만 사회 곳곳에서는 마치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밑에 있는 하위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단점으로 취급하기에는 무게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우린 같은 목적을 두고 일한다. 이것에 신분의 차이를 두는 건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더욱 빈곤하게 만드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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